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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있던 우리 요트를 끌어준 아부와 사쿠알라 섬 사람 섬 가까이 갔지만 바람 방향이 맞지 않아 헤매던 중에 나타나 우리를 끌어주었다. 힘들때 도와주는 친구처럼 소중한것이 없듯이 예인선(끌어주는 배)은 큰 힘이 된다
▲ 멈춰있던 우리 요트를 끌어준 아부와 사쿠알라 섬 사람 섬 가까이 갔지만 바람 방향이 맞지 않아 헤매던 중에 나타나 우리를 끌어주었다. 힘들때 도와주는 친구처럼 소중한것이 없듯이 예인선(끌어주는 배)은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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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출발하는 우리를 배웅해주는 사쿠알라 섬 가족들 항해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섬이었다. 하룻밤이었지만 긴 말을 나누지 않아도, 배웅해주며 손 흔들어 주는 그들에게 에너지를 얻고, 다시 또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 아침일찍 출발하는 우리를 배웅해주는 사쿠알라 섬 가족들 항해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섬이었다. 하룻밤이었지만 긴 말을 나누지 않아도, 배웅해주며 손 흔들어 주는 그들에게 에너지를 얻고, 다시 또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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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것에 대하여

기다린다, 뭔가 쓸거리를. 종이와 펜을 봉투에 넣고 배위에 놔두고는 물이 튀지 않을까 간수하면 나름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기록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언제 생길지 몰라 항상 가지고 다닌다. 오전 시간에 글 쓰는 확률이 높다. 파도가 제일 잔잔한 순간, 이때를 놓치면 잘 안 쓰게 된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기다리면 남기고 싶은 말이 떠오를까.

프랑스 소설가 사드(Sade)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퀼스(Quills; 깃촉, 펜)>. 정신병원에 갇힌 사드는 어떻게든 쓰고 싶은데 펜도, 종이도 없으니 결국 배설물로 벽에 글을 썼다. 쓰고 싶은 욕구를 넘어선 광인의 면모.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사치스런 준비를 하고 있나. 

그저께 잠든 '짱깨' 섬은 거의 무인도 수준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그 부부의 자식 부부와 딸 하나. 이렇게 1 가구가 살고 있었다. 아부팀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쏭배에 탔던 우리는 좀 나중에 왔는데 그들의 승낙을 꽤 기다려야 했다. 아무래도 살고 있는 자기 식구들보다 더 많은 성인들과 그것도 외국인이 하루를 묵겠다고 하니 나라도 걱정이 됐을 것이다. 다행히 정자에서 숙박을 하도록 허락을 해주었다.

해 지기 전에 도착하여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다. 항해 이후 처음이다. 모래색의 니모, 가오리도 보고 큰 물고기떼도 보았다. 바닷속 물고기들은 무늬는 제각각이었지만 색깔은 거의 모래색이었다. 물고기들은 색깔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변 모래와 비슷한 색으로 만들어 적으로부터 구별할 수 없게끔 하는 보호색. 열대어처럼 현란한 색으로 두려움을 주는 경고색. 수컷 물고기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색으로 변하기도 한다(수컷은 색을 바꾸는 것 외에 몸체의 크기와 체형의 차이를 이용하는 방법, 노래를 부르는 방법, 둥지를 만드는 기술 등 여러 가지의 유혹기술이 있다).

영화 '내 남자친구의 유통기한' 그림형제의 동화를 모티프로 하였다. 스노클링을 하며 만난 몸에 큰 점이 하나만 있는 물고기. 정말 특이해서 계속 눈길이 갔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라서 물고기 무늬에서 영감을 받는데 그 중에서 이런 점박이 무늬도 있었다.
▲ 영화 '내 남자친구의 유통기한' 그림형제의 동화를 모티프로 하였다. 스노클링을 하며 만난 몸에 큰 점이 하나만 있는 물고기. 정말 특이해서 계속 눈길이 갔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라서 물고기 무늬에서 영감을 받는데 그 중에서 이런 점박이 무늬도 있었다.
ⓒ 세종커뮤니케이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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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의 무늬는 굉장히 오묘하면서도 자유가 느껴진다. 그 작은 몸으로 망망대해를 유영하고 있어서일까. 또한 바다 위 수평선도 해의 높이에 따라 그 색이 변하는데 그것 또한 색깔과 관련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감을 많이 줄 것 같다.

이곳에 수무르(우물)는 아예 없었고, 여기 가족들도 육지에서 물을 사서 마신다고 하였다. 다행히 우리도 배에 좀 실었던 물이 있어서 밥은 지어먹을 수 있었다. 딱히 반찬이 없었는데 한국에서부터 챙겨간 김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씻을 물이 없는 최초의 섬. 그런데 신기하리만치 피부가 매끈했다.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항상 찝찝했는데 여기는 이상했다. '이 섬의 바닷물은 뭐가 다른 거지?' 물티슈 한 장으로 샤워(?)를 끝내고 잠을 청했다.

잘가라고 인사해주는 짱깨 섬 가족들 잠들기전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별똥별을 보았다. 다 같이 선착장에 누워서 별똥별을 난생처음 봤다고 자랑하는 나에게 쏭은 되물었다. “어떻게 별똥별을 처음 볼 수가 있죠?”
▲ 잘가라고 인사해주는 짱깨 섬 가족들 잠들기전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별똥별을 보았다. 다 같이 선착장에 누워서 별똥별을 난생처음 봤다고 자랑하는 나에게 쏭은 되물었다. “어떻게 별똥별을 처음 볼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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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길을 나설 때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저씨는 가는 길 잘 떠나라며 물 한통을 주셨다. 지금까지는 아침에 떠날 때 필요한 물과 음식을 챙겨서 떠났는데 이곳에서는 그럴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귀한 물을 감사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먼 외딴섬에서 체게바라를 떠올리다

짱깨 섬 가족들을 만났을 때 나는 살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말로만 들었던 나병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이자 쿠바의 혁명을 이룬 체게바라가 친구와 오토바이로 남미여행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나는 그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나환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눈에 확연히 띄는, 몸에 남은 상처들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아른거렸던 체게바라는 생일 파티를 즐기다 말고 강으로 뛰어든다. 평생 천식을 앓았던 자신의 몸은 생각지 않은 채, 그들에게 축하를 받기 위해….

어쩌면 그는 자신 안에 남아있던, 나환자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떨치고자 건너버린 것은 아닐까. 체게바라는 여행을 마치고 난 후 의대생이었던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나에게 나환자에 대한 기억은 그 영화속에서 체게바라의 마음을 흔들었던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타지에서 항해를 하며 한 가구만 사는 외딴 섬에서 처음 만난 것이다. 나중에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물어보니 원래부터 그 섬에서 살았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부러 따로 떨어져 살아왔을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한센인들을 강제 수용한 섬이 있다. 전남 고흥군 땅 끝에 위치한 소록도. 1916년, 일제는 전염이 된다는 이유로 한센인들을 소록도에 감금했다. 그러한 인식은 해방 후,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듯하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지금은 감염이 거의 되지 않는, 과거의 병이라고 한다.

어부 아저씨, 고맙습니다

해가 뜰 때 하늘에 머물던 어둠은 갈라지고, 그 틈새로 빛이 새어나온다. 아직 눈을 채 덜 뜬 별들은 숨지 못하고 아직 그 옆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태양이 모습을 다 드러내면 하늘빛 위로 흰 구름이 채색된다. 뭉게뭉게 또는 실날같이 흩뿌려지는 구름. 한 번씩 새떼가 질서 정연히 옆으로 누운 브이자 모양을 만들며 재밌는 그림을 만들어 낸다.

무리가 없는 혈혈단신의 새는 부표에 의지해 바다 위에 동동 떠 있으며 다음 목적지를 생각한다. 가끔 두 마리가 함께 있을 때도 있다. 그럼 그 넓은 바다 위에 있어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고는 그런 감상에 내가 멋쩍어 피식 웃게된다.

그러다 바닷속을 쳐다본다. 스노클링 장비 없이도 수심 5m 이상이 훤히 보인다. 에메랄드빛 물속에는 산호초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물고기가 다니고, 커다란 가오리도 지나간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온이 급상승한 곳에서는 산호가 죽어버려 흰색이 되었거나(백화현상) 갈색이 많지만 간혹 녹색도 보인다.

천연 아쿠아리움을 보고나면 다시 수심이 깊은 짙은 파랑 바다위로 간다. 사실 방금 본 대형 수족관은 나같이 단순한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키를 잡은 항해가들에게는 아찔한 위험 요소이다. 왜냐하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도 수심이 얕은 곳이 군데군데 있는데 멀리 내다 봤을 때 옅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길게 선을 이루고 있으면 그 주변이 수심이 얕은 곳일 확률이 높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딱딱한 산호초 지대에 부딪혀 요트가 파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안을 할 때만 신경을 쓰고, 넓은 바다로 나가기만 하면 큰 걱정없이 다닐 줄 알았는데…. 무작정 맘 놓고 쉴 수는 없다. '수심이 낮으니 이쪽으로는 오지 마시오'를 알려주는 부표가 있는 곳도 있지만 없는 곳도 많다.

검은 비닐로 깃발처럼 만들어놓은 부표. 누가 만들었을까. 대체적으로 어부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작은 신호가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미리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직접 위험에 노출됐던 사람들이 다음 사람들은 안전할 수 있도록 마련한 배려. 그 누구인지 모를 사람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보낸다.

예측할 수 없는 항해, 내 인생

해가 질 무렵,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 랑카이는 아닌, 바람의 방향에 맞춰 근처에 있는 다른 섬에 도착하였다. 바닷물은 투명하고, 새하얀 모래톱이 길게 늘어져 있는 예쁜 섬이었다. 마카사르에서 오는 나름 관광지인 작은 란주깐 섬. 정박하고 섬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고, 이곳에 놀러온 타지 청년들이 많이 보였다. 샤워장도 따로 있었지만 우리는 우물물을 몸에 붓는 것으로 만족했다. 슈퍼마켓 주인 아주머니께 다코타가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빌려 쏭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연락을 전혀 취할 수 없는 상황. 예전처럼 또 따로 잠을 자야 할까. 이곳에서는 숙박은 가능했으니 돈을 지불해야했다.

우리는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돈도 돈이지만 쏭팀이 우리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 팀원들은 '쏭 성격상 시간이 늦더라도 원칙대로 랑카이까지 갈 것이다'하며 짐작하였다. 깜깜해진 밤, 우리는 다시 배에 올라탔다. 인도네시아 항해 중 제일 힘들었을 때를 순위로 매긴다면 탑3 안에 드는 일이었다. 정박해서 짐을 다 내리고, 마음도 내렸을 때 해는 져서 깜깜한데 젖은 옷을 입은 그대로, 작은 플래쉬 불빛 하나에 의지하여 다시 배에 탄다는 것이 참 서글펐다. 그래도 간식을 좀 사서 간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특히 라면(미)를 부셔 먹은 건 신의 한수. 가끔은 커져버린 내가, 내안의 작은 나를 달래줄 필요가 있다.

바람말과 다코타 그리고 아부. 함께했기에 그 험난한 파도를 뚫고 랑카이로 향할 수 있었다. 바람은 엄청 부는데 우리와 방향이 맞아서 속도는 굉장히 빠르고, 파도는 높고, 함께가 아니었으면 정말 무서웠을 것이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적응할 때쯤 하늘을 쳐다볼 여유도 생겼다. 하늘에는 진귀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앞에는 별들이 떠 있고, 뒤에서는 번개가 쾅쾅 치며 하늘을 번쩍번쩍 밝혔다. 어떻게 같은 시야에 들어오는 크기의 하늘 안에 이렇게 평화로운 하늘과 전쟁같은 광경이 공존하는지. 보면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밤 10시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랑카이에 도착! 칠흑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무사히 도착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쏭팀을 조금 기다리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 아부는 우선 랑카이 가족 집을 찾겠다고 길을 나섰다. 쏭은 거의 10년간 이 가족과 인연을 맺어왔지만 아부는 7~8년 전 랑카이에 딱 1번 와 봤다는데. 집을 잘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 해도 연락도 없이 이렇게 늦게 도착한 우리를 랑카이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쏭팀은 먼저 와 있을까? 아니면 아직 오는 중일까? 매일, 매순간 예측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 항해를 내가 하고 있다니. 몇 달 전만해도 이런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항해처럼 내 인생도 예측할 수가 없구나!

덧붙이는 글 | <평화 항해를 위한 배를 구합니다 dlgidfla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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