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수현.

배우 김수현. 그에게 영화 <리얼>은 어떤 필모그래피로 남을까. ⓒ 키이스트


데뷔 이후 김수현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2007년 MBC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로 데뷔 이후 <드림하이>(2011), <해를 품은 달>(2012), 영화 <도둑들>(2012), <별에서 온 그대>(2013) 등 그를 수놓는 성공작들이 벌써 여럿이다. 그리고 내놓은 영화 <리얼>. 김수현 스스로 "20대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이라 말할 정도로 공을 들였고 애정을 쏟은 이 작품이 개봉 이후 혹평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조롱 섞인 평까지 나올 정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수현은 "다시 이 작품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성패와 상관없이 스스로 모든 걸 쏟았다는 의미다. 극중 카지노 소유권을 쥐고 숙적들을 제거하는 장태영과 그 장태영에게 접근하는 의문의 남자 장태영, 즉 1인 2역을 연기한 그는 영화 제목대로 진짜와 가짜 존재에 대해 깊이 빠져있었다.

VIP 시사 때 울컥

"제가 작품들을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올해로 벌써 10년이 됐다. 데뷔 초부터 스스로를 깨뜨리고 망가뜨리기도 했는데 <리얼>에 그간 배운 걸 농축한 느낌이다. 남김없이 풀어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더 욕심나고 바라는 게 많았다. 흥행 결과가 어떨지 모르지만 <리얼>이라는 작품을 계속 사랑할 것 같다"

 영화 <리얼> 한 장면

영화는 "진짜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있다. 두 명의 장태영은 어느 순간 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주객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어지러운 설정에서 그걸 연기한 김수현 역시 고군분투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앞서 지난 27일 진행된 <리얼>의 VIP 시사회에서 김수현은 무대 인사 중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나왔고, 관련기사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혹평 이후 지인들만 모인 자리에서 응원받으니 감동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김수현은 "무대 인사를 돌면서 제가 초대한 식구들을 보는데 맨 앞에 막내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였다"며 "저보고 형! 형! 하는데 거기서 울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청춘스타'로 촬영현장에서 매번 막내였던 그에게도 어느새 믿고 따르는 동생들이 생긴 것. "그들 보며 고맙기도 했고, 여러 감정이 들었다"고 김수현이 웃으며 덧붙였다.

그만큼 김수현은 이 영화에 빠져 있었다. "군 입대 전까지 드라마 하나를 더했으면 좋겠지만 영화를 그간 많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는 안 한다"며 "크게 성공한 이후 지금 영화가 혹평을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짐짓 점잖게 말했다. 알려진 대로 <리얼>은 그의 친척인 이사랑 감독이 제작 및 연출을 맡은 작품. 그만큼 소통도 긴밀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 작품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리얼>에서 가장 욕심난 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의 개수였다. '진짜 장태영이 누굴까'? 저도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알 수 없었다. 분량도 엄청 많았고, (액션, 감정 연기 등) 소화할 요소들을 보고 무섭기도 했는데 그걸 이겨낼 만큼 욕심이 났다. 영화 첫 장면에서 카리스마 있게 등장하는 장태영을 보고 관객들은 주인공이라 생각하겠지? 근데 보다보면 그게 함정이다. 나도 분석하면서 하나씩 알아갔다. 하나 팁을 드리자면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장태영은 둘 다 가짜다. 관객 분들은 가짜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거다.

의외라 생각하실 수 있는데 수트 장태영이 가장 힘들었다. '따라쟁이 장태영'은 오히려 표현할수록 뭔가 웃음이 나고 누군가 조롱하는 마음이 튀어나와 재밌게 할 수 있었는데 수트 장태영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했다. 좀 더 내가 나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성격을 강하게 표현해야 했으니. 개인적으로 이번 연기에서 쾌감이 있었다. 해보고 싶은 걸 다한 거 같다(웃음)."

겁쟁이와 스타 사이

 영화 <리얼>의 관련사진.

김수현은 고심 끝에 이 작품을 골랐다. 그리고 고른 데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 CJ엔터테인먼트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 김수현이 <리얼>에 빠진 또다른 이유다. 일찌감치 한국을 넘어 아시아 스타로 부상하며 그는 타인이 자신을 정의하는 것과 자신이 생각하는 본 모습 사이의 거리감을 크게 느꼈다. "어떤 학자가 '자기 자신은 타인에 의해서만 정의된다'고 한 말이 있는데 참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했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리에서 사람들이 제게 '설리야 밥 먹자!'이러면 그 자리에선 설리가 되는 거잖나. 제가 아무리 항변해도 그들이 설리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데뷔 초엔 연예인과 인간 김수현 두 부분의 거리가 자꾸 멀어진다는 느낌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한쪽에선 자연스럽게 날 챙겨주고 배려하는데 동시에 다른 나는 심하게 겁쟁이가 돼 있더라. 내가 참 공주님처럼 돼 있다는 걸 느꼈다. 

지금에선 이걸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좋다! 그 괴리감을 좁히기 위해 나름 노력했는데 일상에서부터 시작했다. 일단 인정해야할 건 인정하고 이 상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그래서 2년 전엔 <프로듀사>를 끝내고 혼자 여행도 다녀왔다. 일본 시골마을이었는데 사람이 거의 없더라(웃음). 기차를 정말 많이 탄 기억이 난다."

마냥 스타인 줄 알았던 그에게도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할 고민들이 있었다. 김수현은 연기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던 계기, 괴로웠던 때를 하나하나 언급하며 "내가 진짜 연기를 좋아한다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2009년이었을 거다.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올까요> 때 고수 형 아역을 준비하면서 혼도 엄청 났다. 경상도 산청에서 촬영했는데 한 달 간 숙소에 있으면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웃음). 너무 답답해서 왜 잘 안 될까 대본을 쥐어뜯으며 혼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그때 욕심이 많이 생겼다. 뭔가 집중하면 그때 기억이 잠시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그땐 왜 한곳으로 집중하지 못할까 많이 자책했다."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연기가 이젠 일생일대의 목표가 돼 있었다. 인터뷰 중 그가 가장 많이 뱉은 '욕심'이란 단어가 맴돈다. 분수에 맞지 않는 목표가 아닌 그의 강한 열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20대를 이렇게 마무리 하며 군 입대 후 30대를 또 새롭게 준비해서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다부짐이 느껴졌다. 여전히 그는 보여줄 것이 참 많이 남았다.

 배우 김수현.

김수현은 아직 보여준 것 보다 보여줄 것이 훨씬 더 많은 배우이다. ⓒ 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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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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