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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범어사 편안한 느낌입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 편안한 느낌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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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
                        경허 스님

   신광(神光)이 탁 트인 객이
   금정산에 맑게 노닐네라
   낡은 소맷자락에 하늘 끝을 감추고
   짧은 지팡이로 땅 머리를 두드리네
   외로운 구름 먼 산에 피어오르고
   백조는 긴 물가에 나린다
   이 세상에 꿈속 아닌 자 그 누구인가
   나만이 홀로 깨어나 유유자적 한다네

<마음꽃(도서출판 고요아침, P116)>에서 소개하는 경허 스님 선시입니다. 이 게송은 "경허 스님께서 범어사 보제루를 보고 썼다"고 합니다. 그래, 홀로 유유자적하신 스님 체취를 따라 금정산 범어사 경내를 가만가만 걸어 봅니다. 그러면 감히 신광이 탁 트인 객이 될까 싶어. 그렇습니다. 열반경에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는 부처가 될 성품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고 하니, 못할 것도 없지요. 걷다 보면 끝이 있을 터.

금정산 범어사 유래, '비움' 그리고 '채움'

부산 금정산 범어사 그저 편안합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 그저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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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 입구입니다.
 부산 범어사 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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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총림 범어사 일주문은 조계문이라고도 합니다.
 금정총림 범어사 일주문은 조계문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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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 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라고 했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8년 의상대사가 해동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하였다."

금정총림 범어사(주지 경선 스님)가 전하는 물고기 관련 전설입니다. 바위샘에서 금빛 물고기가 논다니 신기함이 보통 아닐 듯합니다. 범어사 일주문, 다른 절집과 달리 4개 큰 기둥 위에 세워진 게 인상적입니다. 범어사 일주문은 '조계문'이라 불립니다. "모든 법이 하나로 통한다"는 법리를 담고 있어 '삼해탈문'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찰의 일주문 중 걸작(보물 제1461호)으로 꼽힘입니다. 가람에 들어서니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사색에 잠깁니다.

"비워라!"

말하곤 합니다. 주위에선 "비워"하면 "알았어!"라고 답하긴 합니다. 정말로 알아들은 건지…. 그런데 간혹 불평불만입니다. "대체 비우는 게 뭐냐?"는 겁니다. 어떤 이는 "개뿔. 누군 비우고 싶지 않아서 못 비우나. 그게 안 되니 그렇지. 말처럼 쉽게 비워지면 도인이 따로 있을 필요 없지. 안 그래?" 합니다. 빙그레 웃고 말지요.

'비움'은 어떤 의미일까? 사전적 의미는 "용기(그릇)에서 없애거나 속에 든 것이 없게 하다"란 뜻입니다. 반대말로 "더 들어갈 수 없이 가득하게 넣거나 더하다"란 단어 '채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려 놔라'며 비우기를 요구하는 '비우다'의 철학적 의미는 무얼까? 경허 스님 말씀처럼, 꿈속에서 지나가는 한 스님을 붙잡았습니다.

"비움과 채움은 서로를 마주보는 거울 같은 것"

부산 금정산 범어사 불이문입니다. 이곳에서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봅니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 불이문입니다. 이곳에서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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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 비움은 어떤 의미입니까?
"뭐 하러 물어. 소주는 버리면 아까워 밖에 버리지 못하고 사람 몸속에 비우는 게지. <불유교경>에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번뇌도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삶은 구함도 없고 하고자 함도 없기 때문에 그런 근심이 없다'고 했어."

- 스님, 어떻게 해야 비워집니까?
"찻잔 속의 차 같은 것. 어떤 사람이 컴퓨터를 배우면서 매일매일 글 하나를 빠짐없이 올렸어. 그러다 보니 매이게 된 거라. '이제 그만 놔라' 했더니, '맨날 보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만 두냐?'는 거라. 그래 그랬지. '내일은 소주병 사진 한 장 올려 놔!'라고. '소주병은 왜?'라고 묻더라고. '술 먹느라 글 못 올린다는 표시'라 했지. 또 '다음 날은 빗자루 사진 하나 올려라' 했어. '왜냐고? 청소하느라 글 못 쓴다'고."

- 스님, 왜 비워야 합니까?
"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줄(번뇌)로 옭아 묶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푸는 게 중요해. 자기 행동에서 비롯된 괴로움은 스스로 풀어야지. 다른 사람은 못 풀어. 이상하게 자기가 묶은 줄은 풀기도 쉬워.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기를 묶는 '타승타박(他繩他縛)'은 풀기가 더 힘들어."

- 스님, 비운다고 비워집니까?
"놓는다, 비운다는 건 '응아'하는 것과 같아. 응아는 몸속 노폐물을 비우는 거지만, 바로 물질을 비우는 거여. 나를 풀어주는 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게 비우는 거야. 현실을 나에게 맞추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만족할 줄 아는 게 비우는 거지."

- 스님, 채움은 무엇입니까?
"학자들은 이론을 붙잡고 있고. 승려들은 부처님 이론을 붙잡고 있어. 이렇듯 우리는 뭣이든 가득 채우려고 해. 갖다놓고 저장하려는 인간의 본성이야. 채우는 건 본능이야. 비워라 함은? 물은 다 차야 비로소 넘치고 비워져. 그 전에는 억지로 비우지 않으면 비울 수가 없어. 비우라는 건 다 차야 비워진다는 전제하에 가능해. 비움은 비우기 전에 먼저 채우라는 등 몇 단계가 생략된 말이야. 비움과 채움은 서로를 마주보는 거울(해탈) 같은 것이야."

초발심, 석가모니 부처님도 행하셨던 수행 '탁발'

경허 스님께서 보고 '범어사' 선시를 지었다는 '보제루'입니다.
 경허 스님께서 보고 '범어사' 선시를 지었다는 '보제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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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 대웅전입니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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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건물 지붕에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윗쪽으로 천막이 쳐져 있습니다. 초발심에 코끝이 찡합니다.
 범어사 건물 지붕에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윗쪽으로 천막이 쳐져 있습니다. 초발심에 코끝이 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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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는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원효대사, 표훈대덕, 낭백선사, 명학스님, 경허선사, 용성선사, 성월선사, 한용운선사, 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서산대사 제자들이 이 절을 근거지로 왜군들과 싸우기도 하였다."

범어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금정산 범어사, 고승대덕들이 많이 수행 정진한 절집이니만큼 초심이 중요하리라 여겨집니다. 앗! 범어사 경내를 돌던 중 천막으로 둘러쳐진 지붕과 지붕의 기와 틈에서 자라는 풀을 봅니다. 풀이 제법 많습니다. 다른 절집 같으면 바로 고쳤을 텐데, 반가움에 코끝이 찡합니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인 '초발심'을 봤다고 할까. 예서 설화 하나 소개하지요. 다음은 스님이 전하는 설화입니다.

"조선시대, 술만 마셨다 하면 아무거나 걸리는 대로 집어 아내를 때리는 남편이 있었다. 매 맞고 사는 아내 입장에선 미칠 지경이었다. 어느 날, 바랑을 맨 노 스님께서 탁발을 왔다. 그 아내는 노 스님에게 쌀을 시주하며 남편 술버릇을 하소연 했다. 이야기를 들은 노 스님께서 처방을 내렸다.

'집안 곳곳에 발을 두어라.'

아내는 노 스님의 말씀대로 집안 곳곳에 발을 놓았다. 어느 날 또 노 스님께서 탁발을 왔다. 아내는 노 스님에게 술만 마시면 잡히는 대로 집어 때리는 남편이 달라졌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스님께서 답했다.

'전생에 당신은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마부였고, 남편은 당신이 휘두르는 채찍을 맞던 말이었다. 그 인연법에 따라 술만 마시면 잡히는 대로 집어 때린 것이다. 남편이 당신을 때린 것은 당신이 때린 만큼 맞아야 할 인과응보였다. 그래, 집안 곳곳에 발을 두게 한 것이다.'"

이들 부부의 전생 인연을 알아본 노 스님은 아마 큰 스님이셨나 봅니다. 요즘은 이런 설화 드뭅니다. 스님들이 탁발을 다녀야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넘쳐날 텐데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탁발(托鉢)은 "승려가 마을을 다니면서 음식을 구걸하는 일"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행하셨던 불교의 한 수행 방법입니다. 범어로 "Pindapa-ta이며, 걸식(乞食)으로도 번역"됩니다.

탁발은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하였으나, 탁발로 생계를 삼는 사이비 승려가 등장함에 따라 1964년부터 이를 금했다"고 합니다. 하여, 탁발은 간혹 불교종단에서 이벤트로 행해지는 무늬만 탁발에 그치는 경향입니다.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탁발의 핵심은 "자신을 낮추고 절제하는 출가수행자의 정신을 담고 있고, 대중의 삶과 대면해 열려 있는 자세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절이, 스님들이 바뀌어야 한다. 왜?

비움과 채움이 함께하는 금정산 범어사입니다.
 비움과 채움이 함께하는 금정산 범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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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담벼락에 깔개를 널었습니다. 우리네 마음이 나온 듯합니다.
 범어사 담벼락에 깔개를 널었습니다. 우리네 마음이 나온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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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님 범어사 경내를 걷고 있습니다.
 어느 스님 범어사 경내를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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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과 시주는 곧 공양이다. 탁발과 시주는 서로 좋을 일이다. 중생은 시주해서 좋고, 스님은 공양 받아 좋은. 그런데 지금은 탁발이 거의 사라졌다. 요즘 스님들은 신도들이 가져다주는 시주를 절에 가만히 앉아서 받거나, 큰 걸 바라는 행태가 넘쳐난다. 절이, 스님들이 바뀌어야 한다. 부디 스님들이 부처님의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 생각입니다. 절집에 다녀보니 알겠더군요. 물론 묵묵히 수행 정진에 힘쓰는 스님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절과 스님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저 시늉만 하고 있습니다. 신도를 평가하는데 돈이 중요 덕목입니다. 받는데 익숙하다 보니, 자비를 베풀기보다 립 서비스에 치중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탁발을 통해 수행자로써 부처님의 말씀을 온 세계에 전하는 소통의 전도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각설하고, 범어사는 조계종 8대 총림 중 하나입니다. 총림(叢林)은 "산스크리트어로 '빈댜바나(Vindhyavana)'의 의역으로 음역하여 '빈다바나(貧陀婆那)'라고도 하며,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이 마치 나무가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습니다. 참고로 조계종 8대 총림은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 등입니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에 위치한 주불전입니다. 대웅이란 "법화경에서 사마에게 항복을 받아 낸 큰 영웅이라 일컫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보물 제434호)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좌우에 각각 미래불인 미륵과 과거불인 제화갈라를 보살의 모습"으로 모셨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자칭 "선찰대본산"이라는 금정산 범어사. 선찰대본산은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는 수행도량 이라는 뜻으로 참선을 통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홀로 걸어보니 과연 그러하더이다. 온화한 땅심은 말할 것 없고, 걷는 길에 보이는 흙과 돌, 기와 색들이 절묘하게 어울려 마음 속 편안함을 줍니다. 경허 스님의 선시 '범어사'가 왜 나왔는지 짐작케 합니다. <소실지갈라경>의 문구로 마무리 하지요.

"삼보에 항상 신심을 일으켜서 대승의 오묘한 경전의 모든 선한 공덕을 닦아 물러서는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아주 빨리 깨달음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범어사는 돌과 흙, 기와가 절묘하게 어울렸습니다. 걷는 자체가 사색입니다.
 범어사는 돌과 흙, 기와가 절묘하게 어울렸습니다. 걷는 자체가 사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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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은 부처 될 성품이 갖춰져 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모든 중생은 부처 될 성품이 갖춰져 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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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금정산 범어사 최고의 풍경입니다. 보는 자체로 해탈하겠다는...
 제가 꼽은 금정산 범어사 최고의 풍경입니다. 보는 자체로 해탈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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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부산, #금정산 범어사, #비움과 채움의 미학, #탁발,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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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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