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석조저택 살인사건 포스터 석조저택 살인사건 메인 포스터

▲ 석조저택 살인사건 포스터 석조저택 살인사건 메인 포스터 ⓒ (주)씨네그루


* 이 글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1945년의 서울,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 날 마술사 이석진(고수)은 곤경에 빠진 정하연(임화영 역)을 구해주고 함께 사랑에 빠집니다. 한편, 1948년 7월에는 석조저택에서 일어난 여섯 발의 총성과 사체를 태운 흔적, 잘려나간 손가락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체 증거가 없으면 유죄 판결도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문성근)과 이 사건을 처음 목격한 제보자를 증인으로 세울 수 있다면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검사(박성웅 역)의 신경전.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이 두 시점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교차되며 하나의 결말을 완성시키는 작품입니다. 시점 거리 때문에 두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는 형식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으나, 그 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둔 독립적인 두 이야기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굳이 두 부분을 나누어 보자면 1945년을 배경으로 한 두 남녀의 이야기가 중심 사건의 원인이며, 1948년에 일어난 공판 장면들이 중심 사건의 결과에 해당합니다.

02.

이 영화엔 작품 외적으로 특이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두 명의 감독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일련의 작업을 한 감독이 전담합니다. 어떤 구상을 갖고 나아가느냐에 따라 작품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코엔 형제(조엘 코엔, 에단 코엔), 워쇼스키 자매(릴리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다르덴 형제(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처럼 형제 관계의 사람들이 함께 작품을 만드는 일도 있습니다. 이들은 작품을 완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알려져 있는 반면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정식 감독과 김휘 감독은 그렇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작품에 참여한 부분을 나누어 놓은 지점도 독특합니다. 정식 감독은 이 영화의 제작 준비와 촬영 단계를 맡았고, 김휘 감독은 후반 작업만을 맡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이 특이한 이유입니다.

03.

두 감독이 제작 단계를 나누어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걸 보면 영화는 생각보다 매끄러운 편입니다. 오히려 만듦새가 좋지 못했던 단독 연출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두 시점을 밝고 어두움의 차이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점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은 특히 이 영화의 통일감과 이해도를 높여주는 포인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이해를 방해하는 것은 영화의 선재물(홍보를 위해 제작되는 광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스펜션과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강요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작품이 서스펜스 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는 빌 S. 밸린저의 대표작 <이와 손톱>을 원작으로 했다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각색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이상 특정 분야의 예술이 다른 예술의 표현 방식으로 전환될 원래 장르까지 옮겨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연출에 따라 이질적인 장르로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작품은 그런 전환의 대표적 예입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이 작품은 서스펜션, 스릴러라기보다 드라마 장르에 더욱 가까워 보입니다.

04.

기본적으로 서스펜스 장르에서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문제나 불안이 감추어진 상태에서 관객들이 그 간극을 넘나드는 것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기본으로 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1992)나 <헤이트풀 8>(2016)을 생각해보면 가장 알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불안을 이야기하기에 스토리가 너무나 명확합니다. 주인공인 석진을 스토리의 중심에 두고 이 인물이 어떤 과정에서 분노와 복수심을 갖게 되고 어떤 방식을 통해 계획을 이루어 가는지, 또 어떤 위기를 겪게 되는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극의 연출자는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성 마담의 입을 통한 반전의 불안을 의도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만으로이 서스펜션이 가득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스스로의 강점을 뛰어난 서스펜션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특정 지점에서만 잠시의 불안이 느껴진다고 그것만으로 이 작품의 장르나 정체성을 구분 짓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서스펜스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에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05.

이 작품을 법정 스릴러라고 이야기하기에도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스릴러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하연과 석진 두 인물이 보여주는 1945년 서울의 이야기보다 1948년 법정 장면의 이야기 비중이 더 많았어야 합니다. 의미도 더욱 두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법정 장면은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1945년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을 갈무리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작업에 불과한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위에서 제시한 두 가지 지점의 포인트는 이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 1945년의 겨울에 등장하는 하연과 석진 두 인물의 이야기에 있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즉,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지는 드라마에 가깝다는 뜻이죠.

06.

서스펜션과 스릴러 장르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르적 아쉬움만이 남는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드라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상당히 치밀하게 짜여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강점은 영화의 전반부에 깔아놓은 복선과 장치들을 영화 속에서 잘 갈무리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장르를 표방하는 작품일수록 디테일을 죽이는 허술함으로 인해 몰입을 방해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그런 부분은 이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마술 무대를 위해 장치해 두었던 네 번째 장전과 같은 요소들은 영화의 마지막에서까지 이용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막 상경한 하연이라는 인물에게 쉽게 마음을 주는 것 또한 석진이 어린 시절 서커스단에 팔려갔다는 설정을 제시하며 심리적 근거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극 중 배우들의 호연 또한 이 작품의 아쉬움을 상쇄시키는 한 요인이 됩니다. 그 중에서도 하연이라는 인물을 대신해 영화의 후반부를 끌고 나가는 남도진(김주혁 역)의 등장은 극의 분위기를 전환시킴과 동시에 석진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07.

모든 예술 작업에 있어 협업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특히 감독이라는 자리에 있어 다른 누군가와 협업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라는 예술 자체가 이미 협업을 전제로 하는 일이고, 영화의 장면은 누군가의 상상력을 스크린 위에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작품을 공동 연출한 두 감독이 뛰어난 협업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깊이는 찾을 수 없었지만, 영화의 중반부 이후까지 이어지는 드라마만큼은 지켜볼 만한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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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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