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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경계>
 <또 하나의 경계>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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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인천 바다를 늘 바라보았습니다. 살던 집이 바닷가 코앞이기도 해서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고, 일부러 바닷가 쪽을 걷기도 했습니다. 동무네에 놀러가는 길에 바닷길을 따라 달리거나 걷곤 했어요.

다만 인천 앞바다는 고기잡이배보다 짐배가 훨씬 많습니다. 인천에 있는 수많은 공장으로 갈 원료나 자재를 싣는 짐배라든지, 고속도로를 거쳐서 서울로 보낼 물건을 실은 짐배가 으레 인천 앞바다로 찾아옵니다.

언제나 바다 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나날이었지만, 언제나 바닷가로는 쉽게 다가서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쇠가시울타리, 이른바 철조망이 빼곡하거든요.

1960년대 후반 바닷가에 처음 등장한 군경계 시설물은 '흔적선 끌기'였다. 모래밭을 써레질하듯 평평하게 밀어 놓음으로써 밤사이 침입자의 발자국 등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무렵 섬뜩한 불빛이 수 킬로미터나 나가는 '서치라이트'라 부르던 탐조등도 등장했다. 그 다음은 나무 울타리를 연상케 하는 '목책'이 생겨났고, 197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지금의 '철조망'이 등장했다. (사진가 말)

어릴 적에 '철조망'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 '철조망'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머리통이 굵은 뒤에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철조(鐵條)'는 "굵은 쇠줄"을 가리키고, '망(網)'은 "그물"을 가리키는 줄 알았어요. 쇠줄로 엮은 그물이래서 '철조망'인 셈인데, 바닷가에서 본 '쇠줄로 엮은 그물'은 그냥 쇠줄로만 엮은 그물이 아니라 손이라도 댈라치면 뾰족한 쇠가시에 찔리거나 긁혀서 다치는 '쇠가시로 높이 쌓은 울타리'였어요.

고성 2016
 고성 2016
ⓒ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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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고장에서는 인천 앞바다를 으레 똥물이라고 놀렸습니다. 인천 앞바다는 물이 더럽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커다란 발전소이며 화학공장이며 유리공장이며 온갖 공장이 가득한 인천이니까요. 더욱이 서울에서 버리는 쓰레기물이 물줄기를 타고 인천 앞바다인 '황해(서해)'로 흘러들고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바다는 틀림없이 바다요, 밀물썰물이 오가며 드러나는 어마어마한 갯벌이며 물결이 퍽 놀라워서 이 바다를 가까이에서 제대로 바라보고 싶건만, 쇠가시울타리가 없는 데란 없을 만큼 빽빽했어요. 어디에서도 제대로 바다를 보기 어려웠어요.

양양 2008
 양양 2008
ⓒ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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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1988
 양양 1988
ⓒ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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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은 한때 녹슬고 삭아서 기둥만 남을 정도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19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 같은 사건에 따라 더욱 튼튼한 모습으로 규모와 형태가 바뀌기도 했다. 이러한 철조망의 변모는 당시의 통치이념이나 남북 관계의 분위기와 그 맥을 같이했다. 철조망에 내걸린 문구도 '접근하면 발포함' '접근금지'와 같이 군사정권다운 위협적이로 일방적인 명령어였다. 오후 6시만 지나면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통제구역으로 바뀐 채 밤을 맞았다. (사진가 말)

사진가 엄상빈 님이 긴 나날에 걸쳐서 속초를 비롯한 강원도 바닷가에서 마주한 삶을 담아낸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 분단시대의 동해안>(눈빛 펴냄)을 읽습니다. 경계에서 또 하나 더 있는 경계는 분단이고, 이 분단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쇠가시울타리였다고 합니다.

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에 깃든 사진을 보면서 제가 어릴 적에 인천 앞바다에서 수없이 보던 그 쇠가시울타리뿐 아니라, 곳곳에 많은 경계초소를 떠올려 봅니다. 바닷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끝없는 울타리 사이사이에 있는 경계초소를 가리던 '소나무'를 새삼스레 떠올려 봅니다. 가만히 되새기니, 경계초소나 쇠가시울타리를 가리려고 강원도뿐 아니라 온 나라 곳곳에서 소나무를 베거나 뽑아다가 바닷가에 줄줄이 두었구나 싶어요.

엄상빈 님이 책끝에 '사진가 말'로 붙이기도 했는데, 강원도 바닷가뿐 아니라 인천 바닷가에서도 '탐조등'이 바닷가를 밤마다 비추곤 했습니다. 이 불빛이 얼마나 센지 몰라요. 얼굴에 이 불빛을 맞으면 눈이 멀까 싶도록 따갑고 뜨겁습니다. 눈을 못 뜨지요.

속초 2008
 속초 2008
ⓒ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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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무네 집에 놀러가려고 일부러 바닷길을 따라서 걸으면 으레 무섭게 생긴 어른을 마주쳤던 일이 생각납니다. 인천 바닷길이라고 해도 모든 바닷길은 쇠가시울타리로 막혔으니 이 쇠가시울타리를 손으로 슬슬 만지거나 긁거나 스치면서 걷는데, 사람 발길이 없는 바닷길에 갑자기 낯선 어른이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서 이 쇠가시울타리를 건드리지 말라고 윽박지르지요.

그때에는 왜 갑자기 낯선 어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지 몰랐어요. 그러나 바닷가 쇠가시울타리에는 빈 깡통이라든지 뭔가 길게 이어지기 마련이에요. 제가 동무네 집에 가는 길에 심심하기도 하고 바다를 보며 걷다가 얼결에 자꾸 쇠가시울타리를 건드리니, 또 빈 깡통을 나뭇가지로 톡톡 두들겨 보기도 하니, 군부대 경계초소로 '어떤 신호'가 갔겠지요. '아이들 장난'을 마치 '간첩이나 북한군이라도 넘어온 일'이 터진 듯 여겼겠지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성화 봉송 때는 '자연보호 The Preservation Nature'라는 거짓문구를 붙이는가 하면, 7번 국도에서 보이는 수많은 경계초소를 감추느라 커다란 소나무를 베어다 가려 놓기까지 했다. 이는 성화 봉송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의 눈을 속이려는 임시방편이었지만, 지나가는 한순간을 위해 이런 식으로 베어진 소나무는 동해안만 해도 수만, 수십만 그루였으리라 짐작된다. (사진가 말)

속초 1986
 속초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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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1998
 속초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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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1998
 속초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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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에 흐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닷가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쇠가시울타리는 누구를 누구한테서 지키는 구실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끝도 없이 이은 쇠가시울타리를 따라 시멘트로 쌓은 경계호와 경계초소는 누가 누구를 지켜보거나 막으려고 한 자리였을까 궁금합니다.

'개구멍'이라고 하는, 쇠가시울타리 한쪽을 자그맣게 잘라내어 마련한 구멍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슬그머니 드나들고, 마을 아이들이 살짝살짝 드나들지요. 저는 어릴 적에 쇠가시울타리를 잘라내어 구멍을 낸다는 생각은 못 했고, 어딘가에 개구멍이 있으리라 여기며 한참 바닷길을 따라 걸으면서 찾아보곤 했어요. 개구멍이 난 자리로 몰래 들어가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놀고 싶었거든요.

애써 개구멍을 찾아내도 오래 드나들지는 못 합니다. 어느 날 이 개구멍이 거친 손길로 막혀요. 그러면 다른 개구멍이 있나 찾아보고, 다른 개구멍을 찾아내어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살그마니 들어갑니다. 어느 날은 몇 시간째 이리저리 살펴도 개구멍이 없어서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는 몰랐습니다만, 개구멍을 내려는 마을 어른하고 개구멍을 막으려는 군인 사이에서 고단한 실랑이가 늘 도사렸지 싶어요.

양양 2003
 양양 2003
ⓒ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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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1986
 속초 1986
ⓒ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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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또 하나의 경계>를 보면 쇠가시울타리에 오징어를 널어서 말리기도 하고, 빨래를 널어서 말리기도 하는 모습이 고즈넉하면서 부드러이 흘러요. 두려움이 없달까요, 무서움이 없달까요. 그러나 마을사람들 살림을 돌아본다면 쇠가시울타리에 돋은 뾰족뾰족한 쇠가시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법 없이도 착하고 정갈하며 곱게 살아가는 수수한 마을사람은 쇠가시울타리나 시멘트 담벼락이 없어도 도란도란 이웃사랑을 나누는 살림이에요. 총칼로 지키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누는 삶입니다. 뾰족한 쇠가시로는 지키지 못하는 평화요,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이웃사랑으로 지키는 평화입니다.

7번 국도변에서 자란 탓에 어려서부터 보아 온 낯익은 바닷가 풍경이었지만, 철조망을 이용해 호박넝쿨을 키우고 때로는 빨래나 오징어를 널어 말리기도 하는 이 구조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진가 말)

이제 우리는 안보가 아닌 평화를 헤아릴 때를 맞이했다고 봅니다. 선거철만 되면 '안보 팔이(안보 장사)'를 하며 나라를 '빨갛게' 물들이려고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런 안보 팔이와 전쟁 팔이는 그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양양 1990
 양양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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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1995
 고성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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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쇠가시울타리는 인천 앞바다를 비롯한 황해 바닷길을 따라서도 끝없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가둔 쇠가시울타리라고 할 만해요. 적한테서 우리를 지키는 쇠가시울타리가 아닌, 우리 스스로 쇠가시울타리에 갇힌 얼거리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경계초소로 평화를 지키겠노라 하는 몸짓은 이제 끝내야지 싶어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평화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저쪽보다 더 세거나 더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갖추어서 이쪽이 평화롭겠노라고 윽박지르는 몸짓은 이제 멈추어야지 싶어요. 남북녘 살림을 살펴보면, 북녘이든 남녘이든 전쟁무기에 너무나 많은 돈과 사람과 품을 바치느라, 막상 북녘도 남녘도 좀처럼 평화롭지 않고 넉넉하지 않구나 싶습니다.

북녘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새로 만들어 내려는 몸짓을 멈출 노릇이요, 남녘 정부는 북녘이 이러한 길로 가도록 슬기로우면서 따스한 손길로 이끌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남녘은 남녘대로 북녘이 걱정하지 않도록 부질없는 전쟁무기는 이 땅에서 걷어내거나 걷어치워야지 싶습니다.

남북녘이 서로 손을 맞잡고서 '전쟁무기를 차츰 줄여 앞으로는 몽땅 없애는' 길로 가야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남북녘 모두 스스로 나라 곳곳에 세운 덧없는 쇠가시울타리를 녹여서 호미랑 낫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쇠가시울타리랑 경계초소로 얼룩진 자리를 호미랑 낫으로 가꾸어서 마을텃밭이나 마을숲으로 바꾸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성 2000
 고성 2000
ⓒ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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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1990
 양양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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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1998
 고성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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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참다운 평화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속초를 비롯한 동해안 7번 국도 자리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 군인이 아닌 젊은 시골지기가 젊은 마을로 일구는 싱그럽고 착한 몸짓을 사진으로도 마주하고 삶으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라요. 평화는 오직 평화로운 마음일 때에 이룹니다. 평화는 오로지 평화를 꿈꾸는 사랑일 적에 함께 나눕니다.

덧붙이는 글 | <또 하나의 경계, 분단시대의 동해안>(엄상빈 사진 / 눈빛 펴냄 / 2017.4.3. / 4만 원)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엄상빈 지음, 눈빛(2017)


태그:#또 하나의 경계, #엄상빈, #사진책, #철조망,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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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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