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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크면 당신 곁에는 누가 있을까?"

아침, 집을 나서는데 아내의 걱정이 들려온다. 10년 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손녀를 봐주고 있다. '하부지의 육아일기'를 쓰면서 성장 과정을 영상과 글로 남기고 있다. 손녀 콩이와 콩콩이 이야기다. 백일 때부터 기록한 성장 일지를 다시 보는 게 크나큰 즐거움이다.

'은퇴' 하면 떠오르는 건 '백수'다. 즉,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는 일도 없이 밥 먹고, 잠자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최소한의 노후 생활자금조차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일이 없어 아파트 경비를 서기도 한다.

막상 퇴직을 앞두고 걱정이 앞섰다. 무엇을 해야 하나. 당시만 해도 은퇴라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였다. 많든 적든 일시금으로 받는 퇴직금이라면 은행에 맡겨놓고 이자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때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였다.

하지만 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이자 수익 하락으로 노후생활자금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인구 노령화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자 수익은 꿈도 못 꾸고, 자식들의 부양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일도 없고 가진 돈도 걱정해야 하는 시대로 급전환됐다.

일도 돈도 모두 걱정인 시대, '육아'를 택했다

설날 세 자매가 또 만났다. 할아버지와 한 컷, 자식 키울 때 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 콩이, 루피 콩콩이 설날 세 자매가 또 만났다. 할아버지와 한 컷, 자식 키울 때 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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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텃밭에 상추 등 채소를 심었다. 물 주고 잡초 매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전원생활의 간 보기였다. 욕심이 생겨 유실수도 심고 조경수도 심었다. 조그만 수목원을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농촌에 대한 호기심은 딱 여기까지였다.

마침 첫째 손녀 콩이가 태어났다. 그것도 힘들게. 자궁 외 임신으로 산모가 위험했다. 어렵게 한 사람의 귀한 생명이 우리에게 와줬다. 정작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누구의 아버지에서 누구의 할아버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모두에게 감사드렸다.

'하부지의 육아'가 시작된 계기다. 생후 1년이 될 때까지는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다. 아이가 몸이 허약하고 면역력이 약했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아이 돌보는 일은 잔일이 많았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네 살 터울로 동생 콩콩이가 태어났다. 조금 육아에 대한 방법을 알아갈 즈음이다. 요령도 생겼다. 도서관에 들러 '북 스타트' 교육도 함께 받으면서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아이도 보고, 독서도 하고 글도 써 보고 말이다.

할아버지의 전속 모델 콩이와 콩콩이

언니는 동생에게 뽀뽀도 해 주고, 신발을 신겨주기도 한다. 엄마가 돌보는 것처럼 여러가지 챙겨준다. 그러다가 갑자기 질투심 폭발!  걷잡을 수 없다. 엄마나 아빠가 동생에게 신경을 더 쓴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 뽀뽀하는 자매 언니는 동생에게 뽀뽀도 해 주고, 신발을 신겨주기도 한다. 엄마가 돌보는 것처럼 여러가지 챙겨준다. 그러다가 갑자기 질투심 폭발! 걷잡을 수 없다. 엄마나 아빠가 동생에게 신경을 더 쓴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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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녀와 함께 지내면서 모유, 분유, 이유식에서 밥알을 조금씩 먹는 모습에서부터 배밀기, 머리 들기, 뒤집기, 일어서기 등 하나하나의 동작을 모두 사진으로 남겼다. 놓치면 다시 재연이 안 되는 성장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사진에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순전히 육아를 위해서였다. 직장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사진이나 인터넷 등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보다 보니 귀엽고 예쁘게 보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됐고, 나도 모르게 '찰칵' 하다 보니 사진에 입문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사진을 시기와 상황에 맞게 고르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콩이와 콩콩이는 나만의 전속모델이, 이야기의 주연배우가 됐다.
 
"할아버지 몇 살이야?"
"..."


콩이와 대화 내용이다. 하부지의 육아일기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렸다. 어느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배치되고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다. 그 댓글이라는 게 대부분 비난성 댓글이었다. 생후 36개월도 되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버릇이 없다느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버린다느니 말이 많았다. 근무 중이던 딸이 전화로 "제발 글 올리지 마세요"라고 당부한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와 말동무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 이야기를 적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 우리 부산 다녀왔다~~!"

손녀들은 매일 일어난 일을 종알종알 들려준다. 자랑하려는 속셈이겠다. 지난 주말에 부산에 다녀온 모양이다. 해수욕도 하고 엄마가 선물도 사줬다고 재잘재잘 설명한다. 엄마 아빠의 일과를 날마다 알려주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학교에서 '베프'(베스트 프렌드)와 도서관에 갔고, 선생님이 누구를 나쁘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내 친구들도 영상이나 육아일기를 보고 무척 부러워한다. 육아를 통해 익힌 동영상 편집, 사진 촬영 기술은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도 유감없이 써먹을 수 있게 됐다. 나중에는 여행기로 결과물을 내놨다. 사람들이 말하는 '황혼육아'가 내 삶을 이렇게 바꿔놨다.

손녀 콩이가 쓴 편지다. 또록또록 정이 가득찬 편지, 고맙고 감사하다.
 손녀 콩이가 쓴 편지다. 또록또록 정이 가득찬 편지, 고맙고 감사하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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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시계

길고 커다란 마루 위 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
90년 전에 할아버지 태어나던 날 아침에 받은 시계란다.


언제나 정답게 흔들어주던 시계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지난 생일날, 아이들과 함께 동요를 불렀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가슴 속 깊이 파고든다. 전율을 느꼈다. 10여 년의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전속모델이자, 주연배우, 말동무였던 아이들이 이제 훌쩍 커버렸다. '애들 크면 당신 곁에는 누가 있을까?', 아내의 걱정이 아니라도 나부터 이게 걱정이긴 하다.


태그:#육아, #황혼육아,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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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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