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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기원을 밝히는 발칙한 진화 이야기,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존 롱 저 / 양병찬 역
 성의 기원을 밝히는 발칙한 진화 이야기,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존 롱 저 / 양병찬 역
ⓒ 행성B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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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도발적이고 원색적이다.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라니. 이토록 뇌쇄적이어도 괜찮단 말인가. 그에 더해서 표지를 볼라치면 한 술 더 뜬다. 표범의 둥그스름하고 섹시한 등짝 사진 밑으로는 블랙과 꽃분홍색이 발칙하고도 도도하게 대비되어 있다. 책의 표지를 본 사람이라면 책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지은이 존 롱(Dr.John Long)은 <네이처> 등의 과학 저널에 여러 편의 논문을 기고했으며 권위 있는 연구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한 세계적인 고생물학자다. 그는 박사학위를 갓 취득한 29살 때 떠난 탐사여행에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물고기 화석을 얻는다.

3억 8천만 년 전 판피어류(板皮魚類)의 일종인 틱토돈티드(Ptyctodontid) 화석이었다. 대개의 물고기 화석들은 셰일 사이에서 납작하게 눌려 2차원 도형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보통인데, 이 화석은 석회암 결핵체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던 까닭으로 3차원의 형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암석 속의 뼈를 끄집어내는 게 가능했다.

이 책은 과학책인데도 참 재미있다. 그것은 저자가 고생물의 화석을 통해 성기와 성행위까지 상상해내는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전문 분야를 재치와 상상력을 담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솜씨가 대단하다. 모든 현생어류의 어머니이자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의 조상이기도 한 틱토돈티드가 마치 우리 눈앞에 있기라도 한양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책을 통해 무려 3억 8천만 년 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훌쩍 건너뛸 수 있다.

세상의 수컷들은 마음에 드는 신붓감을 만났을 때 일생일대의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마음껏 먹고 즐기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반납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확실하게 남기는 길을 택할 것인가. 이것은 자연 생태계 안의 존재인 인간 역시 예외일 수가 없는 질문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생존을 가장 큰 존재 이유로 꼽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자손을 남기는 생식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나은 무기와 전략이 필요하다. 생물의 진화는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인간 남성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들 역시 모든 생명체들의 수컷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첫 부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성기 이야기가 나온다. 아르헨티나 수컷 오리는 세상에서 가장 긴 페니스를 가지고 있는데, 평균적으로 봤을 때 무려 42.5cm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대왕고래의 페니스는 발기시 2.5m에 달하지만 고래 몸 길이가 30m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르헨티나 오리 근처에도 못 갈 길이의 페니스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르마딜로라는 동물은 거대한 페니스를 자랑한다. 만약 아르마딜로의 키를 인간의 평균 키로 환산하면, 페니스의 길이가 약 1.2m나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수컷 따개비의 경우도 몸 길이의 두 배에 달하는 페니스를 가지고 있다. 아르마딜로와 따개비가 이렇게 긴 성기를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아니면 신체적인 구조 때문에 그렇게 발달한 것이다.

생존의 목표는 후손 남기기

아르헨티나 오리의 수컷은 몸 길이만큼이나 긴 페니스를 자랑한다. 지금껏 보고된 것 중 가장 긴 것은 무려 42.5cm이다.
 아르헨티나 오리의 수컷은 몸 길이만큼이나 긴 페니스를 자랑한다. 지금껏 보고된 것 중 가장 긴 것은 무려 42.5cm이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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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딜로가 거대한 페니스를 가진 것은 무거운 갑옷이 교미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커다란 페니스를 갖게 된 것이다. 따개비는 바위에 정착하여 사는데, 그러다 보니 배우자를 찾기 위해 멀리 이동할 수 없다. 몸이 고정된 상태에서 수정을 하려면, 페니스가 유연하고 매우 길어야 한다. 신체적인 구조나 운신의 폭이 좁아 성행위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이를 만회하기 위해 페니스가 길어야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 남성의 경우 발기한 페니스의 평균 길이는 약 13~15cm라고 했다. 저자가 서양인이니 이 수치도 당연히 서양 남성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서양인에 비해 신체적 조건이 열세인 동양 남성의 경우는 아마도 이보다 길이가 더 짧을 것이다.

남성들은 성기의 크기와 길이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성기가 인간 남성의 평균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성기는 처한 환경에 따라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기가 큰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운신의 폭이 넓음에 감사해하며,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음을 자화자찬하는 것이 더 마땅할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온갖 생물들의 성기와 성행위에 대해 비교하고 분석하는 자료들이 나온다. 3억 8천만 년 전 고생물에서 공룡을 거쳐 영장류인 침팬지며 보노보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이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고의 생존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생식이라고 본다면 성행위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가진 독서모임은 다른 때와 달리 이야기 거리가 흥성했다. 온갖 동물의 페니스 길이가 종횡무진 난무했고 그들의 성행위가 안주거리로 등장했다. 무게만 해도 수십 톤에 달하는 공룡의 성행위는 어떠했을지도 상상했다. 그들이 만약 후배위로 성행위를 했다면 지축이 흔들렸을 것이다.

화석에 근거한 성의 기원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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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저자의 지난한 연구에 경의를 표했다. 화석을 탐사하고 분석을 위한 추적과 추론을 한 후 입증하고 논증하는 그 집요한 고군분투의 과정이 놀랍고 경탄스러울 뿐이다. 어찌 생각하면 저자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석 탐사를 갔다가 3억8천만 년 전 고생대 물고기가 그대로 들어있는 화석을 발견하다니, 더구나 새끼를 배고 있는 물고기였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하지만 감나무 밑에 드러누워 입만 벌리고 있다고 감이 입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화석을 발견한 후 상상하며 추론하고 마침내 분석하여 입증해내는 그 과정은 말이 쉽지 사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어렵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저자는 미국 전역을 돌며 '화석에 근거한 성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할 때마다 수강자들에게 "수정의 비밀을 최초로 밝힌 과학자가 누구인지 아세요?" 하면서 질문을 한다. 생물학의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들도 정답을 맞힌 사람이 없었다며 저자는 실망한다.

그럴 때마다 성의 신비를 알려주는 전도사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체외수정을 개발한 현대의 생명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신비로운 성의 세계를 넘나드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수정이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최초로 밝힌 위대한 천재 과학자의 이름은 누구였을까? 그 답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 끝 문장에 있다.

'그는 바로 베를린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였던 '오스카 헤르트비히(Oskar Hertwig)다.'

덧붙이는 글 | 판피어류(板皮魚類, placoderm): 화석으로만 알려져 있는 어류로 데본기(3억 4,500만~3억 9,500만 년 전) 내내 존속했다. 판피어류는 말 그대로 목과 몸통이 단단한 골판(骨板)으로 덮여 있는 물고기다. 상어·홍어·가오리류와 공통의 조상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어류이나 그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 성의 기원을 밝히는 발칙한 진화 이야기

존 롱 지음, 양병찬 옮김, 행성B(행성비)(2015)


태그:#판피어류,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존 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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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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