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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열풍'을 넘어 '페미니즘 유행'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차별이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들어있고, 젠더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여전히 낯선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나 학교 같은 공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런 환경에서 '성평등'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페미니스트로 자라나는 것, 그리고 페미니스트를 키워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각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나는 집에서 '공식적 모태솔로'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집에서 '공식적 모태솔로'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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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공식적 모태솔로'로 살아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적당히 믿음직스러운 거짓말을 변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스무 해하고도 몇 년을 가정의 울타리에서 보냈는데, 이렇게 전략적인 처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공식적 모태솔로가 되고자 한 이유는 간단하다. 연애, 그리고 연애의 과정에서 어느 순간 다가올 섹스를, 부모의 허락의 영역에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의 애인'이라는 존재는, 부모에게 언제나 위협적이다.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착하고 예쁜 우리 딸을, 지하세계의 어두운 곳으로 유혹할 것만 같은 상상이 부모의 머릿속에 펼쳐진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는 합리적인 의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연애의 시간은 결국 어느 순간 섹스의 가능성으로 연결될 테고, 섹스를 시작한 딸이 짊어져야 할 짐은 누구네 아들보다는 훨씬 무겁고도 무서운 것일 테니 말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성(性)에 대해 말하는 가정은 가장 늦은 속도로, 아주 낮은 비율로 늘고 있다. 시대의 변속 정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나고 자란 가정의 분위기도 다를 바가 없었는데, 부모님은 해방의 자유를 원체 중요하게 여기던 내가 뾰로통해지기 딱 좋은 그 정도의 태도를 취하셨다.

'첫사랑'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고3 때 찾아왔고, 그것은 '첫 연애'로 이어졌고 '첫 섹스'로 순간의 매듭을 지었다. 생에 처음 느껴보는 달콤한 시간이었지만, 부모님께 자랑할 수는 없었다. 당시 남자친구의 존재를 숨긴 가장 큰 이유는, 섹스보다는 공부에 있었다. 고3 때 연애를 하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며 부모님이 혼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고등학생의 나는 연애 '관계'가 섹스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도 했다. 쑥스럽지만, 그때는 진짜 그랬다.

엄마와 나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둘도 없는 절친이지만, 남자친구와 섹스했다는 사실만은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와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평소에 엄마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면 모를까, 엄마와 나 사이에 그런 시간은 전무했다. 나는 항상 전교 몇 등씩이나 턱턱 해오는 똘똘한 딸이었고, 그런 딸과 섹스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흥미로운 건, 엄마는 보건 교사로 오랜 시간 교단에 계셨다는 점이다. 엄마는 도심에서 멀리 벗어난 시골의 한 여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셨고, 그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선생님 중 한 분이셨다.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인 엄마는, 분명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잘 지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보건 선생님인 만큼, 성교육은 또 얼마나 재미있게 해주셨을까!

성교육을 직업으로 해온 우리 엄마조차도, 딸의 섹스까지는 상상의 범위를 펼치지 못했다. 생각했을 수는 있어도, 당연히 권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 하지 않기를 더 간절히 바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엄마가 선택한 건 '침묵'이었다. 어차피 얘는 남자에 관심도 없는 것 같으니, 괜히 호기심 생기게 알려주지 말자는 생각이셨을까? 자녀는 부모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 머리 위에서 놀아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간과한 것이다.

 나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름대로 안전하게 섹스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대개 남자에게 배우는 섹스는 그 자체로 한계적이다.
 나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름대로 안전하게 섹스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대개 남자에게 배우는 섹스는 그 자체로 한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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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만의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름대로 안전하게 섹스하는 사람이 됐다. 운이 좋았다. 청결한 공간에서, 청결한 상태로, 콘돔을 끼고, 서로 충분한 합의를 공유한 뒤 섹스를 했다. 이전까지 성행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 나는, 고등학생 때 만난 첫 남자친구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애인들에게 많이 의존해가며 관계를 맺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남성 집단에서 섹스에 관한 어떠한 것들을 많이들 배워왔겠지만, 내겐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남자에게 배우는 섹스는 그 자체로 한계적이다. 서로 다른 성기 구조를 지닌 남성과 여성은 자신의 신체구조에 어울리는 쾌락에 더욱 집중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나와 다른 성의 예민한 부분을 포착해낼 수 없다. 섹스에서 남성과 여성이 중요하다 느끼는 요소가 다르고, 그렇기에 몸으로 익혀가는 것 역시 다르다. 나아가, 365일 임신 가능성과 멀어질 수 없는 여성이 짊어져야 할 심리적 무게감은 남자가 지닌 그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서로 다른 성별을 가진 이들은 섹스에 대한 공감의 폭부터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여성의 지식이 필요하고, 그 지식은 거룩한 계보를 지니고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역사책을 들춰보면, 옛날에 여성들이 많이 모였던 개울가(동양), 양떼목장(서양) 등에서 여성의학에 관한 지식들이 공유되어온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여성들은 나름의 연대체를 결성해 각자의 실생활에서 얻은 지식들을 건네온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개울가에서 만난 아주머니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지만, 이렇게 여성들이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은 가정의 영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성과 관련된 지식은 여성이 여성에게, 가정 내에서는 엄마가 딸에게 전수할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가정 내에서 원활한 성 담론이 건설될 수 없었던 배경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성 엄숙주의와 보호중심적인 자녀 양육 패러다임 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성 담론에 폐쇄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청소년 자녀는 물론이고, 20대를 훌쩍 넘어 30대 자녀까지 성 엄숙주의의 영역에 집어넣어, 대화 자체를 단절시키는 경우들을 양산했다. 나는 분명 부모님 두 분의 섹스로 태어났을 텐데, 그 부모님과는 섹스 이야기를 할 수 없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성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존재하기에 가정에서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하는 분위기를 형상하는 건 필수적이다. 또, 이 모든 과정은 사회의 무한한 책임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
 여성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존재하기에 가정에서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하는 분위기를 형상하는 건 필수적이다. 또, 이 모든 과정은 사회의 무한한 책임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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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자녀의 연애와 섹스를 말해야 하는 이유

성 담론에 있어서는 할아버지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엄마가 지식 전달의 주체가 되면 좋다. 엄마와 딸은 동성 관계로서, 여성주의적 시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를 다루는 논의에는 '콘돔을 사용해 성병을 예방해라', '청결히 몸을 씻은 뒤 섹스를 해라' 등의 공중 보건 혹은 의학적 지점과 더불어 섹스 그 자체를 대하는 여성주의적 태도를 배우는 관점이 중요하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남자친구가 섹스해달라고 설득하는 것 자체가 데이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나 섹스 상황에 돌입하더라도 합의되지 않은 성적 자극을 요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점 등은 학교 시절 성교육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섹스할 때 보통 남성들이 주도권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주의 시각을 녹여낸 섹스에 대해 아는 것이 무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여성주의 시각을 지닌 아이를 키워내라는 요청 역시 엄마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그러한 아이가 자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단계는 가정과 사회가 함께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한다. 가족 내의 억압적인 공동체성에서 벗어나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가정 형태를 만든 뒤, 자녀의 연애와 섹스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상황에 알맞은 지식을 전달한다. 특히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는 자녀들은, 가정에서 여성주의 교육을 해도 사회의 남성주의적 목소리에 물들기 훨씬 쉬우므로 결국 페미니스트를 키워내는 주체로서 사회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근원적인 지점을 피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여성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존재하기에 가정에서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하는 분위기를 형상하는 건 필수적이다. 또, 이 모든 과정은 사회의 무한한 책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때로는 기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보호중심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20년 넘게 있다 보니, 부모님과 연애·섹스 이야기를 하겠다는 욕망조차 식어버린 지 오래다. 그저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외면과 불통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부모님도 잘 안다. 누구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 상자가 깨지는 날, 엄마는 나에게, 나는 엄마에게, 그동안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을지 차마 상상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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