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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근혜 정권 하에서 해산된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다. 20대 인생의 많은 부분을 걸고 활발하게 활동한 정당이기에 정당해산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고 아픔이었다. 평소에 존경하던 의원들이 하루 아침에 의원직에서 박탈되는 것을 보았고, 10만 당원들이 한순간에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10만 당원들은 종북 세력으로 낙인 찍혔다.

몇 년간 진행되었던 언론에서의 종북몰이와 배제, 무관심은 고통스러웠다. 그래서인지 통합진보당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면 반가움과 공포가 공존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지난 7~8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었다.

통합진보당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헌법재판관 가운데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에 반대의견을 피력한 김이수 지명자에 대한 자질을 검증하는 야당 측 의원들에서다. 왜곡된 사실을 어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사는 지역구 의원인, 국회의원 오신환 의원의 질의를 보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김이수 인사청문회에서 오신환의원이 국정원이 조작한 녹취록으로 사실을 왜곡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 9일 1인시위를 진행했다.
▲ 9일 바른정당 오신환의원 지역 사무실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했다. 김이수 인사청문회에서 오신환의원이 국정원이 조작한 녹취록으로 사실을 왜곡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 9일 1인시위를 진행했다.
ⓒ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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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낮, 바른정당 오신환 국회의원 지역(관악을)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오 의원이 인사청문회에서 왜곡한 내용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 글이 오 의원의 명확한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 의원이 무슨 사실을 왜곡했는지 하나하나 이야기하고자 한다.

① "통진당 RO 회합 녹취록" 발언, 대법원에서 이미 'RO 실체 없다" 판결

오 의원은 "통진당 RO 회합 녹취록"이라며 녹취록을 공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검찰과 국정원이 주장한 'RO'의 실체가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제보자 이00의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고, 지하혁명 조직 RO의 존재 여부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오 의원이 이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RO'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이 녹취에 대해서 김칠준 공동변호인단 대표 변호사는 2013년 9월 4일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130명의 당원모임을 국정원이 제보자를 통해 불법적으로 감청하고 녹취를 왜곡 편집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② "전쟁을 준비하자" 발언, 이미 검찰이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로 수정

오 의원은 이날 PPT자료를 화면에 띄우며 통합진보당의 해산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를 위해 오 의원은 녹취록에 나온 구절을 인용했다. 오 의원은 이석기 의원이 강연에서 "전쟁을 준비하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도 사실과 다르다. 이 발언은 법원 심리 과정에서 검찰이 뒤늦게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로 수정한 부분이었다. 국정원이 왜곡했던 녹취록을 오 의원이 다시 인사청문회에 들고 나온 셈인 것이다. 해당 내용은 포털에 조금만 검색해봐도 '해당 녹취록은 법원 심리 과정에서 대폭 수정됐으며, 이석기 전 의원 등은 '내란음모'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 강연 전체의 맥락과 상관없이 자극적인 문장만 뽑아 주장

또 오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이석기 의원이 한 강연의 전반적인 흐름과 상관없이 유독 문제가 될 만한 문장만 뽑았다.

오 의원이 공개한 "분당 통신국은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할 정도", "평택 유조창은 경비는 엄하지 않고, 안에 들어가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효과적" 등의 발언은 이석기 의원이 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법원이 공개한 녹취록을 확인해 보면, 강연 후 진행된 토론 중에서 나온 것이고 전체 맥락과도 어긋난다. 대법원의 판결문 어디에도 이석기 전 의원이 국가기간시설 관련 폭력 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곳은 없고,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대목조차 없다.

오 의원이 문제 삼은 "선전부대는 꼭 있어야 한다"는 발언도 전쟁을 위한 '군사적 부대'를 꾸리자는 취지가 아니었다. 이석기 의원은 강연에서 "심리전이고 사상전이라고 표현되는 선전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른 아픔은 왜곡된 사실과 더 해져 큰 고통으로 남아

김이수 인사청문회에서 오신환의원이 국정원이 조작한 녹취록으로 사실을 왜곡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 9일 1인시위를 진행했다.
▲ 9일 바른정당 오신환의원 지역 사무실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했다. 김이수 인사청문회에서 오신환의원이 국정원이 조작한 녹취록으로 사실을 왜곡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서 9일 1인시위를 진행했다.
ⓒ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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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다시피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시민들의 저항이 높아졌다. 촛불집회가 한참이던 2013년 8월 5일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20여일 만에 일명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이 터졌다. 정부는 곧바로 통합진보당 해산 심사를 그해 11월 5일 청구했으며 그 다음해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은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정당해산을 당하게 되었다.

이처럼 빠르게 진행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과정에 있어 전 청와대 민정수석 고 김영한 비망록에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강제해산에 개입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지난 2014년 10월 4일 김 전 실장 지시사항 표시와 함께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라고 적혀 있는데, 며칠 뒤 박한철 헌재소장이 실제 연내 선고 방침을 밝힌 것이다. 해산 선고 이틀 전 헌재의 결정 내용을 김 전 실장이 언급한 내용도 비망록에 담겨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는 2016년 11월 29일 한겨레 칼럼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 바 있다.

"박근혜 패거리가 '이석기 사건'을 비롯한 반민주, 반인권 폭거들을 이렇게 손쉽게 저지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 '주류'의 해묵은 반민주성, 반민중성이 있었다. 고급 공무원이나 거대언론부터 제도야당까지, 재벌과 박근혜-최순실 패당에 의한 국가의 사유화보다 민중들의 정치세력화를 훨씬 더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본격적 변화를 원한다면, 엉터리 대통령의 퇴진, '이석기 사건' 피해자를 비롯한 양심수들의 석방뿐만 아니라 박근혜 패당의 협력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요구해야 한다."

오 의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을 모르고 했다면 사과해주시길 바란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하고 실언했다고 인정하고 사과를 해주시길 바란다. 하지만 알고도 그렇게 발언을 했다면 그것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길 요구한다.

한 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다. 통합진보당 10만명의 당원들 역시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왜곡된 사실로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길 바란다. 내란음모는 없었고 혁명조직도 없었으며 내란선동 역시도 법적으로 다시 다퉈야할 여지가 있다.

당원을 대상으로 90분 강연을 하고 징역 9년형을 선고 받아 4년째 감옥에 있는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양심수들도 하루 빨리 석방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 하에 가해진 정치탄압을 이제는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태그:#오신환, #김이수, #김이수인사청문회, #헌법재판소장, #내란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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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힘들지만 우직하게 한 길을 걷고 싶은 청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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