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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포츠재단 박헌영 과장
 K스포츠재단 박헌영 과장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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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 재단(K스포츠재단)에 온다고 들었다."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이 지난해 12월 26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박 과장은 이어 "박 대통령이 재단 이사장으로 온다면 재단은 사유화가 될 걸로 예상했다"고 폭로를 이어나갔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도화선은 미르·K스포츠재단이었다. 두 재단은 비선 실세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대비해 설립한 기구라는 의혹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관련 의혹이 불거진 시점부터 '공익적 목적으로 설립한 재단'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박 과장의 한 마디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깨뜨리는 결정적 단서가 됐다.

현재 박 과장은 또 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와 아울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한 활동도 이어 나가는 중이다. 박 과장을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모처에서 만나 폭로 이후의 심경을 들어봤다.

-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의례적인 질문이 아니라, 내부고발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많이 어렵다. 정동춘 전 이사장과 나를 비롯해 남은 K스포츠재단 직원들 사이에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 전 이사장은 올해 1월 임기가 끝났다. 그런데 정 전 이사장은 임기 만료 전 기존 사용하던 계좌를 없애고 다른 계좌로 자금을 옮겨 놓았다. 직원들은 혹시라도 정 전 이사장이 자금에 손댈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은행에 계좌를 동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로 인해 지난 2월부터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임 후 K스포츠재단 이사장으로 온다"는 폭로는 파장이 컸다. 폭로를 결심한 특별한 동기가 있었는가?
"결심한 동기는 명확하다. 2016년 10월 24일로 기억한다. 그날 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바로 그날 저녁 JTBC <뉴스룸>은 최순실 태블릿 PC의 존재를 알렸다. 난 검찰에서 블루케이나 최순실의 존재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엔 두려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어떤 사이였는지, 그리고 최순실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 청와대 수석들도 현직에 있었기에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었다.

조사는 늦은 밤에야 끝났다. 귀가하면 다음 날 출근을 못 할 것 같아 재단 사무실로 갔다. 잠들기 전 소파에 누워 노트북을 켰는데, 그때 태블릿 PC 보도를 보게 됐다. 보도를 보면서,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할 때가 아니구나, 속히 진실을 말해야겠구나' 하고 결심했다. 바로 다음 날 검찰로 가서 아는 것들을 털어놓았다.

결심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같이하는 직원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재단 직원과 관련해 한마디 하고 싶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래서 남아 있는 직원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비난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여기에 정동춘 전 이사장과의 분쟁까지 걸려 있어 더욱 힘든 처지다. 앞서 말했듯 재단 직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내부고발자의 범주를 확대해 보면 남은 직원들 역시 고발자라고 할 수 있다. 외부에서 볼 땐 밥그릇 싸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드러내놓고 말하기 곤란한 입장이다. 그래서 많이 힘들어해 한다."

지금보다 몇 년 후가 더 두렵다

박헌영 K스포츠과장은 지난 해 12월 < JTBC 뉴스룸 >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K스포츠재단 이사장으로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박헌영 K스포츠과장은 지난 해 12월 < JTBC 뉴스룸 >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K스포츠재단 이사장으로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 < JTBC뉴스룸 >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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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은 30년 전에도 어린이회관 사유화로 물의를 일으켰다. 관련자들은 최순실의 보복이 두려워 여전히 증언을 꺼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폭로 이후 후폭풍이 두렵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초기엔 경계가 심했다. 지금은 경계심은 많이 사라진 편이다. 다만 몇 년 후가 더 걱정이다. 사실 지금은 걱정할 게 별로 없다.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현재 재판 중이고 그래서 재판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 법정에서 형량이 정해지고, 사태가 정리수순으로 접어들면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른다. 이들은 정말로 어떤 '일'을 벌일 만큼의 돈과 힘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 최순실, 박근혜 등 국정농단 주범들은 현재 구속 상태다. 그러나 정유라는 영장이 기각됐고, 향후 법원이 국정농단 주범들에게 솜방망이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승일 부장은 극단적인 입장까지 밝혔다. 대처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는지 궁금하다. 
"난 법조인도 아니고, 사회적 영향력도 없는 평범한 시민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민간차원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내부고발자를 위해 활동하는 것밖엔 없다.

다만, 국민들이 나의 존재를 잊지 말아 주십사 하는 바람이다. 많은 국민들이 나의 폭로에 대해 공감을 많이 해주셨다. 또 고발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주신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내부고발자들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싸움은 지난하고, 오랜 시간 이어진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 간다. 그러나 내부고발자는 계속 고통을 당한다. 따라서 기억 자체가 강력한 보호막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적, 제도적 보호막이 되어주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막상 내부고발자가 되고 보니 법령이나 제도적 미비점들이 보인다. 이런 제도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해 주기엔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공익성보다 어느 기관에 제보했느냐 따지는 권익위"

- 어떤 점이 가장 미비하다고 보는가?
"국민권익위원회(아래 권익위)가 주무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내부고발자들이 권익위를 거치지 않고 언론이나 검찰 등 다른 기관에 먼저 제보를 하면 내부고발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즉, 권익위에 내부고발 내용을 접수한 다음 검찰로 이첩하거나, 언론에 보도요청이 이뤄져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난 이 점이 가장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현재 시민단체인 '내부제보실천운동'에서 활동 중인데, 같이 활동 중인 분 가운데 한 분은 공무원으로 있다가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이분은 현재 공무원 시험 응시자격마저 박탈당했다. 이 분은 언론을 먼저 찾아갔다. 권익위는 이를 이유로 내부고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공무원이었음에도 제도적 절차를 몰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올해 3월 권익위를 찾아갔다. 공론화될 만큼 다 되고,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진 시점이었다. 권익위는 접수를 꺼려했다. 언론을 통해 공론화됐으면 내부고발자로 보호를 받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고발 내용이 공익적인가가 중요하지 어느 기관에 먼저 신고한 게 중요한가? 기관 접수 여부에 따라 보호 여부가 결정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K스포츠재단 박헌영 과장은 궁극적으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해 줄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K스포츠재단 박헌영 과장은 궁극적으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해 줄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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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고발 이후 본인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보는가? 아직 우리 사회가 내부고발에 관대하지는 않다. 인터넷이나 SNS상에선 과장님을 부역자라고 폄하하는 글도 눈에 띈다. 이에 대해선 어떤 심경인가?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방송을 통해 얼굴과 이름이 다 노출됐으니 말이다. (웃음) 그리고 인터넷이나 SNS상에 떠도는 비난, 이를테면 기획 폭로니 기획 탄핵이니 하는 비난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예 사고가 다른 사람들이어서다. 물론 사태 초기 위증 교사했다는 의혹이 있었고, 지금까지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는 한다. 이런 비난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 사회가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대해줘야 한다고 보는가?
"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이후 1700만 국민들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다. 이에 힘입어 내가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만약 국민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난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싸우는 내부고발자들이 너무 많다. K스포츠재단 직원들도 그중 하나다. 이분들은 생활이 어려워 대부분 빚을 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 전 이사장과 싸운다. 재단이 해체수순에 접어들었든 아니든, 재단이 최소한 저런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이건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정의감으로 싸우고 있음을 기억해 달라

상황이 이렇기에 내부고발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힘내세요'라고 건넨 말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된다. 나 역시 이 말을 듣고 한 번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 같이 사회의 주목을 받은 사람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사례는 계속 관심 갖고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해 줄 기구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내부고발자들을 어떻게 응원해 줄 것인가?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격려해 주시는 분들은 많다. 그러나 금전적 지원이나,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싶어도 그 경로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움직임을 제대로 담아내 줄 그릇이 필요하다. '내부제보실천운동' 등 관련 시민단체들이 이런 일을 잘 해주기 바란다."


태그:#박헌영 과장, #K스포츠재단, #최순실, #내부제보실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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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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