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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댓글 모욕죄로 고소한 건 때문에 조서 작성하러 와야 해요."
"제가 먼 곳에 있어서 평일에는 가기가 힘들 것 같은데요."
"검사가 바뀌었어요. 이걸 꼭 구체적으로 조사하라네요.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하여튼 와야해요."

경찰의 말투가 신경질적이다. 벌금으로 통장 압류까지 되어있는 나는 경찰서에 가면 분명히 지난번처럼 노역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경찰관이 말했다.

"지금 지명수배도 되어있는데, 저번처럼 이번에도 노역장 갈 거예요?"
"네."
"그러니까 어서 오세요."

교도소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약속된 4월 초에 경찰서로 향했다.

맑은 얼굴, 바른 생각.
▲ '맑은얼굴 바른생각' 맑은 얼굴, 바른 생각.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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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수번호 124

경찰 조사가 끝나고, 검찰청으로 이동했다. 검찰청에서 교도소 이송을 기다리는 동안 철장 안에 앉아 챙겨온 책 존 쿳시의 <추락>을 읽었다. 문학은 각성의 근육을 준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까먹지 않을 수 있는 근육. 이송될 시간이 오자, 검찰청 직원이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수갑을 차니 정말 죄인이 된 것 같다. 수갑을 찬 상태로 가방을 메고, 휴대전화를 열어 메신저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교도소 앞에 도착했다. 이제 3일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겠구나.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만 피우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검찰청 직원은 빨리 피우라며 시간을 허락해줬다. 수갑을 찬 상태로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고 연기를 길고 깊게 마셨다.

입소 절차는 지난번과 같다. 다시 보는 분홍색 교도소 대문이 '또 왔냐'고 코를 세우고 서 있는 것 같다. '맑은 얼굴, 바른생각' 간판 밑으로 들어갔다. 왜 '얼굴'일까. 이곳에서 나의 얼굴은 어떤 의미일까. 교도관 사무실에는 낯선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은 저번처럼 말했다.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다 빼세요."

팔찌와 목걸이를 풀었다. 피어싱이 빠지지 않자 그들이 해주겠다며 피어싱을 빼주다가 부러졌다. 나의 이름, 주민번호, 가족관계와 직업, 학력, 몸의 상처와 문신한 부위를 묻고는 지난번처럼 빼곡하게 적는다. 교도관은 나의 사건기록을 보더니, "폭력사건이네" 라고 말한다.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 건인데, 나의 죄명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 위반, 공동재물손괴 등'이다. 첫 글자만 봐서는 마치 엄청난 폭력을 저지른 것 같다.

"폭력이 아니고 공사장 벽에 대통령 풍자 그림 그렸다고 재물손괴죄가 된 거예요. 엄청 많은 그림 중에 제 그림만 수사한 거에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교도관은 형식적으로 "그렇구나" 대답하고는 옷을 갈아입으라며 유리방으로 안내한다.

옷을 벗는 걸 지켜보는 교도관에게 말했다.

"이거 꼭 지켜봐야 하나요? 저 상처 없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알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요."

교도관은 "원칙이 그래요. 잠깐만 볼게요"하고는 옷을 갈아입는 내내 쳐다봤다. 옷을 벗고 재빠르게 회색 양말, 하늘색 팬티, 하늘색 나시, 짙은 소다색 교도복을 입었다. 어찌나 빨리 입었던지 이마에 땀이 났다. 흰색 고무신 사이즈가 발에 맞지 않는다.

"일단 그거 신어요. 내일 발에 맞는 거 줄게."

교도관이 안내하는 독방은 4개월 전 들어갔던 같은 7번 독방이다. 교도관이 말한다.

"여기서 잠깐이라도 지낼 거니까 규칙을 말해 줄게요. 곧 점검할 거예요. 그럼 가운데 바르게 앉아있어야 돼요. 그리고 내일은 아침 6시에 일어나 작업장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역할 거예요. 취침시간을 제외하고는 누워있거나 자면 안 돼요. 교도복도 항상 입고 있어야 돼요."

아침 6시 기상이라니. 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점심쯤 눈을 떠서 작업하고, 새벽 4-5시쯤 잠을 잔다. 당장 오늘 밤, 잠이 안 오면 어떡하지. 교도관이 이어서 말했다.

"번호는 124번이에요. 124번이라고 부르면 대답해야 돼요."

이곳에서 내 이름은 '백이십사번'이다.

# 갈증

내가 들어온 밤부터 12시까지 하루, 그다음 날과 다음 날 아침까지만 이곳에 있으면 된다. 7번 독방에는 텔레비전이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재소자들이 텔레비전을 보는지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방마다 들린다. 나는 텔레비전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화장실에서 휴지 몇 마디를 뜯어왔다. 휴지에 인쇄된 영어랑 한자를 읽으려는 것이다. 휴지에는 쉴 휴(休)가 찍혀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방마다 스피커가 설치된 건지 교도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점검합니다." 앞방의 텔리비전 소리, 떠드는 소리가 멈췄다. 교도관은 출석부 같은 것을 들고 1번, 2번, 3번이라고 부르면서 각 방을 지나갔다. 교도관이 1번 방 앞에서 "1번"이라고 하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제각기 목소리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번호 끝"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일렬로 줄을 서고 말했던 그런 번호 말하기다. 내 방 차례가 왔다. 7번방.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교도관이 문을 열더니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앉아서 '하나 끝'이라고 말해야 돼요."
" 네, 하나 끝."

점검이 끝난 후 식사를 하라고 교도관이 문을 열었다. 입소할 때 받은 리빙박스 안에는 급식판과 연두색 플라스틱 수저가 있다. 독방 문에 설치된 개구멍만 한 통로를 통해 급식판을 건넸다. 급식판에 깻잎, 김치, 흰밥, 육개장이 담겨 들어왔다.

"밥을 먹고 급식판을 깨끗하게 설거지 하세요."

육개장에는 지방이 하얗게 뜬 죽은 돼지의 살점이 둥둥 떠 있다. 배가 고팠지만 죽은 돼지의 살점을 보고 밥맛이 없어졌다. 밥을 조금 떠먹고 화장실에서 찬물과 비누로 급식판을 세척하고 양치를 했다. 독방 불빛은 다시 어두워져 있다. 담요를 깔고 구석에 앉았다. 교도관이 철장 사이로 내게 말했다.

"거기서 자면 안 되고, 머리를 화장실 쪽으로 놓고 자야 해요. 우리가 볼 수 있게."

담요를 화장실 쪽으로 옮기고 다시 머리를 눕혔다. 무료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또다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적막이 몇 분, 몇 시간 흘렀다. 독방 안에는 시계가 없었지만 계산해보니 아직 10시도 안 된 시간이다.

벽지를 올려다봤다. 불규칙한 무늬가 어떤 패턴을 그리고 있다. 패턴과 패턴 사이를 멍하게 바라보니 이미지가 보인다. 화난 사람의 표정, 눈을 감고 있는 표정, 손가락과 발가락이 달린 나무,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양... 종이와 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목이 마르다. 목이 마른 것만큼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나가던 교도관에게 말했다.

"물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목이 말라서요. 그리고 종이랑 펜도 구할 수 있을까요?"
"왜요?"
"그냥, 글 쓰려고요."
"그거 저기 메뉴판에 있는 문구류를 주문해야 해요. 어차피 주문해도 이틀 걸려요. 펜은 내일 사무실에 있는 거로 줄 수 있으면 줄게요."

교도관은 식탁 위에 인쇄된 A4용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번엔 보이지 않던 메뉴판이다. 종이에는 각종 과자류, 식품, 문구류, 세면도구, 약품 목록과 가격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면세가 되는 건지, 싼 가격이다.

휴지를 몇 개 더 뜯어서 인쇄된 한자를 바라봤다. 감옥에서 휴지에 연필로 빼곡히 글을 썼다는 신영복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종이와 펜은 구입할 수 있지만 당장은 종이도, 펜도 쓸 수 없다. 언젠가 유치장에서 경찰관에게 종이와 펜과 물을 달라고 하고, 무료한 시간 내내 펜과 물로 잉크를 번지게 하면서 그린 그림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린 종이를 말리려고 유치장 바닥에 널부러뜨렸을 때 철장 안에서도 나는 자유로웠다.

목이 마른 건 참을 수 있어도 종이와 펜이 없는 건 참기 힘들다. 작은 흰 종이. 자유의 공간 한 칸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어디서든 버틸 수 있을 텐데. 지난번엔 보지 못했지만, 교도관 사무실 맞은편 복도에는 대여할 수 있는 도서가 꽂힌 책장이 떠올랐다. 내일은 책을 빌려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노역 때문에 읽을 시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 작업장

"기상, 기상입니다."

다급하게 말하는 교도관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단순한 멜로디 하나 없는 알람에 놀라서 깼다. 방안의 형광등도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환해졌다. 화장실 위에 달려있는 창문을 보니 하늘이 푸른 색이다.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에 정리 후 8시 반쯤 교도관이 방문을 열었다.

"노역하러 갈거니까 나오세요."

복도로 나가니 10여 명의 재소자가 서 있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받은 고무신이 너무 헐렁해서 걷기가 힘들다. "고무신이 너무 커요" 교도관에게 말했더니 옆에 있던 재소자가 "그럼 내 것 써요" 하면서 복도 신발장에 있는 작은 고무신을 꺼내줬다. "고맙습니다".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신고 작업장으로 갔다.

복도 끝에 열린 문 앞에서 교도관은 한 명 한 명씩 주머니를 검사했다. 건물을 나가니 햇빛이 작은 옆 마당에 가득 찼다. 옆마당 오른쪽에 있는 작은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작업장 내부는 초등학교 과학 실험실 같이 생겼다. 커다란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있고 길고 커다란 검은색 테이블이 두 개, 투명한 유리로 된 교도관의 감시실 혹은 사무실이 있었다. 처음 보는 10여 명의 재소자들이 내 앞에 두 줄로 서 있다. 40대로 보이는 머리를 길게 묶은 한 재소자가 내게 명랑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점검할 때는 아홉!이라고 말하면 돼요."

친절한 안내와 명랑한 분위기에 긴장이 풀렸다. 어젯밤 점검할 때처럼 번호를 말했다. 하나, 둘, 셋, 넷... 내 차례다. "아홉".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머리 긴 언니가 "열 번호 끝!"이라고 말했다. 교도관이 말했다.

"오늘 작업은 좀 어려울 수 있어요. 그리고 외부 회사에서 위탁받은 일이라 별로 재미없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힘내서 해봅시다."

재소자들은 "네!"라고 말한 후 테이블 모서리마다 앉았다. 1번 방과 2번 방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날이었다. 나는 2번 방 사람들이 모여앉은 테이블에 앉았다. 긴 테이블 뒤편으로는 70-80대로 보이는 흰머리의 재소자가 작은 책상에 앉아있다. 그분은 파란색 실 같은 것을 만지고 있다. 마치 물레를 돌리는 것처럼, 파란색 실을 비비고 커다란 원통에 그것을 넣으면 기다란 실이 나선형으로 박스에 들어갔다. 파란색 실이 햇빛과 만나 은은하게 빛났다. 전선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커다란 사물함에서 몇 개의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박스 안에는 브래지어 패드가 있는 스킨색, 네이비색 슬립이 있다. 슬립 두 장씩 겹쳐서 보기 좋게 접고, 박스에 포장하는 일이다. 슬립 두 벌을 겹쳐서 놓고, 그 위에 두꺼운 흰종이를 놓고 깔끔하게 접은 후 브라끈을 정리하고, 집게로 집고, 브래지어 패드가 보기좋게 톡 튀어나오게 다듬는 작업을 맡았다. 쉬운 일처럼 보였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40-6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았다. 한 사람이 말했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좋네. 일도 잘하겠지."

사람들은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몇 번을 알려준 후 중간중간 내가 일하는 것을 보러 왔다. 떠오르는 잡생각을 지우면서 스킨색 슬립을 열심히 접었다. 브라끈을 정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다니. 긴장됐다. 내가 앉은 테이블 바로 앞에 앉은 언니의 인상이 무서워서 더 긴장됐다. 30대 후반처럼 보이는 검고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안경을 낀 그 언니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말 놔도 되지?". "네" 라고 대답했다. 얼마나 일했을까. 갑자기 앞에 앉은 언니가 내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하는게 아니고"라며 다시 슬립을 개는 법을 보여줬다. 눈에 불을 키고 그 모습을 집중했다.

한 손 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아의 상태로 몇 분 동안 쉬지 않고 슬립을 접었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모양새가 나왔다. 패드는 보기 좋게 튀어나와 있고, 상품으로 바로 팔아도 좋을 만큼 깔끔했다. "어머, 정말 섹시하게 잘 접었네!" 앞에 앉은 언니가 말했다. "역시 젊은 사람이라 일을 잘하네"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보통은 전선을 만드는 일, 기계 안의 전선을 이어 붙이는 일을 한다고 한다.

"오늘 하는 이게 힘든 작업인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네. 호호 엄마들 몫까지 많이 해줘~."

내 옆에 앉은 감수성이 풍부해 보이는 50대 언니가 이어서 말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들어오면 좋았을 텐데. 토요일, 일요일은 작업을 안 하는 날이거든". 금요일인 오늘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온종일 작업을 해야 한다.

"커피 마십시다!"

작업반의 반장같이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개인당 한 개씩 주어진 파란색 컵에 커피를 타 마시는 시간이다. 내게는 컵이 없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눈썹이 진하고 차분해 보이는 언니가 내게 말했다.

"내 컵 빌려줄게."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대로 믹스커피가 담긴 통에서 커피를 가져갔다. 나는 블랙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셨다. 10분, 커피 한잔이 이렇게 맛있다니. 짧은 휴식이 지난 후 다시 각자의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머리끈이 없어서 불편했다. 옆에 떨어진 노란색 고무줄로 머리를 묶으려 하자, 앞에 앉은 무서운 언니가 머리를 묶고있던 검은 머리끈을 풀어서 내게 주었다. "이거 써" "감사합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작업에 열중했다. 일하는 속도는 달랐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다. 오늘 작업 분량을 채우려면 쉬지 않고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수다도 없었고, 명랑하지도, 들뜨지도, 무겁지도, 어둡지도 않은 분위기에서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슬립을 만졌다.

#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작업장에서 오전 노역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각자의 방에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언니들은 "너 방에 커피 없지? 아이고 불쌍해. 이거 가져가"라면서 커피믹스 두 개를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와 쉬려던 참이었다. 노역장에 다녀온 경험을 글로 기록할 생각이었던 나는 사람들과 더 이야기 나누고 싶기도 했지만, 혼자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작업할 때 내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긴장됐다. 일을 잘 못해서 야단맞을까 봐 위축된 마음도 있었다.

교도소 운영규칙이 적힌 종이가 다시 눈에 띄었다. '신입식 금지.' '신입식을 할 경우 벌점 및 징벌 조치'라고 적힌 조항이 있다. 말로만 듣던 신입식. 그런 게 있을 수 있겠구나. 독방을 쓰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혼자 있을 때의 무료함과 함께 있을 때의 긴장감. 긴장보다 무료함이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긴장된 상태가 더 나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처음 보는 교도관이 독방 문을 열었다. "124번 짐 챙겨서 나와요". 교도관은 2번 방으로 나를 안내했고, 2번 방 사람들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내 앞에 앉았던 검은색 머리끈을 빌려준 그 언니도 있었다. 교도관이 나가고, 사람들이 내게 인사했다.

"어서 들어와요, 아이고. 반가워요! 여기 얼마나 있어?"
"저는 내일 아침에 나가요." "편안하게 있어~ 펜션 여행 왔다고 생각해! 펜션이야 펜션. 호호."


사람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5-6평 정도 되는 혼방에는 4명이 생활하고 있다. 창문이 있고, 안이 다 보이는 화장실도 있다. 한쪽 벽으로는 각자의 짐을 놓는 선반이 있고, 그 위에 리빙박스들이 줄 맞춰 앉아 있다. 다른 한쪽 벽에는 옷들이 걸려있다. 모두 짙은 소다색 죄수복, 하늘색 내복, 회색 속옷이었다. 선반과 싱크대 위에는 과자와 소시지, 음료수와 물이 가득했다. 연필꽂이통이 있다. 종이도 있고, 색색의 볼펜도 많다. 아아, 색색의 볼펜이라니! 창문에서는 정오의 햇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창문 바깥으로는 교도소의 담벼락과 아주 작은 뒷마당이 보였다. 뒷마당에는 나무 한그루, 초록색 풀들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라나 있다. 창문 위쪽으로는 빨랫줄이 설치되어 있다. 빨랫줄에는 색색의 옷걸이와 빨래집게가 줄줄이 걸렸다. 빨간색, 노란색, 연두색, 파란색, 검은색 옷걸이에는 새로 빨래한 똑같은 색깔의 연두색 수건들이 널려있었다. 향긋한 비누 빨래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루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철장에 팔을 감싸고 매달려 있다.
▲ 매달린 사람들 자루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철장에 팔을 감싸고 매달려 있다.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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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설치된 흰색 창살 밑으로는 커다란 자루 하나씩 묶여서 매달려 있다. 자루 속에는 여러 가지 초코바, 초콜릿, 과자, 소시지, 떡갈비, 물, 음료수 등이 담겨있었다. 자루는 빵빵하게 가득 차 있었고, 철장에 견고하게 묶여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이 자루들은 냉장고 같은 건가요?"

창문 바로 밑의 자리가 고정된 자리인 듯 옆에 서있던 언니에게 물었다. 50대로 보이는 눈썹이 짙고 차분한 인상의 그 언니가 대답했다.

"응, 냉장고 같은 거지. 그런데 이제 날씨가 점점 더워져서 못쓰게 됐네~"
"비가 오면 어떡하죠?"
"비가 와도 젖진 않더라고. 그래서 꽉 묶어놨지."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 이렇게 묶여있는 것 같은 자루더미다. 언니가 이어서 말했다.

"이런 곳에서도 이렇게 생활을 한단다. 사람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산다니까."

언니는 들고 있던 연두색 수건을 빨간색 옷걸이에 걸치고, 빨래 줄에 널면서 내게 묻는다.

"떡갈비 하나 먹을래?"
"아니요, 고기를 안 먹어서요."
"왜?"
"동물을 잔인하게 사육하는게 싫어서요."
"어머, 그렇구나. 그럼 초코바 먹을래?"
"네 좋아요!"

식사를 하기 전,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했다. 오전마다 편지가 도착하는지, 교도관은 복도를 돌며 편지를 나눠주고 있다. 우리 방에도 한 움큼의 편지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거나 초코바를 먹고, 새로 주문할 물품을 메뉴판을 보면서 고르고, 종이에 기록해서 교도관에게 전달했다. 교도관의 눈을 피해 책상 위에 살짝 기대어 잠을 자거나 빨래를 하기도 한다. 나는 창가 바로 밑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초코바를 씹어먹었다. 곧 '사서언니'라고 불리는 사람이 방 앞에 와서 음식을 담아주었다. 우리는 방에 있는 테이블을 가운데로 붙이고 둘러앉았다.

뒤에서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꼬맹아 너 저리로 가." '꼬맹이? 꼬맹이라니? 못들은 척 해야지.' 무시하고 앉아있었다. "옆으로 좀 가라고"라고 내게 다가와 말한다. 목소리가 유난히 커서 작업장에서도 거슬렸던 언니였다. 나는 왼쪽으로 자리를 피했다. "더. 더 가" 더 왼쪽으로 옮겼다. '나를 경계하는구나' 나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던 다른 언니들은 말이 없었다. 나머지 세 사람이 저 목소리 큰 언니의 눈치를 보는 걸까.

식판에 담긴 음식에 집중했다. 점심으로는 죽은 멸치를 말리고 뜨거운 불에 볶은 반찬과 죽은 돼지의 살점이 둥둥 떠다니는 순두부찌개가 나왔다. 고기를 빼고 국물과 흰밥을 골라 먹었다. 언니들은 많이 먹으라며 죽은 멸치를 내게 덜어줬다. 사람들은 밥 먹는 내내 나를 '꼬맹이', '애기'라고 불렀다.

식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같이 테이블을 정리했다. 작업장에서 바로 내 옆에 앉았던,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언니가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다가가서 말했다. "제가 설거지 할게요". 옆에 있던 언니들이 말했다. "아니야. 저 언니가 당번이라서 하는 거야".

혼방에서는 교도소에 입소한 순서대로 오래된 사람은 화장실 쪽, 최근에 들어온 사람은 문 쪽으로 눕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또, 그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하루 당번을 한다. 하루 당번은 설거지, 급식준비, 방의 잡다한 정리정돈을 도맡아 해야 한다. 왠지 신입인 내가 모두 해야할 거라는 압박감에 눈치 보였지만, 당번이 정해져 있다고 하니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지정된 듯한 테이블 앞에 앉아 오전에 도착한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썼다. 작업장에 다시 갈 시간은 1시 반.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수건 빨래를 하던 목소리 큰 언니가 내게 다가와 말한다. "이름이 뭐야?" "승희요" "여기 왜 들어온 거야?" 옆에 있던 나이 많은 안경낀 언니가 말했다. "그런 건 물어보는 거 아니야". 나는 괜찮다며 대답했다.

"대통령 풍자하는 그림을 벽에 그렸다고 들어왔어요."
"어머, 박근혜 그렸다고?"
"네. 그림이 많은 벽에 그렸는데 제 것만 수사했더라고요."

목소리 큰 언니가 말했다.

"진짜 웃기네. 박근혜 걔가 시켜서 그런 거 아니야. xx같은 것들."
"그런데 여기 왜 들어왔어. 이런 데 들어오면 안 좋아. 재판을 청구하지 그랬어."
"저도 안 들어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식재판 청구도 했는데 무죄는 안 나왔어요. 인정하고싶지 않아서 여기 왔어요."

목소리 큰 언니가 이어서 말했다.

"그랬구나. 어쨌든 우리는 네가 와서 너무 좋아. 왜냐면 작업할 때 함께할 일꾼이 생겨서."
"잘했네. 그래도 반갑네. 이것도 인연이다."

설거지를 하던 언니가 앞에 앉아 말했다.

"야, 그래도 너무 잘해주지 마. 여기 좋으면 또 들어온단 말이야."

그때 테이블 구석에 앉아있던 눈썹이 진한 언니가 편지를 읽어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구치소에 있는 친구가 보내준 편지라고 했다. 박근혜는 큰 방을 혼자서 다 쓰고 있다고 한다. 소파도, 침대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목소리 큰 언니가 말했다.

"진짜 웃기네. 우리도 범죄자지만, 그 사람은 진짜 나쁜 범죄자야."

가장 나이가 많은 두 명의 언니들은 최순실과 같은 구치소에 있다가 이곳으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벌을 줄 거면 공평하게 줘야지. 이게 뭐니 정말."

교도관이 내게 124번과 방번호가 인쇄된 흰색 천을 주었다. 내게 머리끈을 빌려주었던 언니가 딱풀로 그것을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에 붙여줬다. 목소리 큰 언니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머, 번호가 124야? 123도 아니고. 웃기네! 나이는 몇 살이야? 스물다섯?"
"스물여덟이요."
"어머, 훨씬 더 어려 보이는데? 먹을 만큼 먹었네!"
"무슨 일 해?"
"그림 그리고 글 써요."
"그림 그려? 잘됐다. 내 고무신에 그림 좀 그려줄 수 있어?"

그림이라니. 신나서 대답했다.

"좋아요! 그런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옆에 있던 안경 낀 언니가 말했다.

"이 언니 보면서 떠오르는 거 그려줘. 혹시 주사기 생각나지 않니? 호호"

옆에 있던 다른 언니들도 꺄르르 웃었다. 목소리 큰 언니는 별명이 주사기인 것 같다. 주사기. 그러고 보니 번호표 색깔이 흰색인 나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파란색 번호표를 달고 있다. 마약 혐의로 이곳에 들어온 것 같다.

"엄마랑은 자주 연락하니?"

목소리 큰 언니가 내게 물었다.

"네. 가끔요."
"엄마한테 잘해. 눈치챘겠지만 언니는 여기에 그런 거 때문에 들어왔어. 엄마 속을 너무 썩여서 이제 나가면 엄마한테 잘하려고."

다른 언니들이 색색의 펜을 가지고 왔다. 모나미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펜으로 흰 고무신에 그림을 그렸다. 얼마나 그리웠던 그림인가. 이렇게 많은 색깔로 흰 캔버스(고무신)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나선형의 달팽이집과 눈, 팔, 손가락과 다리와 발가락을 그렸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만지고 만나고 싶은 달팽이.

만나고 만지고 걸어다니고 싶은 달팽이
▲ 흰고무신 만나고 만지고 걸어다니고 싶은 달팽이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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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 언니가 말했다.

"너무 귀엽다. 잘 신고다닐게. 고마워."
"얼마나 여기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내 검은색 머리 색깔만큼."

두피부터 어깨까지 검은색 머리카락이고, 그 아래로 염색 머리가 자라있었다. 족히 1년은 길러야 하는 길이다.

"1년 넘게 여기 있었어. 1년은 더 있어야 될걸."
"그렇군요."
"네가 부럽다. 나도 내일 나가고 싶어."

창문에서 따뜻한 바람이 들어왔다. 언니들은 나에게 땅콩과 초코바, 에너지바, 물과 음료수를 계속 줬다. 할머니 집에 온 것처럼, 내 리빙 박스는 언니들이 준 과자로 채워졌다. 은근한 신경전이 오가는 게 불편했지만, 언니들과 초코바를 먹으면서 나는 교도소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독방보다 혼방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곳에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혼방을 함께 쓰던 사람들의 호칭은 번호나 가명으로 하지 않고 신체적 특징과 함께 언니, 이모라고 표현했습니다. 재소자들이 특정되지 않도록 개개인의 신체적 특징도 변형해서 기술했습니다.)


태그:#여자교도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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