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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충남 아산 온양온천역 앞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충남 아산 온양온천역 앞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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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후보께.

안녕하세요? '트럼프의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시민 강인규입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후보께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제가 홍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까닭은, 후보께서 도널드 트럼프를 일종의 '롤모델'로 삼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를 '홍트럼프'로 부르는 것은 주로 언론이나 시민들이지만, 후보께서도 이 별명에 크게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이는 후보가 5월 26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했던 말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간담회 진행자가 "한국의 트럼프"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후보는 "난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편이지만 트럼프는 '무대포'라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기꺼이 닮은꼴임을 자인했습니다.

"(트럼프가) 과단성이 있는 지도자라고 보는데, 일을 밀어붙이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동기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막말'로 화제를 일으켜 집권에 성공했다는, 아주 잘못된 평가가 한국 언론을 통해 널리 퍼져있고, 후보 또한 이런 엉터리 분석을 토대로 선거운동 전략을 세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해, 트럼프는 '막말 때문에' 선거에서 이긴 게 아니라, '막말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이긴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글을 계속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가끔 후보가 듣기에 거슬리는 말들이 등장하겠지만, 한 표가 아쉬운 후보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10년을 산 뒤, 펜실베니아로 이사 와서 7년째 살고 있습니다. 이 두 주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역으로, 지난 25년간 단 한 번도 공화당 대통령을 지지한 적이 없던 곳입니다. 그랬던 곳이 지난 대선에서 모두 트럼프로 옮겨갔습니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설마 그 원인이 고작 '입을 험하게 놀려서'라고 믿지는 않으시겠지요?

'입길' 떠난 적 없는 홍준표의 정치 이력

홍 후보의 정치 이력은 '설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그 '빈도'와 '강도'가 한층 강화된 듯합니다. 아무래도 '트럼프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겠지요.

"와, 저렇게 말을 해도 대통령이 되는구나…"

뭐, 꼭 미국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난 한국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제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와, 저렇게 말을 안 해도 대통령이 되는구나…"

제가 <'저랑 지금 싸우자는 거예요?' 기자없는 언론, 허수아비 박근혜>에서 썼던 대로, 박근혜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은 '질문하지 않는 언론'이었습니다. 한국의 종편방송과 비슷한 지향성을 지닌 <폭스뉴스> 같은 '막장언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기자들은 꽤 질문을 던지는 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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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까지 문제가 된 트럼프의 추악한 과거 발언이나 행적은 모두 '질문하는 언론'이 들춰낸 것이었지요. 지금도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정책과 판단 하나하나를 호락호락 넘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이 하지 못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외된 시민들의 고통을 시민사회와 정치권에 전달하는 '중재(mediation)'의 역할입니다.

저는 언론의 역할을 두 가지 기능으로 요약합니다. 하나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감시견' 역할이고, 하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아픔을 전달하는 '중재자' 역할입니다. 미국 언론은 하나의 역할은 비교적 충실히 수행했으나, 다른 하나의 역할은 제대로 해내지 못한 셈입니다.

미국 대다수의 언론은 대도시와 그 안의 삶에만 관심을 가진 채, 도시 밖 거주자들의 삶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역할을 자임한 것이 트럼프였습니다.

진보적인 주들, 왜 트럼프에 표를 던졌나

제가 앞서 언급한 진보 성향의 두 주는 미시건과 더불어 '5대호'로 대표되던 미국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습니다. 미시건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고, 위스콘신은 '할리데이비슨'의 탄생지로 유명하며, 펜실베니아는 한때 세계최대를 자랑했던 철강산업의 중심지였고 (한국에서 '부루스타'로 알려진) 가스레인지나 '지포 라이터' 같은 소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상품들을 처음 만들어낸 곳입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잘 깨닫지 못하지만, 제조업은 서비스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산업유발 효과와 고용창출 능력을 자랑합니다. 예컨대 마을에 제조공장이 세워지면, 가까운 곳에 부품 공장이 들어서고, 운송회사가 따라 들어오며, 이곳에 일자리를 잡은 노동자들이 살 주택들이 지어지고, 이 고객들을 위해 은행·보험사·상점·식당들이 생겨납니다.

제조업이 토목사업·운송·건설·금융·요식업 등을 유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역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자동차 조립공장이 생기면 주위에 치킨집이 생겨나지만, 치킨집이 생긴다고 주위에 자동차 조립공장이 세워지지는 않습니다.

미시건·위스콘신·펜실베니아가 부유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고, 주 내의 다수 지역의 산업과 경제가 쇠락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기업들이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공장을 중국·인도·베트남 등지로 옮긴 탓입니다.

공장이 사라지면서 부품공장·운송회사가 사라졌고, 집들이 비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의 은행·보험사·상점·식당 등이 문을 닫은 것은 당연하지요. 제조업이 사라지면서, 금융과 유통·요식업 등 서비스 종사자들까지도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지요. 대도시 거주자라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겠지만, 제조업 하나에 의존하던 다수의 중소도시는 살길이 막막해졌습니다.

홍 후보가 이 지역의 정치인이라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후보가 '형님'으로 모시던 이명박이 하던 대로 "시야를 넓게 갖고 찾아보면 일자리가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아니면 후보가 "춘향인 줄 알았는데 향단이었다"던 박근혜처럼 "일자리는 중동을 중심으로 해외에 많이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트럼프는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 공장을 옮기지 못하게 할 것이고, 옮긴 공장도 되돌아오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기업이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로 반입할 경우 35%의 관세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공약의 현실성이나 효과는 둘째 치더라도, 관심의 중심을 기업 아닌 노동자에 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의 트럼프'는 기업이 아니라 노조를 때려잡겠다고 합니다.

'노조 가입=좋은 일자리' 말하던 오바마

재임 시절, 버락 오바마는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노조에 가입하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좋은 일자리' 당연히 안전하고 쾌적한 근무환경과 높은 임금, 그리고 안정된 일자리를 말합니다. 고용주는 최대한 돈을 적게 쓰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측의 재량에 맡기면 좋은 일자리가 생길 수도, 유지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노조가 필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만 하지는 않습니다. 사측의 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역할도 수행하지요. 예컨대 2013년 철도노조가 민영화에 반대해 벌인 파업을 생각해 보십시오. 민영화가 가격 인상과 비용절감을 위한 점검 미비로 시민의 이동권은 물론 생명권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노조가 수행해 온 감시와 내부고발자 역할이 아니었다면, 한국사회는 지금보다도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부패도 늘어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노조조직률이 곤두박질치면서 노동자들 개인의 근무환경은 악화되었고, 사회 고발 기능도 수행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조를 파괴하는 데 일조한 것은, 보수언론이 만들어 낸 '귀족노조'라는 허구적 담론입니다. '노동자'란 제 몸을 움직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상속받은 지위와 재산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귀족'과 대립하는 말이지요. 노조를 적으로 여기면서도 '당당한 서민'을 구호로 내세운 홍 후보의 정치의식만큼이나 모순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2%였습니다. 만일 노조가 일자리의 적이라면, 노조조직률이 바닥으로 떨어진 현재는 일자리가 차고 넘쳐야 할 텐데,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홍 후보는 한국 기업이 강성노조 때문에 해외로 옮긴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삼성처럼 노조가 없는 곳일수록 더 쉽게 해외이전을 감행합니다. 노조가 없으니 반발의 우려 없이 손쉽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노조원들 백악관 초청한 트럼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충남 아산 온양온천역 앞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충남 아산 온양온천역 앞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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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는 오바마의 '노조 찬미'를 '좌파적 발언'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떨까요? 놀랍게도 그조차 선거 운동 때 열심히 노조원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홍 후보가 '무대포'라고 불렀던 트럼프조차 노조가 노동자며, 노동자가 노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선된 후인 지난 1월에도 건설노조를 백악관에 초청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홍 후보가 입버릇처럼 '귀족노조'를 되뇌는 까닭은 보수언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레기'라는 상서롭지 못한 별명이 말해주듯, 이들은 감시견 역할도, 중재자 역할도 한 일이 없습니다.

혹시 '귀족노조'를 만나보신 적이 있는지요? 최저의 임금에 최악의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노동자를 만날 필요는 없습니다. 후보가 말한 그 '연봉 1억짜리 귀족노조'를 한 번 만나보십시오. 그처럼 '호화로운 삶'을 누려야 할 '부유층'들이 왜 경찰 방패에 찍히고 물대포를 맞아가면서 싸워야 하는지 이유를 물어 보십시오.

강인규 드림

추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왜 시민들이 민주당의 클린턴을 신뢰하지 않았는지와, '샤이 트럼프 지지자'로 불리는 기묘한 유권자들에 대해서도 다뤄볼까 합니다.

끝으로, 홍후보는 손석희 기자를 계속 '손 박사'라고 부르더군요. 기자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호칭은 '기자'입니다. '박사'는 그저 학위 소지를 말할 뿐이지만, 기자는 '역할'을 강조하는 호칭입니다. 요컨대 박사는 연구를 안 해도 박사지만 질문하지 않는 기자, 정치인을 괴롭히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자다운 기자를 '박사'라고 부르면, 안 그래도 한국에서 희귀한 기자의 존재가 더 희박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어쩌면 기자를 계속 '박사'로 호칭하는 데에는, 후보 앞에서만큼은 그가 기자 역할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건투를 빕니다.



태그:#홍준표, #트럼프, #귀족노조, #노조,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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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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