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포스터. 개봉 첫 날, 97만의 관객을 모았다.

<군함도> 포스터. 개봉 첫 날, 97만의 관객을 모았다. ⓒ CJ 엔터테인먼트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를 다룬 <군함도>가 개봉 첫날 97만 관객을 동원했으나 2000개 넘는 역대 최다 스크린을 장악하며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주말 스크린 수가 더욱 늘어갈 것으로 예상하면서 비판이 거세지는 조짐이다.

<군함도>는 개봉일인 27일 2027개 스크린에서 1만200회 가까이 상영되며 박스오피스를 평정했다. 첫 2000개 스크린 돌파다. 그동안 역대 최다 스크린은 지난해 4월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1991개였고, 지난 5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 홈 커밍>이 1965개로 뒤를 이었지만 2000개는 넘어서지 못했다. 2000이라는 숫자는 영화계의 심리적 마지노선과 같았다. 7월 27일 현재, 국내 전체 스크린 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2758개다.

<군함도>는 개봉 첫날 모든 수치에서 다른 영화들을 압도했다. 좌석점유율은 53%에 달했고, 예매율은 60%를 넘기고 있다. 매출액 점유율은 71%를 차지했다. 상영점유율은 55%를 넘겼다. 27일 하루 전체 영화 상영 횟수의 절반 이상을 <군함도>가 차지한 것이다.

특히 CGV의 경우 상영 점유율이 58%로, 롯데와 메가박스의 55%보다 높았다. 단관극장들은 38%의 점유율을 기록해 대기업 멀티플렉스보다는 많이 낮았다. <군함도>는 CJ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영화다.

영화 감독들의 날 선 목소리

 <군함도>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와 멀티플렉스 CGV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영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함도>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와 멀티플렉스 CGV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영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CJ E&M


<군함도>의 스크린 독과점은 개봉 전날부터 예고된 상황이었다, 예매가 열린 스크린 수가 2000개를 넘어섰는데, 동시에 영화인들의 비판도 잇따라 터져 나왔다. <터치> <사랑이 이긴다> 등을 연출한 민병훈 감독이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 감독은 "제대로 미쳤다. 독과점을 넘어 이건 광기다. 신기록을 넘어 기네스에 올라야 한다. 상생은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천안함 프로젝트> <국정교과서> 등을 연출한 백승우 감독은 "상업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감독님을 꼽으라면 단연 류승완 감독"일 거라며 "등장하는 배우를 보면 초특급 스타들이 포진되어 있는 등 감독, 배우, 소재(시나리오) 삼박자가 꽉 찬 전형적인 강력한 상업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정도면 스크린 몇백 개로 시작해도 충분히 돈 벌지 않을까?"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영화판> <미라클 여행기> 등을 연출한 허철 감독 역시 "한국영화 잘되길 바라지만 그래도 이런 식은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다른 영화인들도 "눈앞의 이익이면 독약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독과점 자본의 본색"이라거나 "일제강점기(영화)가 영화강점기와 문화 말살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6년 647개로 시작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갈수록 그 위세를 넓히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할 수 있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아래 영비법) 개정이 더욱 절실해지는 분위기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아래 제협)의 한 관계자는 "법적 규제 방안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CJ 등 대기업의 영화산업 수직계열화가 근본 원인이기에, 상영과 배급을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단체와 회원사 간 엇박자도 엿보인다. <군함도>의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가 제협 운영위원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는 규제를 강조하는 입장인데, 정작 소속회원은 이와 반대로 가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제협 관계자는 "배급을 대기업에서 하다 보니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투자자들 때문이라도 상영관을 줄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류승완 감독도 독립영화로 데뷔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매우 난처할 것이고 강혜정 대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외국계 회사가 제작·배급한 한국영화가 1주 만에 교차 상영에 들어갔지 않냐"며 "아무리 이전에 천만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고 해도 CJ가 배급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차이가 크다"고 대기업 배급사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영비법 개정안에는 '복합상영관에서 동일한 영화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비율 이상 상영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거나 '예술영화 또는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전용 상영관을 한 개 이상 지정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문화다양성 보장 안 되면 영화산업 도태

스크린 독과점이 심화하는 것에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이 하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허철 감독은 "문화 다양성이 보장될 때 한국영화의 희망이 있는데 다양한 것은 고사하고 자본과 스타 배우 독점하고 스크린까지 독점해서 나오는 영화에 무슨 기대를 하겠냐"며 "엄중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는 창작자들보다 관습에 맞춰 영화상품을 만드는 기업인들이 대접받는 시스템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리가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하향 평준화는 결국 산업을 도태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영화학자는 "<군함도> <더 킹> 등 최근 나온 영화들을 보면 향후 한국영화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허무하고 걱정된다"며 "비싸고 주제 의식만 두드러져 보이는 데, 그래 봤자 할리우드 예산의 백 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군함도 스크린독과점 수직계열화 영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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