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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으로 치러지게 되는 조기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이번 대선을 '장미대선'이라 부르며 저마다 지난 촛불혁명의 완수와 정권교체에 한껏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장미빛'이기만 한 걸까?

선거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요구하고, 또한 그에 적합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데,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투표를 하는 일 자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니 당연히 투표장까지 가는 게 불편하고, 어렵게 투표소에 도착했더라도 투표소가 엘리베이터도 갖추지 못한 2층에 있다면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접근이 어렵다. 그 밖에도 점자, 수화 등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여전히 인프라가 부족하고 사회적 인식도 높지 않아, 대선을 앞두고 당사자들로부터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6 총선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3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투표소 접근성 확보', '수화영상 및 자막 제공' 등 장애인의 참정권 확보를 위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선관위에 요구하고 있다.
 '2016 총선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3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투표소 접근성 확보', '수화영상 및 자막 제공' 등 장애인의 참정권 확보를 위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선관위에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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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비교적 잘 되어있는 일본에서의 장애인 선거참여 현실은 어떠할까? 나고야에서 지난 1971년대부터 장애인을 중심으로'더불어 살고, 더불어 일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법인 '왓파의 모임' 사이토 겐조 대표(68세)를 지난 4월 28일 왓파 사무실에서 만나 일본에서의 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왓파의 모임'은 1990년 이곳에서 활동하던 사이토 마코토씨를 당시 일본의 지정시(한국의 광역시나 특정시와 비슷한행정단위)로는 최초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시의원이 되게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당사자인 사이토 마코토 의원이 얼마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요양 중이어서 사이토 겐조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일상의 이동권 보장, 투표소에서의 이동권 보장과 연동돼

'왓파의 모임'센터 모습
▲ 왓파 센타 전경 '왓파의 모임'센터 모습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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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투표장에 가기까지와 투표장에서의 이동권과 접근성 보장이다. 일본은 장애인 이동권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만큼 잘 갖추어져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투표장까지 가는 길이 특별히 큰마음을 먹어야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투표장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의 접근성 문제인 것 같다. 

한일 공통되게 상설투표소가 없기 때문에 공공시설을 투표장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의 장애인들 접근성에서 차이가 뚜렷이 드러난다.

일본의 경우 거의 모든 공공시설에 경사로나 휠체어용 엘리베이터 등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 시설들을 투표장으로 이용할 경우 장애인들의 접근성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2층에 투표소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사이토 대표는 "지금 일본에서 장애인의 투표권 보장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한국은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도 이런 공공시설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표장으로 활용하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는 행정적 편의를 위해 장애인들의 상황을 무시하고 2층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일본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이토 겐조 대표는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이토 마코토 의원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의회에 진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먼저 사이토 의원이 시의회에서 이동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의회 안에 경사로 설치 등을 비롯한 설비들이 확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장애인들의 참정권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게 되어 투표소의 이동권, 접근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각 지자체에 요구하였다. 사회적으로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장애인 이동권 설비들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적어도 투표소에서 장애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사이토 대표의 설명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이토 의원도 사무국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장애인 정치참여 네트워크' 등을 통해 진행된 다양한 입법활동과 의식고양을 위한 활동의 결과이다. 다만 그 이후로 국회와 지방의회 모든 부분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늘지 않아 좀 더 영향력 있는 활동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복지예산은 삭감되는데... 당사자들은 정치에 무관심

"당사자들의 정치의식이 낮아지는 게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이토 겐조 '왓파의
 모임' 대표
 "당사자들의 정치의식이 낮아지는 게 걱정"이라고 말하는 사이토 겐조 '왓파의 모임' 대표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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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정치 참여는 투표소에서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특히나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회복지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동권 등 기본적 인프라는 만족할 수준으로 확보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제도가 후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의 투표율은 그리 높지 않고 당사자들의 정치의식도 높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 사이토 대표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일본 사회의 정치 무관심은 장애인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여서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 교육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저 지금의 사회에 만족하게 하는 교육밖에 하고 있지 않다. 역대 자민당 정권이 그렇게 해왔다. 장애인들도 전에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싸워서 얻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사회적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추어지면서 의식이 낮아지고 정치 참여가 적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가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선거철 뿐만 아니라 일상적 의정활동이 시민의 요구를 잘 받아들여야 한다. 장애인의 투표 참여를 비롯한 참정권 보장 문제도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게 동반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이동권 확보를 요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사슬을 감고 시위를 해야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투표소에서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디 이번 대선이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그들에게도 진정한 '장미대선'이 되기를 기대한다.


태그:#장애인 투표권, #일본 나고야 , #왓파의 모임,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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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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