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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간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 맥간에 머무는 엿새 동안 맥없이 베란다에 나와 독수리의 비행을 지켜보았다.
 맥간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 맥간에 머무는 엿새 동안 맥없이 베란다에 나와 독수리의 비행을 지켜보았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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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에 묵고 있는 이탈리아 사내는 여전히 '오 솔레미오'를 목청껏 불러대며 숙소 자물쇠에 집착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도 자물쇠를 채워놓고 다닌다. 인도를 십 수 차례 오고갔다는 그가 언젠가 방문을 열고 다니다가 호되게 당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리 사내가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대만에서 왔다는 비구니 스님이 붉은 핫팬츠 차림으로 베란다에 올라와 오락가락한다. 아래층 숙소에 머물고 있는 그녀는 내가 머물고 있는 전망 좋은 3층 베란다에 올라와 손전화기에 넋을 놓고 있다가 이따금씩 그 어떤 영상물에 취해 호탕한 남성처럼 껄껄 웃곤 했다.

아는 사람들 숙소를 기웃거리며 오락가락하는 대만 비구니 스님처럼 맥간의 날씨도 오락가락했다. 내리다 그치다 햇볕 쨍쨍하기를 반복하는 빗줄기처럼. 내 마음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맥간에서 닷새를 보내며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이나 건성건성 메모해 놓은 잡문들을 노트북에 정리하는 것도 싫증이 나기 시작해 틈만 나면 베란다로 기어 나왔다. 맥간 하늘을 기세 좋게 날아다니는 독수리에 넋 놓고 바라보다가 '어디로 가야 하지...'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곳이 어느 곳인지는 정해놓지 않았지만 어디론가는 떠나야 할 것 같은데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몸 상태는 어떠셔?"

때마침 다람살라에서 오랫동안 티베트 불교 공부를 했던 막내 동생으로부터 건강상태를 묻는 문자가 날아왔다. 티베트 승려, 라마승이기도 한 그는 내 심정을 알아차리고 '초빼마'라는 곳을 찾아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초빼마라는 곳은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파드마 삼바바의 수행처, 동굴이 있다는데 동생 말로는 그 지역이 엄청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그렇잖아도 여행 중에 형편없이 망가진 몸이 회복되면 히말라야 어딘가의 동굴에서 며칠을 보내고자 작정했었다.

티베트 승려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장난기 많은 미얀마 스님이 실실 웃어가며 슬금슬금 다가와 내 앞에 호두를 내밀었다. 덩치가 큰 긴 머리의 한국인 수행자가 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잠시 기다려 보라며 서류가방처럼 생긴 검은 가방 하나를 꺼내온다.

"신도 분께서 선물로 준 것인데 내게는 맞지 않는 거 같습니다. 당신에게 선물할게요."
"고맙지만 저도 짐을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그 가방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선물하세요. 그런데 스님 혹시 초빼마라는 곳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거기가 어디죠?"
"성자, 파드마 삼바바가 머물렀다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파드마 삼바바는 티베트 불교 창시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에 그 성자가 수행했던 동굴이 있다더군요. 함께 갈래요?"
"나는 여기서 공부해야 합니다."

티베트 사원을 찾아다니며 잡일을 하고 있다는 라다크 출신, 쿤가.
 티베트 사원을 찾아다니며 잡일을 하고 있다는 라다크 출신, 쿤가.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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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카르마에 대해 부정하는 것입니까"

매일 저녁 베란다로 올라와 서양 젊은이들과 이런저런 대화 나누기를 즐기고 있는 쿤가라는 중년 사내가 떠올랐다. 인도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티베트 사원에서 잡부로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를 통해 유명해진 라다크 출신의 티베트 사람이었다.

오후가 되자 일찌감치 하루 일을 마쳤다는 쿤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토론을 좋아하는 영국 청년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영국청년은 동화작가를 꿈꾸는 미국청년과도 종종 언쟁을 벌였다. 그는 주로 전 세계를 감시하고 있다는 미국의 첩보기관, CIA의 음모론에 대해 얘기했다.

이곳 게스트하우스의 동서양 청년들은 저녁 무렵이면 베란다에 모여 종종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며 세계 평화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대부분 토론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고 세계 분쟁지역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은 그들의 공공의 적이 되곤 했다.

쿤가는 잡부였지만 영어 실력이 거침없었다. 영국청년과 카르마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쿤가와 영국청년의 대화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쿤가: 당신은 카르마에 대해 부정하는 것입니까.
영국청년: 카르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쿤가: 당신은 어디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합니까?
영국청년: 엄마의 뱃속에서 왔습니다.
쿤가: 그렇다면 당신의 엄마는 어디서 왔습니까?
영국청년: 엄마의 엄마, 할머니에서 왔습니다.

쿤가: 그게 바로 카르마인 것입니다.
영국청년: 그건 카르마가 아니라 유전에 의한 것입니다.
쿤가: 당신의 머릿속은 온통 콘크리트로 가득 차 있군요.
영국청년: 당신이야 말로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쿤가: 당신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내 말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머릿속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지, 그게 바로 당신의 카르마입니다.

쿤가는 영국청년의 얼굴빛이 울그락불그락 해지거나 말거나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에 피식피식 웃고 있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쿤가, 당신은 초빼마, 파드마 삼바바의 동굴 수행처를 아십니까?"
"당신이 그곳을 어떻게 알죠? 나는 그곳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지역의 사원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일한 적이 있습니다."

영국청년 말처럼 쿤가는 예수와 붓다는 에일리언, 외계인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파드마 삼바바 역시 외계행성에서 온 성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쿤가는 내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 줬다. 초빼마는 티베트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고 인도 지역명은 리벌샤라는 것이었다.

"초빼마라는 지역명은 인도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버스를 탈 때 리벌샤 간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는 초빼마, 리벌샤로 가는 버스 타는 장소며 그곳의 어느 숙소가 전망이 좋고 저렴한지를 상세하게 알려줬다. 하루 숙비가 150~200루피에 불과한 방이 있다는 모노 스피릿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지 못하면 자신에게 즉시 전화하라며 전화번호까지 적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쿤가는 잠시 기다리라며 자신의 숙소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술병을 가져왔다. 그를 만난 지 사흘에 불과했지만 50세라는 그는 내게 거침없이 '부라더'라고 불렀다. 그는 내게 술잔을 건네며 나의 어설픈 영어를 귀담아 들었고 자신들이 살아온 얘기를 내가 알아들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영어로 늘어놓았다.

쿤가의 가족사, 만주벌판을 헤맨 조선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가족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만주벌판을 헤매야 했던 조선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그의 가족은 중국의 티베트 침공 당시 라다크로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라다크에서 인도 군인으로 복무했는데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와 이혼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하여 여전히 라다크에 살고 있고 어머니 또한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남인도 고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열 댓 살 무렵 어머니를 따라 남인도에서 살았는데 새 아버지가 심하게 괴롭혀 일찌감치 도망쳐 나와 인도 각처에서 정착하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의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주로 사원에서 잡부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지금 가족들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형제자매들 중에 두 누이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아버지가 재혼해서 태어난 배다른 두 동생들은 라다크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갑자기 입을 쩍 벌려 틀니를 꺼내 보였다. 한창 젊은 청춘이었을 때 권투를 했는데 그때 상대의 팔꿈치에 맞아 앞니가 왕창 나갔다며 기괴하게 웃어 젖혔다. 텅 빈 앞니로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는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망명객, 티베트 사람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런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 모두가 수행자의 삶을 살아야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 말했던 그가 술기운이 오르자 기괴한 표정으로 영국의 팝가수 에릭클랩튼의 노래, 'Tears In Heaven'를 기타 치는 흉내를 내가며 나름 감미로운 톤으로 불러 젖혔다.

힌두교인 이면서 티베트 불교 창시자를 추앙한다는 인도 청년
 힌두교인 이면서 티베트 불교 창시자를 추앙한다는 인도 청년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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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가와 노래를 불러가며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머리를 삭발한 인도 청년이 끼어들었다. 모히칸 족처럼 생긴 그는 힌두교를 믿고 있지만 티베트 불교의 창시자인 파드마 삼바바를 추앙한다는 것이었다. 파드마 삼바바는 인도 사람이며 그의 사상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나는 그의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나도 파드마 삼바바의 동굴수행처가 궁금합니다. 함께 갑시다."
"당신은 언제 떠날 수 있나요?"
"사나흘 후쯤에요."
"나는 내일쯤 떠날 예정입니다. 맥간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파드마 삼바바에 대한 정보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세하게 기록한 '티벳 사자의 서'의 저자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티베트 사람들로부터 성자로 불리는 파드마 삼바바의 수행처, 초빼마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언가에 구속된다면 아이들에게 대물림해줄 것이다

다음날 이른 아침 배낭을 꾸렸다. 배낭을 챙겨 베란다로 나와 늘 그래왔듯이 독수리들의 비행에 눈을 맞췄다. 숙소 옆 건물의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녀석이다. 녀석이 작별 인사를 하겠다는 듯이 바로 앞에서 멋지게 비행을 한다. 내가 사진기를 꺼내 들자 나 보란 듯 저만치로 멀리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눈앞에서 2미터 쯤 돼 보이는 그 거대한 날개를 펼쳐 보였다.

맥간을 떠나던 날, 독수리 한 마리가 눈 앞에서 2미터 쯤 돼 보이는 그 거대한 날개를 펼쳐 보였다.
 맥간을 떠나던 날, 독수리 한 마리가 눈 앞에서 2미터 쯤 돼 보이는 그 거대한 날개를 펼쳐 보였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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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의 날갯짓은 묵언 수행자처럼 요란스럽지 않다.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상승 기류를 타고 몇 차례의 날갯짓으로도 드높은 하늘로 오를 수 있다. 이곳 숙소에서 머무는 내내 할 일없이 베란다를 오락가락해가며 지켜본 결과 저들의 비행은 단지 썩은 먹이를 찾기 위한 비행만은 아니었다. 때론 암수 한 쌍의 자유로운 비행에서 그 어떤 유희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때론 날갯짓이 서툰 새끼들을 인도하는 비행이기도 했다.

독수리의 비행을 보고 있자면 날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관속 같은 공간에서 빠져나와 드높은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달고 싶어진다. 저들만의 알 수 없는 비행을 따라나서고 싶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맨 몸, 단지 날개 하나로 가볍게 멀리 멀리 더 멀리 날고 싶어진다.

하지만 날기 위해서는 안락한 둥지를 벗어나야 한다. 안락한 둥지에서 벗어난 새끼들의 비행이 그렇듯이 인도를 떠돌고 있는 나 또한 가족이라는 안락한 둥지를 벗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년이 된 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가 안락한 둥지를 떠나 자유로운 비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안락한 둥지를 버리고 고행 길을 나선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왕국의 왕자로서 차고 넘치는 물욕의 삶을 즐겨 보았기에 남루한 옷으로 혼연 단신 떠돌 수 있었을 것이다. 물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뼈 속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온갖 치장물로 거드름 피우고 살아가는 왕국의 삶이 얼마나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삶인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왕국의 사대문 밖에서 생로병사를 보았다면 성안에서는 위선과 욕망의 망토를 휘감고 살아가는 거짓된 삶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 탐욕스런 욕망의 화신들을 신물 나게 경험했을 것이다.

싯다르타 자신 또한 그 욕망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그 욕망에 안주했다면 결코 생로병사의 고통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애초에 찾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안락한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다. 스무 살, 성년이 된 나의 두 아들 또한 내 곁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나 또한 가족이라는 둥지를 벗어나 떠나야 할 시간이다. 결혼과 함께 나는 모든 시간을 가족을 위해 보냈다. 아이들은 늘 내 품에 있었다. 녀석들과 늘 한자리 한 시간 한 공간에서 생활했다. 잠잘 때도 함께 했다. 평생 함께할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

아기 때는 내 배위에서 놀았고 걷기시작하면서 산과 들을 함께 다녔다. 여행과 영화를 함께 보았다. 컴퓨터 앞에서 신경전을 벌여가며 놀았다. 이제 나는 젊은 시절 수행자의 길을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가야할 시간이다.

50대 중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다. 잘 죽어야 한다. 남은 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가며 추접하게 살다가 죽느냐 아니면 내 자식들에게 자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는 삶을 살다가 죽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내가 무엇인가에 구속된 삶을 살아간다면 나는 그 구속된 삶을 아이들에게 대물림 해줄 것이다.

붓다는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뜻이 맞지 않으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했다. 삶의 방식과 뜻이 맞지 않아 이혼을 요구하는 아이들 엄마의 길은 따로 있다. 안락한 삶과 가족을 등지고 비루한 옷 한 벌로 고행 길을 나섰던 싯다르타가 그러했듯이 혼자서 간다는 것은 다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수행자의 길이 그렇듯이 한 사람, 한 가족에 집착을 하게 되면 다 함께 갈 수 없다. 혼자서 간다는 것은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날 파드마 삼바바가 머물렀다는 초빼마, 리벌샤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나는 마치 수행자가 된 기분으로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태그:#독수리, #티베트인 쿤가, #초빼마, #파드마 삼바바, #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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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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