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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래빗 공동체 기초정보>

*위치: 미국 미주리의 주도 세인트 루이스에서 300k 떨어진 목초지 근처

*공동체 창립연도: 1997

*공동체 회원 수: 2017년 5월, 45명

*공동체 땅 크기: 33만 평

*공동체 비전:
1) 인구 1000명 이하의 급진적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 마을 만들기
2) 교육프로그램, 인턴십 등을 통해 주류사회에 자신들의 급진적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 전파

*기타 특징:
1) 개인 소유 차는 근처 도시에 주차할 수 있지만, 공동체 안에 주차할 수 없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카 셰어링을 한다.

2) 개인의 취향에 따라 부엌, 화장실 등을 개인 주택 안에 만들 수도 있으나, 커뮤니티 공용 부엌, 화장실 등을 다른 회원들과 공유할 수 있다.

3) 공동체 회원들의 1년 생활비는 성인 1인당 대략 5천 불에서 1만 불 사이다. 회원들은 각자의 경제적 상황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회원들의 직업은 친환경 건축 설계가, 산파, 농부, 오디오 북 성우, 프로그래머, 공동체 안에서 슈퍼마켓 운영, 협동조합 사무직 등 다양하다.

4) 페미니즘 공동체다. 성차별적 언어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You guys'라는 단어 대신 'You all'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공동체 소유 땅 안에서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할 것 없이 상의 탈의가 자연스러운 행위다. 여성 상의 탈의를 금지하는 문화를 여성 억압으로 본다.

5) 미국인 평균 1인 에너지 소비량의 10% 정도만 소비한다. 비결은 재래식 화장실, 태양열과 풍력 에너지 사용, 친환경 주택 등이다.

6) ELMS라 불리는 온라인 대안화폐를 사용한다. 비트코인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대신 사용지역이 댄싱래빗 공동체와 인근 마을로 한정되어있다. 대안화폐사용 덕분에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덜 받고, 자본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토요일에 댄싱래빗 공동체는 회원들의 선호도에 따라 노래방, 캠프파이어, 장기자랑을 하거나 개인 휴식시간을 가집니다. 방문객 여러분은 뭘 하고 싶어요?"

방문객 그룹 담당인 다니엘의 질문에,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한마음으로 "노래방이요!"라고 외쳤다. 그리하여 토요일 저녁 6시 반, 댄싱래빗 공동체의 호프집인 멕켄타일에 공동체 주변의 이웃들까지 대략 60명 정도가 모였다.

사람들은 맥주 한 병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앉아 무슨 노래를 부를 거냐고 물으며 수다를 떨었다. 첫 번째 주자는 공동체 장기 손님으로 한 달째 거주 중인 페르란도. 그는 노래방 반주에 맞춰 마룬파이브의 <Sunday morning>을 열창하며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외국인인 나와 이야기할 때는 긴장해서 떨던 공동체 회원 조는 난데없이 헤비메탈 그룹 레이즈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이란 욕설이 난무하는 거친 노래를 부르며 60명의 사람 앞에서 헤드뱅잉을 선보였다.

약한 성대 때문에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해도, 나 역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기에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60명의 미국인 앞에서 노래를 불러 볼까. 아일랜드 록 밴드 U2의 <I haven't found what I am looking for>를 신청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 떨리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I have climbed highest mountain (가장 높은 산에도 올라가 보고)/ I have run through the fields (모든 곳을 누벼도 봤어)/ Only to be with you (오로지 너와 함께하기 위해)/Only to be with you /(중간 생략)/ But I stll haven't found what I am looking for (그런데 난 아직 찾고자 하는 걸 찾지 못했어)

내 여행과 마음을 담은 노래였다. 칠레에서 3000m 고산에도 올라가 보고, 모든 여행자의 꿈이라 불리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도 가봤다. 내가 어디 있던 신이 나를 지켜 줄 거라 믿으며 오세아니아 대륙, 남미대륙을 5개월 동안 누볐다. 신을 향한 믿음은 깊어졌지만, 아직도 뭐를 위해 여행하는지, 여행의 끝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알 수 없었다.

댄싱래빗 공동체 노래방 행사
▲ 노래방 행사 댄싱래빗 공동체 노래방 행사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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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된 마음에 마이크를 꼭 잡았다. 내가 한 소절을 부르자 60명의 미국인이 나와 같이 U2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 부르기 전 마신 맥주 탓에 긴장이 풀린 걸까, 아니면 정말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청중들의 박수를 유도하기까지 했다.

노래방 행사는 밤 9시 반에 끝난 후, 댄싱래빗 공동체 농장에 있는 연못 근처에서 캠프파이어를 했다. 검은 밤하늘에 초승달과 수 많은 별이 하늘에 떠있고, 공중에는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 하얀빛을 뿜어내며 날아다녔다. 초등학교 때 시골로 여름 수련회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밤 10시쯤,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불 옆에 모였다. 4살짜리 딸, 갓 돌 지난 아들을 둔 댄싱래빗 공동체 회원 메이는 아이들을 위해 마시멜로를 구웠다. 하얗던 마시멜로가 거뭇하게 변하고 달큼한 냄새가 공기 속에 번졌다. 채식주의자인 공동체 회원 케일럽은 마시멜로우에는 돼지기름이 들었다고 투덜거리며 난데없이 사과를 통째로 구웠다. 나는 우쿨렐레를 치며 사람들이 알아듣건 말건 상관없이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불렀다. 언젠가는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노래였다.

새벽 1시쯤, 난데없이 공동체 회원인 캐서린이 해리포터 이야기를 꺼냈다. "해리포터 4편에 나오는 케드릭 디고리는 그리핀도르 기숙사 출신이야 아니면 후플푸프 기숙사 출신이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얼떨결에 "후플푸프 아냐?"라고 했다. 케일럽은 "케드릭 디고리는 그리핀도르 소속이야"라고 주장했다.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들은 캐서린은 난데없이 "케드릭 디고리는 그리핀도르 소속아냐? 인터넷 찾아보자. 틀린 사람은 지금 바로 연못에 알몸으로 수영하기!"

정답은 후플푸프 기숙사였다. 꼭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케일럽과 케서린은 속옷까지 다 벗고는 새벽 1시에 연못에 뛰어들었다. 연못에서 "꺅! 진짜 차가워!"라는 외마디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물 밖으로 나온 캐서린과 캐일럽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둘은 여전히 속옷 한 장 안 입은 채였지만 상관하지 않고 캠프파이어 옆에 바짝 붙어 몸을 말렸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캐일럽과 캐서린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케서린과 케일럽은 편해 보였다. 댄싱래빗 공동체는 페미니즘 공동체이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관습에 도전한다. 여자 멤버들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괜찮고, 아기 엄마들이 아무 데서나 젖가슴을 보이며 아기 젖을 먹인다. 나 역시 음악페스티벌에 가고 히피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런 문화에 익숙했고 속옷 한 장 안 입고 사람들과 연못에서 수영했다. 오히려 도시에 나가 불편한 브래지어를 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행복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댄싱 래빗에서 캠프파이어
캐서린과 댄의 기타, 우쿨렐레 연주
▲ 캠프파이어 댄싱 래빗에서 캠프파이어 캐서린과 댄의 기타, 우쿨렐레 연주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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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불을 끄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캐서린에게 말했다.

"캐서린, 나 여기서 살 수 있으면 좋겠어. 댄싱래빗 공동체는 내가 여태까지 본 공동체 중에 최고야.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좋고, 사람들도 내가 외국인이라고 많이 배려해 주잖아. 불편한 브래지어 안 입고 다녀도 성희롱이니 성추행이니 당할 일 없는 페미니즘 공동체니 안심돼. 생활비도 일 년에 천만 원만 있으면 된다며. 나 정말 여기 살고 싶다. 물론 비자 문제, 언어 문제 때문에 힘들겠지? 대신 살다가 지치고 힘들어지면 댄싱래빗에 쉬러 와야겠어."

캐서린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우리 공동체 와서 텃밭일 같이하면 숙식비도 안 받을 테니 돈 걱정도 하지 말고 무조건 와"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댄싱래빗 공동체에 있는 동안 행복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댄싱래빗 공동체가 유토피아일리도 없고, 이곳 역시 먹고 살기 위해 열심 일 해야 살 수 있는 곳이다. 때로는 회원들 간의 분쟁도 있다. 그러나 주류 사회에 비하면 댄싱래빗은 분명 살기 좋은 곳이었다.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는 회원은 한 명도 없고, 총 맞을 걱정이 없어 사람들은 한밤중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2013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0명의 응답자 중 절반이 댄싱레빗 공동체를 '아주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으며, 나머지 절반 중에 대다수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내 옆집에 사는 이웃과 토요일 밤 맥주 한 병 들고 노래방에 가고 동네 연못에 걸어가 캠프파이어를 하는 삶. 내 아이를 돌봐 줄 믿을 만한 보모를 찾느라 애쓰지 않는 삶. 매일 삼시 세끼 요리하느라 힘쓰는 대신 공동체 부엌에서 이웃이 차려준 파스타를 먹는 삶. 이런 작은 삶의 요소들이 댄싱래빗 공동체에 행복을 심었다. 사람들의 삶에는 여유가 흘렀고, 나 역시 그 여유에 감염되어 행복한 2주를 보냈다.

댄싱래빗 공동체가 늘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공동체에서 15년쯤 산 테드는 공동체 회원 중 베어, 알리사, 타마라와 실험을 했다. 댄싱래빗 전체 공동체는 개인의 수입을 공유하지 않지만, 테드를 비롯한 3명의 사람만 1년 정도 수익을 공유하며 생활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실패. 서로 돈을 쓰는 가치관이 달라서 걸핏하면 소리 지르며 싸웠다. 1년 만에 실험을 관두고, 수익은 공유하지 않지만 공간, 물품, 식료품 등을 공유하는 보통의 댄싱래빗 공동체 규칙을 따르기로 했다. 소리 지르며 싸울 때 생긴 감정의 골이 쉽게 회복되지 않아 반년 정도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내다 차차 관계를 회복했다.

댄싱래빗 공동체에 있는 2주 동안 회원 간의 갈등을 목격하거나, 이웃주민이 댄싱래빗 공동체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탁 트인 목초지 위로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면 공동체 사람들은 직접 요리한 접시를 들고나와 야외 식탁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게 의무도 아닌데, 다들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식탁에 앉았다. 어떤 날은 7시쯤 저녁 먹으며 시작한 수다가 10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댄싱래빗 공동체에 오기 전 여기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며 울던 내 모습은 공동체 생활 3일 만에 사라졌다. 33만 평이 넘는 광활한 목초지를 자전거로 가로지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마음이 뻥 뚫리는 듯했다. 미래의 걱정 따위, 지금의 행복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대안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서로를 돌보는 댄싱레빗 공동체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밖에 없었다.


태그:#미국여행, #세계일주,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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