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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온갖 꽃이 피어 나는 4월이 아름답다.

가까이에 있는 창덕궁에 한 번 다녀와야지 생각하다가 5월 18일에야 다녀왔다.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기에 5월의 창덕궁도 아름다웠다. 낙선재 후원에는 작약이 우아하게 피어 있어 어느 화가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창덕궁 진선문
 창덕궁 진선문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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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문과 유치원 아이들
 인정문과 유치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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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용상
 인정전 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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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고 기념 촬영하는 관광객
 한복을 입고 기념 촬영하는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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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전 풍경
 대조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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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 풍경
 희정당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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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과 한복은 참 잘 어울린다

전철을 타고 안국역에서 내려 현대 사옥을 지나 조금 걸으니 창덕궁이 나온다. 입장료 3,000원을 내고 돈화문을 들어선다. 비원을 함께 보는 것도 좋은데 비원은 가을로 미뤄둔다.

돈화문을 들어서니 문화해설사가 일본 관광객에게 창덕궁을 소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진선문으로 가는데 한복을 곱게 입은 여성이 앞서가고 있다. 한복을 입으면 고궁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정문으로 가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줄을 서서 인정전으로 들어간다. 어느 유치원에서 현장학습을 나왔나 보다. 인정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왔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용상은 화려하다. 모녀가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즐거워한다.

청기와를 얹은 선정전은 왕이 평상시 나랏일을 보던 곳이다. 선정전과 희정당 사이로 들어가다 보니 한복을 곱게 입은 두 여성이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어드릴까요?"라고 말을 걸었는데 일본 관광객이다. 사진을 찍어 주니 좋아한다.

안쪽 후원에는 빨간 작약이 아름답게 피었다. 담장 넘어는 비원이다. 울창한 숲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희정당 뒤쪽 대조전은 창덕궁의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주변에는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는데 왕비의 심신을 달래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희정당을 나와 성정각으로 간다. 높은 석축 위에 성정각이 있다. 성정각은 세자가 공부하던 곳이라고 한다. 창 뒤에서 두 여성이 궁궐을 보고 있다.

성정각 풍경
 성정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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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로 가고 있는 관람객
 낙선재로 가고 있는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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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풍경
 낙선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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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와 상량정
 낙선재와 상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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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후원 풍경
 낙선재 후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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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후원 풍경
 낙선재 후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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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 풍경
 희정당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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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가 살았던 낙선재

성정각을 보고 나오면 비원으로 가는 길과 창경궁으로 가는 길이 있다. 비원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비원은 자유롭게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자를 따라 관람한다.

낙선재 쪽으로 걸어간다. 낙선재는 헌종의 꿈을 담은 소박한 건물이다. 왕의 침실로 쓰기 위해 지어진 낙선재는 조선 제24대 왕인 헌종 때 창경궁과 창덕궁의 경계에 세워졌다. 낙선재는 궁궐 안의 다른 건물처럼 화려하지 않다. 마치 사대부(벼슬이 높은 집안의 사람)의 집처럼 생겼다. 낙선재는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 대한제국(1897∼1910년 우리나라의 이름) 황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덕혜옹주는 1962년부터 이곳에 머물렀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 또한 1963년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입국해 낙선재에서 지냈다. 조선 제26대왕인 고종의 아들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1897∼1970)은 10세 때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다. 이때 일본인 이방자(일본이름 마사코)와 정략결혼을 한다.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는 낙선재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고 한다.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가 숨지자 열흘 뒤 이방자 여사도 눈을 감았다. 낙선재 후원에는 붉은 작약이 아름답게 피었다. 세 명의 여성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정담을 나누고 있다. 사람은 가고 건물은 남아 후손들이 찾아와 역사를 상기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즐거워한다. 낙선재 뒤쪽 상량정이 주변 건물과 잘 어울린다.



태그:#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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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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