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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니언즈>
 영화 <미니언즈>
ⓒ 미니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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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눈 두 개짜리 미니언즈가 될 거야. 눈 두 개짜리."

생후 58개월 된 아이가 말했다. 미니언즈가 돼야 하니 파란색 바지도 필요하단다. 평소 애니메이션 <슈퍼배드> 시리즈 2편을 돈 주고 내려받아 심심할 때 보고 또 보는 아이다. 최근 TV에서 3편이 나온다는 광고를 보고서는 눈 두 개짜리 미니언즈가 꿈이란다.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는 아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무엇을 감명 깊게 보거나 겪었는지를 말해준다.

말을 좀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아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1등이 '군인 아저씨'였다. 아빠가 직업군인인 데다 군인 아파트에 사니 택배 기사 아저씨와 경비원 할아버지, 친구들, 엄마 외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군인이니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엄마, 아빠라고 말을 하게 됐을 때 아이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산책하러 나가곤 했다. 군복을 입고 퇴근하는 군인들이 많았다. 아이는 군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모두 아빠로 보이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빠, 아빠"하며 쫓아갔다. 그 옆에서 난 연신 "우리 아빠 아니야~"라고 대꾸해줬다.

다음 꿈은 택배 기사였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는데 택배 배송 트럭이 그렇게 멋있게 보였나 보다. 택배 트럭만 보면 넋이 나간 듯 한참을 쳐다보곤 했다.

아이가 주로 간 곳은 소아청소년과, 식당, 마트,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가끔 집으로 배달 오는 족발집 아저씨, 치킨집 아저씨 택배 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와도 친하다.

아이는 58개월 동안 또 어떤 직업군을 보았을까?

[상황 1] "의사 선생님이 될 거야!"

15개월 전, 내가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요양 겸 휴가를 보내고 왔을 때, 아이의 꿈은 의사였다. "왜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라고 물으니 "엄마가 병원에 있어서, 내가 고쳐주려고"라고 했다.

출산 후 감성이 충만해져서 그런지 '아이가 내 걱정을 많이 했구나, 엄마가 정말 보고 싶었구나'라는 안쓰러움에 눈물이 펑펑 났다. "그래 꼭 의사 선생님이 돼서 아픈 사람 안 아프게 해줘"라면서 아이를 꼭 안아 줬다. 엄마로서 크게 감동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우리 아이가 의사가 된다고 하니 노후는 걱정 없겠구나' 하며 신이 나기도 했다.

둘째를 낳으러 가기 전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를 설명해줘야 했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아이가 거부감이나 불안감 없이 이해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처음에는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가 나오려고 해서 꺼내주려고 병원에 간다고 했다. 아이는 매일 수시로 엄마 언제 오느냐고, 엄마 어디 갔냐고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엄마 배가 아파서 병원에 있대. 밥 잘 먹고 잘 놀고 있으면 금방 나아서 올 거야."

"엄마 엉덩이가 아프대. 엉덩이에서 피가 난대. 밥 잘 먹고 씩씩하게 놀고 있으면 금방 올 거야."

"엄마 엉덩이에 침 맞고 온대. 세 밤만 자면 온대."

친정엄마와 아이 아빠가 수시로 이같이 설명하며 안심시켜 줬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아이의 꿈은 의사가 됐다. 엄마를 고쳐서 집에 빨리 오게 하려고.

[상황 2] "추대엽이 될 거야!"

지난해 가을, 아이에게 다시 물어봤다.

"예준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난 추대엽이 될 거야!"

추대엽은 아빠 이름이다. 아빠가 될 거란다.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저번엔 의사가 되겠다더니 이젠 아빠가 될 거라니. 의사나 다른 직업을 갖고서도 멋진 아빠는 될 수 있어.'

어른의 생각이다.

당시 둘째가 갓난아기이다 보니, 첫째인 아이 없이 둘째만 보고 있어도 벅차던 시기였다. 첫째가 내게 매달릴까봐 아이 아빠가 첫째를 '밀착방어'하며 놀아주고 있었다. 아빠가 자기 말도 잘 들어주고 재밌게 놀아주니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였나 보다.

그런데 이 아이는 특이하게도 아빠 이름을 쉽게, 자주, 편하게 부른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 멀리 퇴근 후 돌아오는 아빠가 시야에 보이면 아주 크게 부른다.

"추대엽이다! 추대엽~!"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줄 알겠다. 요즘엔 이렇게 부른다.

"추대~!"

생후 58개월 아이에게도 줄여 부르기가 유행인가….

[상황 3] "경찰 아저씨가 될 거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 앞(자료사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 앞(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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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또 물었다.

"경찰 아저씨가 될 거야."

"왜 경찰 아저씨가 되고 싶어?"

"경찰 아저씨가 돼서 나쁜 사람이랑 도둑이랑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을 거야."

최근 유치원에서 현장학습으로 경찰서를 다녀왔다. 재밌었냐고 물으니, 아이는 "응, 다행히 잘못 안 해서 감옥에는 안 갔어"라고 답해줬다. 그때 '감옥'이란 존재를 알게 되고는 충격을 좀 받았나 보다.

요즘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자고 하면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야 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도 수를 썼다. 아이스크림을 집에 사뒀다고. 집에 가서 샤워하고 밥 먹고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불같이 짜증을 낸다.

"지금, 당장, 여기서 먹고 싶다고!"

두 주먹을 꽉 쥐고 발을 쿵쿵 구르며 '씩씩'거린다. 더워지면서 나타나는 '생떼 리스트' 가운데 하나다. 무심하게 집 방향으로 걸어가면 뛰어와 나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58개월 동안 배워온 온갖 나쁜 말을 해댄다.

"엄마 미워!" "엄마, 나빠!" "엄마 바보 멍청이!"

이 3가지 말을 계속 반복한다. 볼륨만 바꿔가며.

그러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한다. 

조그만 아이가 조그만 주먹으로 때리면 얼마나 아플까 싶겠지만, 아프다. 요리조리 피하며 장난으로 받아주다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경찰 아저씨를 불러야겠다"고 화를 낸다. 전화기를 꺼내 경찰서에 신고하는 흉내도 낸다.

아이는 싹싹 빌며 "안 그럴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다 울음으로 마무리한다. 경찰 아저씨가 오면 감옥에 잡혀가는 줄 아나 보다.

몇 달 전엔 아이를 시장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엉엉 울며 시장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30분쯤 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원장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유치원으로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지금 동네 치킨집에 있다고 했다.

가보니 경찰도 와 있었다. '눈물의 포옹'을 했다. 까마득했던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무섭지 않았냐고 물었다.

"경찰 아저씨가 와서 감옥에 잡혀가는 줄 알고 무서웠어."

길을 잃어 엄마와 헤어진 것 보다 치킨 집 사장님이 부른 경찰이 더 무서웠다는 얘기다.

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가, 아빠가 되고 싶었다가, 경찰 아저씨가 되고 싶었다가, 지금은 눈 두 개짜리 미니언즈가 되고 싶어 한다. 이렇게 조금씩 아이의 뇌 구조를 그려 나가 본다.

엄마인 나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지, 생활이 즐거운지 어렴풋이 추측하며 '우리 아이가 잘 크고 있구나'라고 안심한다.


태그:#육아일기, #6세 아이 언제 착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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