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써클> 캡처 사진

tvN <써클: 이어진 두 세계> 포스터. ⓒ CJ E&M


한국 최초 SF 스릴러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tvN <써클: 이어진 두 세계>가 27일 12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외계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2017년 '파트1: 베타 프로젝트'와, 감정과 기억이 통제된 2037년 미래 사회 '파트2: 멋진 신세계'. 20년의 시차를 두고 미스터리를 추적하던 두 이야기는 최종회에 이르러 '하나의 세계'로 합쳐졌다. 20년 전 사라진 동생을 찾아 헤맨 김준혁(김강우 분)은, 20년 전 사라진 모습 그대로 나타난 동생 우진(여진구 분)의 복제 인간을 동생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존재를 혼란스러워하던 우진과 한정연(공승연 분)은 '기억'을 매개로 정체성을 확인했다.

외계인,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통제하는 스마트칩, 황사·미세먼지로 인해 일반지구와 스마트지구로 나뉜 미래 사회. 'SF' 장르를 표방한 <써클>의 설정은 낯설었다. 하지만 12회 동안 촘촘히 구축한 <써클>의 세계는 반전의 연속이었고, 과학 발전을 핑계로 인간을 도구화하는 세상을 향해 던진 메시지는 묵직했다.

하나도 멋지지 않았던 '멋진 신세계'

 tvN <써클> 캡처 사진

2037년에 나타난 우진의 클론을 '부품' 취급하던 준혁은, 그가 우진의 기억과 추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동생으로 받아들인다. ⓒ CJ E&M


"기억은 책임이고 정의입니다. 기억을 지운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극 중 김호수(이기광) 대사)

<써클>을 관통한 가장 큰 메시지는 '기억'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은데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우는 어린 우진에게, 외계에서 온 별이(공승연 분)는 기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메모리 큐브를 만들어 우진에게 선물했다. 휴먼비는 이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통제했고, 불편한 기억이 차단된 스마트지구 사람들은 책임감이나 죄책감도 없이, 가짜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휴먼비 안정케어의 신봉자였던 스마트지구 공무원 김호수는 양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아픔에 결국 자살한 연인의 기억을 되찾자 혼란에 빠졌다. 고통스러운 기억에 "제발 기억을 차단해 달라"고 휴먼비에 매달리기도 했지만, 연인의 양아버지가 죄책감도 없이 스마트지구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걸 보고서야 기억이 곧 책임감임을 깨닫고, 휴먼비에 맞섰다.

휴먼비 기술의 근원은 별이가 우진에게 선물한 메모리 큐브. 이 큐브는 오로지 우진의 생체정보와 기억으로만 작동했다. 우진이 교통사고로 죽자, 휴먼비 회장 박동건(한상진 분)은 복제 인간을 만들어 슈퍼컴퓨터의 부품으로 이용하기까지 한다. 2037년 파트2에 등장한 우진은, 2017년의 우진이 아닌, '써클레이터3'로 명명된 우진의 클론이었다. "저게 진짜 우진이면, 죽은 내 동생은 누구냐"던 준혁의 울음과, 우진의 기억과 감정을 모두 가졌기에 고스란히 상처 받는 우진의 클론. 그런 우진을 '이거' '저거'라 부르며, 부품 취급하는 사람들. <써클>은 막연히 교과서에서나 읽었던 '생명 윤리'나 '인간의 존엄성'을,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지 모를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깊이 생각해보라"고 제안했다.

기술 발달이 파괴한 인간성

 tvN <써클> 캡처 사진

별이가 우진에게 준 선물. 이 메모리 큐브는 결국 우진과 인류를 끔찍한 미래로 데려갔다. ⓒ CJ E&M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야. 탐욕, 분노, 공포. 이런 헛된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쳐. 기억만 제어되면 범죄도, 전쟁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어.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신세계를 만드는 거라고."
"그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불완전한 인간이야. 누군가는 이 기술을 독점하려 들 거고, 그럼, 사람이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고 통제까지 하려 들 거야." - 한용우(송영규 분)와 김규철(김중기 분)의 대화


<써클>이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이야기한 지나친 과학기술 남용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은 미래학자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작가진은 초고도로 발달한 과학이 사회를 지배하고, 자유가 통제된 채 행복이 강제 주입되는 헉슬리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차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의 감정 변화를 최소화하고 안정적 질서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헉슬리의 미래 세계와, 안정케어칩에 의해 감정이 통제되어 범죄가 사라진 <써클>의 멋진 신세계. "별이의 기술만 있다면, 인류는, 세상은, 멋진 신세계가 될 거다"라며 흥분하는 한용우 교수(송영규 분)의 대사는, 인간성이 사라진 사회는 하나도 멋지지 않다는, 역설적 외침이었던 셈이다. <써클>이 외계인과 스마트지구라는 이질적 설정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진짜 메시지는 결국 '사람이 먼저'라는 보편적 진리였다.

<써클>은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와 촘촘한 세계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스릴러' 장르 극으로서의 본분도 훌륭하게 끝냈지만, SF라는 낯선 장르의 한계와 복잡한 세계관이 얽혀있어 중간 유입이 어렵다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2%대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써클>은 'SF'라는 장르적 파격 외에도 획일화된 드라마 형식에 여러 파격을 줬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멀티트랙'은 물론, 통상 16부작으로 제작되던 미니시리즈 제작 풍토에서 벗어나 12부작으로 압축해 이야기를 채웠다. 연출을 맡은 민진기 PD는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압축적으로 스피디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서로 분리된 두 이야기가 진행되는 터라 따지고 보면 24부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24부작을 만드는 정도의 공력이 들었겠지만, 이야기 전개는 각각의 이야기가 6회 정도 분량에 채워진 셈. 덕분에 후반으로 접어들면 상황이 늘어지거나 반복되던 우리 드라마의 고질적인 약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빠르고 급박한 전개는 친절하지 않았고, 시청자 중간 유입을 막는 결정적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 빈틈을 메운 건 기억과 추억의 차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탄생한 생명에 대한 책임과 같은 생각할 '거리'들이었다.

<써클>이 포문 연 'SF'

 tvN <써클> 캡처 사진

별이의 정체는 정말 외계인이었을까? <써클>이 남긴 기분좋은 호기심은 '시즌2'에서 채워질 수 있을까? ⓒ CJ E&M


2037년에 등장한 우진의 클론이 '써클레이터3'라면, '써클레이터2'는 어떻게 됐을까? 우진의 기억과 의지를 그대로 지닌 클론이었다면, 분명 휴먼비와 맞서지 않았을까? 김규철 박사는 별이의 기억을 어떻게 차단했을까? 별이의 정체는 정말 외계인이었던 걸까? <써클>이 남긴 질문들은, 뿌린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지 않아 남는 '찝찝한 궁금증'이 아닌, 드라마의 흥미와 시즌2에 대한 기대를 북돋는 즐거운 호기심이었다. 

물론 CG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미드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BBC <닥터후> 역시 CG와 특수효과는 조악했다. 그럼에도 <닥터후>가 SF 드라마의 전설이 될 수 있었던 건, 촘촘한 반전과 복선, 이야기 속에 담긴 감동적인 메시지 덕분이었다. <써클>은 CG의 여백을 메운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와 철학적인 메시지로, 한국형 SF 드라마의 출발선을 기분 좋게 끊었다.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시작된 '타임슬립' 열풍은 <나인> <시그널>을 탄생시켰고, '수사극' <신의 퀴즈>가 있었기에 <보이스> <터널>이 나올 수 있었다. <써클>이 포문을 연 'SF'에서는 또 어떤 명품 SF 드라마가 탄생할까? 민진기 PD와 김진희·유혜미·류문상·박은미 네 명의 작가들이 쓴 <써클>의 '최초' 기록들. 이 도전들이 갖는 진짜 의미는 그때 다시 회자될 수 있을 것이다.

써클 여진구 김강우 공승연 이기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