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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 택시 택시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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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네 살, 열 살인 두 아이와 택시를 탔지요. 부산한 아이들과 택시를 탈 때면 엄마는 불안합니다. 특히 네 살인 딸은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신기해 자꾸 움직이려고 하지요. 그럴 때마다 제 입에서 아이 이름이 나옵니다. 이날도 몇 번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데 택시 기사님이 묻습니다.

"아이 이름이 어떻게 돼요?"

기사님이 야단을 치려고 하나 걱정하면서 이름을 알려드렸더니 "제 손녀딸 이름이랑 같네요" 하며 택시 앞에 놓인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신기하다고 하시네요. 얼마 전에도 한 아이와 엄마가 택시를 탔는데 그 아이는 이름은 물론 성까지도 손녀딸과 같았다고 합니다. 며칠 뒤 또 다른 손님이 탔는데 얘기를 나누다가 그 손님이 며칠 전에 탔던 모녀와 아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세상 좁다는 말이 바로 다가오더군요.

자연스럽게 기사님과 대화가 이어집니다. "택시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인연이 많이 생겨요"라던 기사님이 한 고등학생과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더군요. 작년 1월,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고등학생을 태워주셨대요. 안양에 있는 할아버지댁에 왔다가 분당에 있는 집으로 가는 고등학생이었다고 해요.

택시를 타고 가다가 그 학생이 "아저씨, 매주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었다는군요. 부모님과 매주 일요일 할아버지댁에 오는데 부모님은 저녁 때까지 있다가 오고 자기는 학원에 가야 해서 점심만 먹고 나온 다네요. 그런데 택시마다 부르는 요금이 달랐다는 겁니다.

미터기를 켜고 가는 기사님이 미더웠던지 학생이 먼저 제안했고, 기사님은 일요일 낮에는 손님이 별로 없으니 "그러마" 하고 약조하셨대요. 그렇게 맺은 인연이 벌써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신호대기 시간에 기사님이 핸드폰을 스르륵 넘기면서 보여주시네요.

'아저씨, 오늘은 00시까지 와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

대화창에는 서로 약속을 정하는 대화가 죽이어져 있더군요.

"그동안 약속시간을 5분 이상 넘긴 적이 없어요. 손님이 없으면 아예 10분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지."

도가니탕만큼이나 따뜻한 두 사람의 우정

아이스크림
▲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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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약속이 1년 넘게 지켜지고 있나 놀라웠는데 기사님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도 한몫했겠네요. "매주 만나다 보니 이제 꽤 친해졌어요"라고 자랑도 하십니다. 언젠가는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 사온 옥수수를 두 개 챙겨서 나오셨대요. 학생과 둘이서 먹으려고요.

"아저씨, 여행 다녀오셨어요?"
"그래, 가족들하고 강원도에 다녀왔다."

옥수수 알맹이를 털어내면서 둘이 나눈 대화가 그대로 들리는 듯했습니다. 여름날엔 "너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하나 사와라" 해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물고 도로를 달렸다고도 해요. 기사님께 만날 얻어먹기 미안했던지 하루는 그 학생이 그러더래요.

"아저씨, 저 밥을 못 먹었어요. 햄버거 가게 앞에서 잠깐 세워주세요. 아저씨도 햄버거 하나 드실래요?"
"그래, 대신에 과일주스는 내가 살게."

그렇게 해서 햄버거를 같이 먹으면서 가기도 했다는군요. 매주 만나다가 올해 1월엔 아저씨가 먼저 톡을 남기셨대요.

'학생, 내일 1시간 먼저 나올 수 있어?'
'왜요?'
'우리 1년 된 날이어서 아저씨가 밥 한 번 사주려고.'
'네, 좋아요.'

고등학생이니까 돈가스를 사주고 싶었는데 점심시간에 붐빌 것 같아서 도가니탕을 사주셨다고 해요. 학생은 태어나서 도가니탕을 처음 먹어봤다는데 그 친구에겐 참 뜻깊은 도가니탕이 되었겠죠?

그 학생이 올해 고3이래요. 고3이지만 시 경계를 넘어서 매주 할아버지댁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도 남다른데 할아버지뻘 되는 기사님께 살갑게 대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본 적도 없는 그 친구가 참 예쁘게 느껴지더군요.

친구가 새벽까지 공부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사님이 "그렇게 고생해서 어떻게 하냐. 아저씨가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네가 시간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하자 "아저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 대학시험 보고 밥 사 주세요" 했답니다. 그 학생도 토요일이 되면 기사님을 생각할까요? 지난 주말, 기사님은 설레는 표정으로 말씀하셨거든요.

"내일이 벌써 일요일이네. 약속이 있으니까 1주일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아요."

몇 달 뒤 찬바람 부는 겨울 어느 날, 초로에 이른 기사님과 이제 막 대학 입시를 끝낸 그 학생이 또다시 도가니탕 집에 앉아 있을 모습이 그려집니다. 따뜻한 사발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2년 동안 이어진 인연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 좋게 회포를 풀고 있겠죠? 그때는 아직 서로 이름도 모른다는 두 사람이 통성명할지도 모르겠네요.


태그:#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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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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