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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오전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18회 오전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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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뇌물사건 재판이 2라운드에 돌입하면서 법정 공방이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피고인들 앞에서 입을 열기 부담스러운 그룹 관계자가 아닌 공무원 등 제3자 증언이 이어지면서 삼성으로선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지난 19일부터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 관련 심리를 본격화했다. 국정농단의혹 특별검사팀이 그에게 적용한 뇌물죄의 구성요소, 대가성(단순뇌물죄 :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 승마지원)과 부정한 청탁(제3자 뇌물죄 :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의 성립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특검은 삼성이 '이재용 승계작업'을 위해 ① 계열사 매각·상장으로 상속세 재원 마련 ②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③ 합병으로 인한 순환출자고리 해소 시 삼성물산 의결권 손실 최소화 ④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⑤ 중간금융지주회사 법 통과 후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이란 계획을 세웠다고 본다. 19일과 24일 재판에는 '②번 합병은 이 부회장 쪽에만 유리하다'며 반대했던 관련 증인들을 법정에 부르기도 했다.

공정위가 '처분주식' 깎아준 이유

최근에는 ③번 계획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합병 직후 삼성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순환출자 고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식을 처분해야만 했다. 2015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대상이 500만 주라고 발표했고,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이 숫자 자체가 문제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특검 수사과정에서 공정위가 원래 처분대상이 1000만 주란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실무를 맡은 석동수 당시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 사무관은 24일 증인으로 나와 "2015년 10월 14일 이 내용이 담긴 보고서로 김정기 과장-곽세붕 국장-신영선 사무처장-김학현 부위원장-정재찬 위원장 결재까지 받았고, 청와대와 삼성에 알렸다"며 "삼성도 (구두 통보에) 수용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식 통보는 자꾸 미뤄졌다. 11월 18일에는 김학현 부위원장이 석 사무관에게 재검토를 지시하기까지 했다. 당시 공정위 내부에선 통보 시점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긴 했지만 처분주식 수에는 이견이 없었다. 갑작스레 상황이 달라지자 김정기 과장은 나중에 감사를 받거나 언론 보도가 나올 수 있으니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일지를 작성하라고 석 사무관에게 지시했다. 또 재검토 후에도 '삼성의 처분대상은 1000만 주'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김 부위원장은 11월 27일 곽세붕 국장과 김정기 과장, 석동수 사무관에게 "1000만 주로 통보는 절대 안 된다, 너희가 위원장이냐"고 질책하며 이 일을 전원회의서 논의하자고 했다. 이때 곽 국장은 정재찬 위원장에게 "실무자들 의견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25일 공판에서 "구두 통보는 했지만 문서 통보를 못한 게  문제될 수 있었다"며 "통보가 왜 지연됐는지, 전원회의에선 변경됐는지 등을 기록으로 남겨야 실무자들이 다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석 사무관의 일지는 이재용 부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당초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 쪽에 뇌물을 건넨 목적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성사, 하나로만 판단했다. 그러나 공정위 압수수색 때 일지와 관련 검토보고서 등이 나오면서 '부정한 청탁의 대가'는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으로 정리됐다. 큰 그림이 달라지자 법원 판단도 변했다. 이 부회장은 2월 16일 2차 영장실질심사를 받았고, 다음날 구속됐다(관련 기사 : 이재용 부회장 구속 비결은 '뇌물 관계 큰 그림').

이재용 발목 잡은 공무원의 일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지난 2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지난 2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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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여전히 일지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한다. 2015년 11월 12일 석 사무관은 '11월 17일 김학현 부위원장과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만난다'는 장영인 삼성전자 상무의 말을 기재했다. 또 전원회의 등을 거쳐 처분주식이 900만 주라고 정하자 12월 20일 인민호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이 전화로 "500만 주로 결론 낼 수 있냐"고 한 것도 적었다. 이후 김 부위원장 지시에 주식 수를 1안 900만 주, 2안 500만 주로 정리하고, 12월 23일 2안으로 최종 결재가 난 과정도 담았다.

12. 23 오후 10시 위원장 : 1안으로 갔을 때 부담이 너무 클 것 같다. 정부 내(BH)와 껄끄러워져 조직에 부담이 클 것 같다.

석 비서관은 "정재찬 위원장이 고심했다"며 "괄호하고 BH(청와대)라 쓴 의미는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들은 내용을 썼다"고 증언했다. 곽세붕 국장도 25일 "정 위원장이 '정부 내 관계를 고려했을 때 공정위가 너무 세게 나가면 부담이 클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삼성 역시 부담을 덜었다. 석 사무관의 2015년 10월 14일자 보고서대로라면 삼성물산 주식 중 처분대상의 비율은 5.2%, 그해 9월 30일 종가 기준 1조 4500억 원어치다.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일부를 되사야 한다. 실제로 그는 약 2000억 원을 들여 최종 처분대상 500만 주 가운데 130만 5000주를 매입했다. 주식 수가 더 많았다면 이 부회장의 부담은 더 커졌다. 공정위 결정이 '특혜'로 의심받는 이유다(관련 기사 : 이재용, 2천억 원대 삼성물산 주식 왜 샀을까?).

박 전 대통령도 의혹 대상이다. 그의 공소사실 중 하나는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과 단독면담 때 '부정한 청탁'을 받고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게 '순환출자고리 해소 대책을 강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지시가 담긴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삼성 로비에 따른 청와대의 개입 가능성을 높여주는 정황들은 더 있다. 특검은 법정에서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이 그해 12월 20일 '김앤장 황창식 변호사가 토요일(19일)에 BH 인민호 과장(행정관)을 만났다'고 보고받은 문자메시지도 공개했다. 이날 인 행정관은 석 사무관에게 500만 주 얘기를 꺼냈다. 특검은 또 공정위에 처분주식 수를 줄이란 지시를 내렸다고 알려진 최상목 당시 경제금융비서관이 12월 22~23일 김학현 부위원장과 통화한 내역도 확보한 상태다.

엉뚱한 질문 던진 변호인... 결국 사과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일지 등을 뒤집을 만한 반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공정위 전원회의 때 다수 위원이 석동수 사무관과 다르게 판단한 것을 들며 그의 '1000만 주'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석 사무관은 "옳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 문제"라며 맞섰다. 또 최종 결론은 판단근거의 논리에 "어색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곽세붕 국장도 똑같이 말했다.

변호인단은 공정위 최초 결론에 오류가 있다면 전원회의를 거쳐 다시 판단할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석 사무관과 곽 국장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결재 난 사안을 다른 경로로 바꾸는 게 일반적이지 않고, 전원회의에서 법령해석을 다루는 것을 본 적이 없다(석동수)", "기관장 결재가 난 뒤 통보했고, 당사자가 수용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또 다시 변경하는 게 문제될 수 있고, 전례 없이 전원회의하는 것도 거북했다(곽세붕)"고 덧붙였다.

반전을 꾀하지 못한 변호인단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석 사무관이 일지에 다른 상급자들은 'OO님', 김학현 부위원장은 '부위원장'이라고 쓴 점이 이상하다는 얘기였다. 김준모 변호사는 "부위원장이 증인 의견을 무시해 불만이 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석 사무관이 "이 건에 특별히 불만이 있지 않았다, 다른 것도 보자"고 하자 사과했다.


태그:#이재용, #삼성, #뇌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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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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