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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3년 넘게 대기업 LG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가 지난 1일 광화문1번가에 제출한 불공정 사례 접수카드와 배부받은 접수증. 불공정 사례 분야의 접수는 1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는데, 김 대표는 5시간 전부터 현장에 도착해 자신의 사례를 1호로 등록했다. 접수증에 '1'이란 숫자가 선명히 박혀 있다.
 만 13년 넘게 대기업 LG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가 지난 1일 광화문1번가에 제출한 불공정 사례 접수카드와 배부받은 접수증. 불공정 사례 분야의 접수는 1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는데, 김 대표는 5시간 전부터 현장에 도착해 자신의 사례를 1호로 등록했다. 접수증에 '1'이란 숫자가 선명히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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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사장님'은 170개가 넘는 특허권을 책상에 펼쳐 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만 13년 넘게 대기업과 싸우고 있는 김성수(65) 서오텔레콤 대표의 한탄이다. 21일 서울 송파구 서오텔레콤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2004년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LG유플러스(당시 LG텔레콤)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다.

서오와 LG의 소송은 대표적인 대기업-중소기업 간 특허분쟁이자, '기울어진 운동장'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2007년 대법원은 LG가 제기한 특허무효심판에서 서오의 특허를 인정했다(12개 특허 청구항 모두 유효). 하지만 이후 대법원과 특허심판원은 손해배상청구 소송, 권리범위확인심판 등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LG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을 시작하며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다. 확실히 느꼈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대기업은 대형로펌을 끼고 재판에 임한다. 중소기업은 대형로펌의 수임료를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형로펌에서도 우리의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제대로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다."

5시간 기다려 광화문1번가 1호 불공정 사례 접수


이러한 김 대표가 지난 1일 새벽 마지막 희망을 품고 집을 나섰다. 오전 5시, 그가 도착한 곳은 국민인수위원회가 운영하는 광화문1번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겠다며 광화문 앞 세종공원에 만든 국민인수위원회 정책 제안 기구다(관련기사 : '명박산성' 막았던 자리에 '소통의 컨테이너' 놓다).

김 대표가 광화문1번가를 찾은 1일은 불공정 사례 분야의 접수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접수는 오전 10시부터였지만, 그는 5시간 전부터 현장에 도착해 자신의 사례를 광화문1번가 '1호' 불공정 사례로 등록했다.

김 대표는 접수장 말미에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저의 가슴에 대못을 뽑아 주세요"라고 적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번으로 접수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상징성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김 대표의 표정에도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만 13년 넘게 대기업 LG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가 지난 21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170개가 넘는 특허증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만 13년 넘게 대기업 LG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가 지난 21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170개가 넘는 특허증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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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휴대전화 기술 개발에 들어간 김 대표는 2001년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비상호출 처리장치와 그 방법에 대한 발명특허'를 출원해 2003년 등록을 마쳤다. 휴대전화A 외부에 설치한 비상호출 버튼을 2~3초 정도 누르면, 미리 등록된 휴대전화B로 구조를 요청하는 기술이다.

특허에는 구조 요청뿐만 아니라 휴대전화A가 있는 현장이 휴대전화B에 음성이 중계되는 기능도 들어가 있다. 또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거나 폴더를 열지 않아도 외부에 부착된 버튼을 통해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어, 지금도 위급한 상황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U-서울안전서비스 관련 전문가 회의'에서 서울시 측은 "단축버튼 또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보니 문제가 많다"라며 "서오가 제안한 기술이 좋다는 의견이 많아 회의를 열었다"라고 설명했다. 같은 자리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측도 "오작동 및 장난전화에 대한 대안으로 서오의 기술과 같은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러한 기술을 개발하게 된 이유를 묻자, 김 대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기술을 개발하기 전) 조카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목숨을 잃었다. 그 아이의 엄마도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전히 진행 중인 LG와의 소송


김 대표는 특허 출원 이후인 2002년 5월과 특허 등록 직후인 2003년 4월, 모두 두 차례 LG 측을 만났다. 자신의 특허를 설명하고, 사업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기술설명서, 특허명세서, 사업계획서 등의 자료를 LG 측에 제공했다.

하지만 LG는 어떠한 계약도 하지 않고, 서오텔레콤의 기술이 담긴 'LG알라딘폰'을 2004년 출시했다. 이에 서오텔레콤은 LG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고, LG는 되레 서오텔레콤의 기술을 상대로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07년 특허무효심판과 관련해 서오텔레콤의 12개 특허 모두가 유효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 5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 국민인수위원회 '광화문1번가’가 개소하자,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 '광화문1번가'에 정책 제안하는 시민들 지난 5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 국민인수위원회 '광화문1번가’가 개소하자,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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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서오텔레콤의 싸움은 계속됐다. 곧바로 서오텔레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LG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심판은 이겼지만 민사재판은 패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서오텔레콤은 2014년 9월에도 권리범위확인심판 소송을 이어갔지만, 특허심판원(특허심판의 경우 1심 특허심판원, 2심 특허법원, 3심 대법원)은 이를 2015년 각하한 데 이어 지난 4월 11일 기각 처리했다.

LG의 주장과 이를 받아들인 특허심판원의 논리는 '기능은 같지만 방식이 다르다'로 요약할 수 있다. LG알라딘폰에서 구현하는 비상호출 기능이 서오의 아이디어와 같지만, 통신 채널이 오가는 과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차이를 간단히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서오 : 휴대전화A 비상호출→채널→휴대전화B 음성중계 모드
LG : 휴대전화A 비상호출→1차 채널→채널 끊음→2차 채널→휴대전화B 음성중계 모드

이와 관련해 최주식 LG유플러스 부사장은 지난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이미 여러 차례 소송을 통해 특허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라며 "서오가 제시한 기술도 유효한 것이지만 LG가 적용한 기술은 서오의 기술과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LG는 오히려 퇴화된 방식을 사용하는 꼼수를 부려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 2013년 3월 LG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기술검토보고서를 내놨다. ETRI는 정보통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1976년 설립된 국책 연구기관으로, 해당 보고서는 청와대 민원실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시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ETRI는 보고서를 통해 "별도의 트래픽 채널 해제 절차를 수행하지 않으면 (중략) 이동통신단말기와 비상연락처(비상정보 관리서버) 간에 형성한 기존의 통화 채널은 유지되므로 비상연락처에 의한 호 접속으로 새로운 통화 채널의 형성은 불가능함"이라고 설명했다. 즉 LG의 주장처럼 굳이 한 번 전송된 채널을 끊었다가 다시 채널을 형성할 이유가 없으며, 이것이 국제통신기술표준규약(EIA/TIA IS-95)에도 위배된다는 취지다.

만 13년 넘게 대기업 LG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가 지난 21일 자신의 사무실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고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만 13년 넘게 대기업 LG와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가 지난 21일 자신의 사무실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고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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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보호 없이 양질의 일자리 없다"

서오텔레콤에 앞서 서오기전을 운영했던 김 대표는 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사로 원자력발전설비 국산화 사업에 참여했다. 회사는 승승장구했고, 5년 만에 서울 송파구의 5층 건물을 사옥으로 매입했다.

제조업의 한계를 느낀 김 대표는 2000년 IT업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회사 이름도 서오기전에서 서오텔레콤으로 변경했다. 이후 회사는 연구원을 포함한 직원이 40여 명에 이를 만큼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2004년 LG와의 특허분쟁을 시작하며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대표는 "사옥으로 썼던 이 건물에 지금은 세 들어 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내보였다. 현재 서오에 소속된 직원도 다섯 명 남짓에 불과하다.

"저를 믿고 투자해주신 분들을 위해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하지만 자꾸 길어지다 보니 이제 죄의식만 남아 있다. 화가 나서 잠을 못 자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요샌 하지 말아야 할 별 생각을 다한다."

김 대표는 지난 4월 11일 나온 특허심판원의 권리범위확인심판 기각 판결에 불복해, 5월 1일 특허법원에 항소했다. 그는 "특허법원 판결 때까지만 살아있겠다는 생각으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라며 "이렇게 살기엔 너무 힘들다. (특허법원에서마저 패소하면) '가족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나를 희생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문 대통령의 제1공약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대기업-중소기업 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정부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어 창업 활성화를 내세웠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기술력 없는 창업은 1년을 못 가고, (기술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이 성장·발전하지 못하면 양질의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다. 차별화된 기술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때 양질의 일자리의 토대가 마련된다.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

한편 김 대표는 지난 27일 국민인수위원회의 요청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그는 면담 직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희망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제 문제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를 꼭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태그:#LG, #서오텔레콤, #김성수, #문재인 대통령, #광화문1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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