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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봐라.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 집은 없네. 멀리서도 보이는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어두워진 골목길 밤사위를 제치며 말했다. 높낮이가 있는 골목길 초입에 서니 눈 아래로 줄줄이 떼 지은 작은 주택들이 보였다. 엄마 말대로 이 많은 집들 중에 우리 집은 없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무언가를 바란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시골에서 집안 살림만 도우며 곱게 자란 아가씨가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로 시집와 고생하며 산 지 10년쯤 되었을 때였다. 어린 나는 엄마도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우리'집'을 원했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던 집은 내려가는 계단을 열 개쯤 밟아야 현관문에 도착하는, 대낮에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 셋방이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사는 삼 년 동안 무릎이 모두 망가졌다고 자주 한탄하신다.

물 한 번 기르려면 계단 열 개, 쌀 한 번 씻으려 해도 계단 열 개, '아! 이러다 내가 말년에 고생하지.' 그 기억이 너무 싫어서 엄마는 지금도 지하 이야기만 나오면 결사반대를 먼저 외치고 보신다. 요즘은 1층 같은 반지하도 많은데 무조건 싫다고만 하신다.

열 계단 밑 지하 셋방, 그 집의 그 계단 탓인지 엄마의 무릎은 오십이 되기도 전에 이미 그 기능을 다 했다. 의사가 무릎 수술을 하기에는 나이가 젊으니 벌써 수술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는 통증이 심할 때만 잠깐씩 약을 지어다 먹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쉰의 보릿고개에 이르러서는 관절약을 달고 살게 되었다. 약을 하루도 거를 수 없을 만큼 엄마는 아팠다.

엄마의 무릎 사정이 나날이 나빠져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지금 사는 집은 좋은 집주인을 만나 오랫동안 신세 진 2층 단칸방이다. 햇빛도 참 잘 들어오는 좋은 집이지만 오래된 건물이라 위풍이 심하고 문턱도 높아 걸을 때 신경 써야 하는 곳이다. 평소에 그것을 불편하다 생각한 적 없었는데 엄마의 무릎 수술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집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힘든 집이 필요하다.

집을 살 여력은 없어 가능하다면 전세로 문턱이 낮고, 엄마가 혼자 계실 때 이동이 불편하지 않을 그런 집을 원하게 되었다. 목적과 목표는 투명하지만 반대로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현실적인 금전 문제가 부담스러웠고, 지금 사는 집보다 좋은 집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 익숙한 동네에서 멀어지겠다는 아쉬움,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 지금보다 더 서울의 외곽으로 나가면 출퇴근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어렵고 심란했다. 걱정이 앞섰지만 이사를 가야 한다는 건 분명했다.

언니가 아는 사람에게 부동산을 소개받아 먼저 집 구하기에 나서기로 했다. 부동산에 가기 전에 언니는 엄마와 나에게 어떤 집을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지하도 상관없다. 지금보다 엄마가 생활하기 편한 넓은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는 지하는 싫다고 하셨다. 지하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습기도 문제고, 내 아토피도 문제라고 하셨다. 나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들어가는 곳도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는 다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인데 매일 환승하면 피곤해서 어떡하냐고,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십 분 이내가 좋다고 하셨다. 끝에는 '엄마가 무릎이 아파 걸음 속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지하철이 닿는다면 경기도나 인천은 어떠냐고 물으니 이번에는 교통비가 비싸서 싫다고 하셨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가 공주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돈에 맞춰서 이사 가려면 모든 조건에 충족하는 집을 구할 수가 없다. 엄마가 원하는 집은 우리집 벌이로는 현재 갈 수 없는 환상의 집이었다. 역세권 십 분 거리, 방은 두, 세 칸에, 부엌도 좀 넓고, 채광이 좋은 층수는 2, 3층인 집. 갈 수는 있겠지만 세 가족 중 한 사람의 월급이 월세로 모두 소비될 수준이었다. 무언가 한 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데 엄마가 원하는 집은 모든 걸 갖춘 집이었다. 다만, 그 집에 살 능력이 우리에게 없을 뿐이다.

직장생활을 12년씩 한 언니와 나는 그동안 우리가 번 돈이 얼마나 적은 돈인지 이사를 준비하면서 알았다. 술, 도박도 안 하고, 명품브랜드 하나 없고, 어디 주식투자를 했다가 날린 적도 없는데 통장 잔고가 많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5년간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은 수준의 돈이 전부였다. 먹고, 자고, 생활하고, 학원비 약간 썼을 뿐인데 모인 돈이 그랬다. 언니와 나는 낭비한 적 없지만 많지 않은 그 돈으로 새로운 집을 알아보고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말씀하셨던 그런 집, 지하가 아니고 멀리서도 보이는 우리 집을 찾고 싶다. 엄마가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태그:#방구하기, #지하셋방, #이사, #이사문제, #내집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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