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끼'고 사는 '여'자입니다. 따끈따끈한 신곡을 알려드립니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백이 생깁니다. 이 글들이 당신에게 짧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장마는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젖은 바지와 습한 공기가 그리 유쾌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제습기와 이것만 있다면 축축한 장마철을 촉촉한 시간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음악'이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비 내릴 때 노래 한 곡 간절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마음의 현상이 아닐까. 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이문세의 '빗속에서', 정인의 '장마', 럼블피쉬(원곡가수 박중훈)의 '비와 당신',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에서부터 현재 음원차트 1위를 지키고 있는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까지. 비는 뮤지션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가장 멋진 촉매제가 아닐까 싶다. 장마철 습기마저 아름다운 특수효과로 바꿔주는, 비를 주제로 한 음악 세 가지를 골라봤다.

태연, 'Rain'


"흑백뿐인 세상 속 한줄기 빛이 돼준 너/ 비가 되어 다가와 내 영혼을 환히 밝혀줘"

지난해 2월 발표한 태연의 'Rain'은 비 오는 풍경을 더없이 청량하게 표현한다. 강인원-권인하-김현식의 노래 '비오는 날의 수채화'처럼 회색빛 거리 위로 밝은 색 물감이 번지는 듯한 시각 효과가 인상 깊이 다가온다.

"텅 빈 회색 빛 거린 참 허전해/ 쓸쓸한 기분에 유리창을 열어/ 내민 두 손 위로 떨어진 빗방울/ 가득 고이는 그리움 나의 맘에 흘러"

태연의 'Rain'은 언뜻 들으면 그리움, 쓸쓸함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행복함에 가깝다. 노래를 들여다보면, 비를 바라보거나 만지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로 그려진다. "비가 오면 내리는 기억에 번지는 아픔에/ 흠뻑 쏟아지는 너를 보다"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쏟아지는 비 = 너'다. 뒤이어 "선명했던 그 시간에 멈춘 채 추억에 젖은 채/ 아름다웠던 너를 그려"란 노랫말이 따라온다. 비를 보면서 그리운 사람과의 행복했던 추억에 젖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노래는 시각과 촉각을 두드러지게 사용해 청량함을 배가한다. '회색빛, 번지다, 얼룩져, 선명한, 퍼져, 물든' 등의 노랫말에서 투명한 수채화가 연상되고, 손바닥 위로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묘사에서는 시원한 빗방울의 감촉이 느껴진다. 리듬도, 멜로디도 청량하다. 비가 와서 질척한 마음일 때 태연의 'Rain'을 듣는다면 그리움이 씻겨내려간 듯 산뜻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OST, '심호흡'

태풍이 지나가고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스틸컷.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한 장면. ⓒ 티캐스트


지난해 7월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OST인 하나레구미의 '심호흡'도 비를 소재로 한 노래다. 물론 영화를 보고 이 곡을 듣는다면 감동이 커지겠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가사를 음미하며 듣는다면 짠한 뭔가를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었건/ 잘 가 어제의 나/ 맑게 갠 하늘에 비행기구름/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이렇게 시작한 노래는 다음의 가사로 마무리 된다.

"꿈꾸던 미래가 어떤 것이건/ 헬로 어게인 내일의 나/ 놓아버릴 수 없으니까/ 한 걸음만 앞으로/ 한 걸음만 앞으로/ 또 한 걸음만 앞으로"

영화의 내용처럼 이뤄지지 않은 꿈과 바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이 노래는, 후회로 남아버린 어제의 나를 뒤로하고 내일의 나를 맞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잔잔한 희망이 전반에 깔린 곡이다. 제목처럼 큰 심호흡을 하고 나서, 다시 일어서서 걸어갈 때에 딱 어울릴 법한 배경곡이다. 거칠었던 태풍은 지나가고 억수 같던 비도 그치고, 하늘에 부드러운 해가 고개를 내밀 때의 풍경이 담겨 있다.

쇼팽, '빗방울 전주곡'


폴란드의 작곡가 쇼팽(F. Chopin)의 24 Preludes Op.28 No.15은 '빗방울 전주곡'으로 불린다. 24개의 전주곡에 쇼팽이 직접 이름을 붙인 건 아니고, 후에 사람들 이 전주곡들에 별칭을 붙인 것이다. 그 중 15번째 전주곡은 반복되는 왼손의 반주가 떨어지는 빗방울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빗방울 전주곡'이란 별칭이 붙었다.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은 1838~1839년 겨울, 그가 스페인 남쪽의 지중해 섬 마조르카에 머물며 우울한 시기를 겪었을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쇼팽은 당시 6살 연상에, 두 아이의 엄마였던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연인 사이였는데 상드는 폐결핵으로 아픈 쇼팽을 극진히 돌봤다. 두 사람은 따뜻한 곳을 찾아 마조르카에 간 것이지만 예상과 달리 그곳 날씨는 좋지 않았고, 쇼팽의 건강이 악화되며 각혈까지 하는 등 여러모로 우울한 상황에 처했다. 어느 날 상드가 두 아들과 함께 외출했을 때 비가 내렸고, 집에 홀로 남은 쇼팽이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 '빗방울 전주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빗방울 전주곡'에는 전반적으로 우울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듣는 이에게는 이 우울한 정서가 위로로 다가오는 듯하다. 곡의 중반부에 이르러 점점 강해지며 빨라지는 음들은 굵게 쏟아지는 빗방울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 비는 그치기 마련이고, 이를 반영하듯 후반부로 가며 음들은 다시 차분해지며 느려진다. 슬픔으로 격렬해진 감정이 가라앉고, 조용하게 눈물을 닦아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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