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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경호초등학교 모습.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폐교될뻔 했다.
 여수경호초등학교 모습.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폐교될뻔 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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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신발장 칸마다 색깔이 왜 다르죠?"
"아이들이 다양하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다양하게 자라면 좋겠어요"


기자의 질문에 여수 경호초등학교 신제성 교장이 대답한 말이다. 여수에서 뱃길로 5분쯤 떨어진 경도에 위치한 여수 경호초등학교 신발장은 크기가 다를 뿐만 아니라 색깔도 다양하다. 신발장은 3년 전(2015. 3. 1)에 신제성 교장이 부임한 후 전 교직원이 힘을 합쳐 손질한 후 색깔도 칠했다.

학생 수 급감해 폐교 직전까지 갔던 섬 학교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청정한 남해바다와 갯벌에서 나오는 해산물, 여수시와 가까운 거리로 인해 살기 좋은 섬이었던 경도는 지금 천지개벽 중이다. 27홀 골프코스가 생기고 멋진 리조트가 들어서고 있다.

세상사를 보면 명암이 교차한다. 참! 아이러니다. 한쪽에는 그림 같은 골프장이 들어서고 멋진 리조트가 들어섰지만, 학교는 죽어가고 있었다. 3년 전 취학연령 아동이 줄고 골프장 건설로 섬 주민이 도시로 떠나면서 경호초등학교는 학생 10명만 남아 통폐합 대상학교가 됐다.

경호초등학교는 섬 학교치고는 역사도 깊고 규모가 제법 큰 학교다. 1968년 4월 19일에 '경호국민학교'로 개교한 이래 올해 초 49회 졸업생을 포함해 1953명을 배출했다. 많을 때는 435명의 학생이 다녔다고 한다.

그랬던 학교가 3년 전 10명밖에 안 돼 문 닫아야 할 판이었다. 기자가 5년 전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낡은 건물과 관리되지 않은 운동장으로 학교는 생기를 잃고 있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직원들의 헌신이 학교 살렸다
과학시간에 칠판 앞으로 나와 화강암과 현무암에 대해 설명하는 아이들. 학생들이 설명하고 나면 교사는 틀린 점을 시정해줬다
 과학시간에 칠판 앞으로 나와 화강암과 현무암에 대해 설명하는 아이들. 학생들이 설명하고 나면 교사는 틀린 점을 시정해줬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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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부터 6학년까지 포함된 그림그리기 모임 모습. 6학년(김근혜, 이은민) 학생들이 후배들에게 그림주제를 묻자 "바다가 좋겠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전원이 모여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점묘법과 색종이를 찢어 완성 중이다. 선배는 후배를 사랑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는 훌륭한 교육장 모습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포함된 그림그리기 모임 모습. 6학년(김근혜, 이은민) 학생들이 후배들에게 그림주제를 묻자 "바다가 좋겠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전원이 모여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점묘법과 색종이를 찢어 완성 중이다. 선배는 후배를 사랑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는 훌륭한 교육장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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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리더는 조직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 죽어가는 학교를 살린 이는 신제성 교장이다. 신교장이 학교 살리기에 나선 과정을 설명해줬다.

"여수 시내에서 바쁘게 살다 3년 전 학교에 부임해보니 학생이 10명만 남아있었고 통폐합 대상학교였어요. 안 되겠다 싶어 여수 시내 모든 초등교직원들에게 경호초등학교를 살려야 할 이유를 메일로 전송했습니다. 보시다시피 학교 앞에는 예쁜 바다도 있고 자연환경이 아름답잖아요. 여수 시내에서 왕따당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에게 이런 학교를 남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찍기를 극구 사양하는 두 분을 설득해 학생작품 전시장에서 촬영했다. 신제성 교장(오른쪽)과 양미승 교감 모습. 폐교직전 학교를 변화시킨 장본인들이다
 사진찍기를 극구 사양하는 두 분을 설득해 학생작품 전시장에서 촬영했다. 신제성 교장(오른쪽)과 양미승 교감 모습. 폐교직전 학교를 변화시킨 장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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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내 교직원들에게 메일을 전송한 신제성 교장은 지인들과 지역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환경개선에 나섰다. 급식실 개선, 학교 외관에 벽화 꾸미기, 텃밭 가꾸기, 늘품정원 조성과 정문 앞에 작은 연못 조성 등이다.

하드웨어 개선을 마친 신 교장은 소프트웨어 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교직원, 학부모, 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연찬회를 열어 큰 틀을 짰다. 연찬회에서 세운 핵심사항은 다음과 같다.  
토마토 고추 감자 등이 자라는 텃밭으로 학년별로 관리하며 일부는 학부모에게 분양하기도 한다. 점심시간에는 텃밭에서 자란 유기농채소를 이용해 맛있는 쌈밥을 먹었다
 토마토 고추 감자 등이 자라는 텃밭으로 학년별로 관리하며 일부는 학부모에게 분양하기도 한다. 점심시간에는 텃밭에서 자란 유기농채소를 이용해 맛있는 쌈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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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화초에 대해 설명하는 교사와 아이들 모습
 운동장에서 화초에 대해 설명하는 교사와 아이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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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계절 제 빛깔 행복학교 ▲에코스쿨(동식물 기르기, 텃밭 가꾸기, 친환경체험학습, 요리체험) ▲동아리 및 방과 후 학교활동(댄스, 축구, 그리기, 골프, 영어, 중국어, 현악, 국악, 도예 등)

신교장은 SNS를 통해 학교밴드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학교홍보를 부탁했다. 강사들에게도 예산이 부족함을 알리며 양해를 구하자 흔쾌히 동의하며 교육에 헌신하자 틀이 잡혔다. 신교장이 학교가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여수 시내에서 적응하기 곤란한 몇 명의 학생이 전학 와 달라지고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만에 재학생 40명이 됐고 교실이 부족해 방송실에서 현악지도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시내에서 전학 오겠다고 연락이 옵니다만 학교환경을 바꾸는데 일조한 분은 따로 있습니다.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하도록 최선을 다해준 행정실장(박해진)이 너무 고맙습니다."

30년 이상 학교현장에 있었던 필자의 눈에 교장의 진정한 학교 사랑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의 학교현황판은 아크릴판으로 보통은 100여만 원의 예산이 든다. 하지만 경호초등학교 현황판은 7~8만 원짜리 현수막으로 만들었다.

학생 수 현황을 보면 여수 시내에서 섬인 경호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41명 중 32명이나 된다. 그림 그리기 좋아한다는 한정우 학생(6년)은 여수 시내에서 전학 왔다. 점심을 먹은 후 복도 그림판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정우에게 경호초등학교로 전학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그림 그리기가 좋고 방학 전 일주일 동안의 체험학습이 좋아요. 야영장, 등산, 캠핑 등이 마음에 들어요."

학부모가 지도하는 바이얼린 교실 모습
 학부모가 지도하는 바이얼린 교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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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놀이시간에 병설유치원 학생들이 텐트 안에서 교사와 함께 이야기 하고 일부는 아름다운 금잔디가 자라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
 중간놀이시간에 병설유치원 학생들이 텐트 안에서 교사와 함께 이야기 하고 일부는 아름다운 금잔디가 자라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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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상처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내면 성장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가지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 감사 노트 쓰기를 실시하고 있다.

나이든 선배를 존중하고 후배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기르는 교육도 돋보인다. '한 지붕 여섯 가족 다모임 활동'에서는 1학년부터 6학년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아침 독서, 체험도 함께하며 선배가 후배를 돕는다. 뿐만 아니다. 매주 수요일 발 마사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월 1회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의 발 마사지 봉사활동도 벌인다.

강사로부터 발맛사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매월 1회 경로당에 들러 어르신 발맛사지 봉사활동을 한다. 족욕을 마친 학생들이 서로 교대해서 발맛사지 교육을 받고 있다.
 강사로부터 발맛사지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매월 1회 경로당에 들러 어르신 발맛사지 봉사활동을 한다. 족욕을 마친 학생들이 서로 교대해서 발맛사지 교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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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한 골프장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학생들에게 6홀짜리 골프장을 무료로 개방해준다. 이들 중에서 국가대표 골프선수가 나오지 않을까?
 이웃한 골프장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학생들에게 6홀짜리 골프장을 무료로 개방해준다. 이들 중에서 국가대표 골프선수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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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변하자 학부모와 지역에서도 화답했다. 학부모가 현악을 지도하고 구연동화 교실도 운영하며 여수경도골프 &리조트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6홀 규모의 골프연습장을 무료로 사용케 했다.

복도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 컵 속에 고기(베타)와 올챙이를 기르고 있었다. 겉면에는 각자 관리하는 학생 이름이 적혀있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새로 물을 갈아주고 고기밥을 주기도 한다. 고기밥을 주고 있는 김형우(1년) 학생에게 장난삼아 "고기가 크면 잡아먹을 거야?" 하고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베타는 이빨이 있어서 손 넣으면 물어요.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면 예뻐요. 귀여워서 못 잡아먹어요."

전교생 모두가 물고기(베타)나 올챙이를 기르기도 한다. 점심시간에 신선한 물을 갈아주고 자신이 기르는 고기를 들여다보는 아이들 모습. 테이크 아웃 커피컵을 이용해 어항이 되니 자연스럽게 환경교육도 된다
 전교생 모두가 물고기(베타)나 올챙이를 기르기도 한다. 점심시간에 신선한 물을 갈아주고 자신이 기르는 고기를 들여다보는 아이들 모습. 테이크 아웃 커피컵을 이용해 어항이 되니 자연스럽게 환경교육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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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기에서 알껍질을 깬 병아리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꿈틀대자 "힘내라! 힘내라!"를 외치며 구경하는 학생들. 생명존중에 대한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은 토끼와 닭을 기르고, 먹고 남은 잔반을 이용해 개를 기르기도 한다
 부화기에서 알껍질을 깬 병아리 한 마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꿈틀대자 "힘내라! 힘내라!"를 외치며 구경하는 학생들. 생명존중에 대한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은 토끼와 닭을 기르고, 먹고 남은 잔반을 이용해 개를 기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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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분위기가 좋아서일까? 형우와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내 팔짱을 끼며 "선생님, 이리와 보세요. 지금 병아리가 막 알에서 나오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부화기가 있는 현관 앞으로 가니 학생들이 부화기 앞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부화기 속에서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애를 쓰며 알이 꿈틀대고 있었다.

아이들의 "힘내라! 힘내라!"는 응원 소리에 가슴속에서 뭉클한 뭔가가 올라왔다. 여수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래! 너희들도 힘내라! 그리고 알에서 깨어나 훨훨 날아라!"

덧붙이는 글 | 전남교육소식지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경호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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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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