'국뽕' 논란을 감독이 너무 의식한 탓일까. 정작 영화가 개봉되자, '국뽕' 논란보다는 오히려 영화 <군함도>가 실제 역사의 참상을 축소, 왜곡했다는 비판이 관객 사이에서 주를 이룬다. 앞서 개봉한 동시대 배경의 영화 <박열>이 호평을 받았던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반응이다.

군함도가 일반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재작년 무한도전이 특집으로 군함도를 다루면서부터다. '배달의 무도'편에서 방송인 하하는 서경덕 교수와 함께 군함도를 찾았다. 서경덕 교수의 친절한 설명과 당시의 사진 자료, 생존자 증언 등을 통해 무한도전은 군함도의 참상을 추적했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

하시마 섬은 생김새가 군대 함대와 같다고 해서 일명 군함도로 불린다. 이곳 군함도는 일본인에게는 근대화의 상징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아픈 사연이 있는 곳이다. 섬 한켠에서는 일본 상류층이 고층 호화 아파트에 거주했던 반면, 지하 탄광에서는 한국에서 끌려 온 징용자들이 인간 이하의 생활을 겪어야 했다.

지하 1000m 갱도에서 45도의 지열을 감내해야 했던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제대로 된 장비는커녕 속옷 한 장이었다. 이후 생존자가 "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 먹는 게 소원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당시 배급된 식사는 겨우 풀죽이 조금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매일 고통과 굶주림, 언제 깔려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마주해야 했다. 이 지옥 같은 군함도에서, 알려진 것만 100명이 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죽었다. 그들은 죽은 후에도 장례식은커녕 태워져 버려졌다.

위령비를 세웠으나, 그마저도 전혀 관리를 안 한 채 버려져 있었고, 현재는 아예 당국에 의해 폐쇄된 상태다. 또한 군함도에 강제 징용됐던 노동자와 후손들은 지금까지 일본이나 기업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참상이 무한도전을 통해 알려져 당시에 많은 시청자들의 울분을 샀고, 이러한 국민들의 울분과 관심 속에 영화 <군함도>는 제작, 개봉될 수 있었다.

현실보다 못한 영화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광화문 촛불집회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억지감동'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광화문 촛불집회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억지감동'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다. ⓒ cj 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영화는 기대 이하의 혹평을 받았다. <무한도전>을 보고 느꼈던 슬픔과 분노를,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는 신파적 요소에 치중하다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셈이 됐다.

극 초반에는 군함도에 끌려온 한국인 강제징용자와 일본군위안부가 겪는 고초를 나름 세밀하게 묘사했다. 군함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발가벗겨진 채, 검사를 받았다. 신체에 이상이 없는지, 성병은 없는지 확인하는 검사는 마치 가축을 취급하는 듯했다.

그러나 극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영화는 일제의 탄압과 강제징용자들의 참상에 집중하기보다는, 한국인 내부의 갈등과 일본인과 한국인 지도자 사이의 음모, 그리고 군함도를 탈출하기 위한 계획과 과정을 극의 중심에 놓는다.

어느덧 주제는 '군함도 대탈출기'로, 장르는 액션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기록에 의하면, 군함도에는 한국인을 위하는 척 뒤로는 일본과 밀약을 맺는 이중적 민족지도자나, 광복군이 주도한 군함도 대탈출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와 다를뿐더러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영화와 같은 대탈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제의 잔학이 점점 거세지는 일제 군국주의 말기에, 본토에서 겨우 10km 거리인 섬에서, 그것도 별다른 무기도 없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본 군인들을 제압하고서 선박을 탈취하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도 영화가 굳이 존재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대탈출'을 극의 중점에 둠으로써 극이 중심을 잃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인 결말을 위해 극의 모든 전개가 비현실적이게 됐다. 또 그러다보니 내용이 신파적이고 진부적이게 됐는데, 주인공 사이의 억지 인연과 러브라인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반부에 이르러, 군함도는 제법 '살만 한' 공간으로 묘사됐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군함도는 징용자들이 어느 정도의 담배와 술, 과일도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일본의 감시 없이, 마치 촛불시위를 연상시키는, 한국인들만의 집단 회의와 토론도 가능했다. 모두가 주인공들의 신파적인 인연과 비현실적 탈출을 위해 호출된 비역사적 장치였다. 이 과정에서 군함도는 연애극과 액션영화의 배경으로 소모됐다.

물론, 대탈출이라는 큰 사건을 넣음으로써 극이 지루해지려는 것을 막으려 한 감독의 발상은 이해한다. 한국인 사에에서의 분열과 이중적 민족지도자 등 여러 요소를 넣어 선악 이분적 대립과 '국뽕'을 넘어서려 했던 의도도 좋았다.

그러나 지루함과 '국뽕'을 빗겨가려다 정작 리얼리티를 놓치고 말았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군함도>는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다며 역사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 반면 <박열>은 '철저한 고증을 거친 실화'이며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라며 명토를 박았다.

여기서 차이는 발생했다. <군함도>의 시도가 혹평을 받은 반면, <박열>은 철저히 실제에 입각했기에, 역사를 축소, 왜곡하지 않고도 '국뽕'을 넘어설 수 있었다. 또한 관객들은 이러한 색다른 시도가 주는 신선함 덕에 극 내내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군함도>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동을, 그저 실제 역사를 보여주고 설명하기만 했던 무한도전 특집에서는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군함도>는 이 점을 배웠어야 했다. 진실은 어떠한 영감보다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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