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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은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이자, 송파 세 모녀의 3주기 추모제를 진행한 날입니다. 빈곤사회연대에서는 박근혜 정권 4년간 송파 세 모녀와 같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죽음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3주간 3회에 걸쳐 연재했습니다. 본 글은 그 중 마지막 글입니다. 첫 번째 글 '엄마와 통화했다고 수급비 20만 원 깎은 정부'에서는 가장 많은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부양의무자기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두 번째 글 '자식 있으면 빈곤층 지원 불가? 국가는 왜 있나요'에서는 사각지대를 발굴해도 제도상의 문제로 빈곤층에게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회복지전담 공무원과 사회복지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기자말

한 사람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

70대의 한 노인에게는 얼굴 본 지 오래 된 일곱 명의 자식이 있다.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잘 모르지만 노인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를 포기했다. '가족관계 단절'을 인정받아 어렵게 수급자가 되더라도 구청에서 자식들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20만원의 기초연금만으로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팍팍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이런 연락이 가서 서로 자존심을 구기는 것은 싫다고 말한다.

심각한 노인 빈곤의 상황에서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을 받지도 못하고, 실제 부양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초연금 20만원이 노인 빈곤을 상당히 해결했다지만, 여전히 소득이 0에 가까운 사람들에 20만원은 '죽지 않을 만큼'의 돈에 불과하다.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면 이 노인은 수급자가 될 수 있다. 몸의 왼편이 마비된 그는 의료급여로 병원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50%의 노인 빈곤율을 낮추지 않는다면, 이 사회의 모두는 50%의 확률로 가난한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미래의 문제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당신도 부양의무자가 될 수 있다

수급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은 부양의무의 족쇄를 차고 사회에 나온다
 수급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은 부양의무의 족쇄를 차고 사회에 나온다
ⓒ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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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이 된 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가정에서 자란 청년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 청년들은 사회 진출과 동시에 부양의무자라는 족쇄에 묶인다. 누구라도 가난에 빠지면 그들의 '1촌 내 직계혈족 및 배우자'는 부양의무자가 된다. 자녀가 3명이라면 최소한 3명, 배우자가 있다면 최대 6명의 부양의무자가 생길 것이다.

이혼 가정도 부양의무자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혼 시 배우자는 가족이 더 이상 아니지만, 자녀가 있다면 이혼을 했어도, 양육권을 포기했어도 부양의무자기준은 남기 때문이다. 자녀의 1촌 내 혈족인 전 남편, 혹은 부인은 여전히 이 가구의 부양의무자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 사는 누구나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약속해줘, 부양의무제 폐지!

지난 2월,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복지 1호 과제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10조의 추가 예산으로 부양의무자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것이 계획이다. 정의당은 애초에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었기에 심상정 후보도 약속했다. 뒤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경선후보 이재명 성남시장도 약속했다. 그러나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후보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은 모든 대선후보에게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공약하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17년간 풀지 못한 문제, 매년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의 절망과 죽음으로 밀어 넣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자는 취지다. 대선후보에게 엽서쓰기 운동을 비롯해 온라인 서명운동, '인증샷' 찍기 등을 진행 중이다.

엄마와 약속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17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다. 장애를 가진 엄마와 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수급을 받고 있어 그녀는 이제 '부양의무자'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조은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원한다.

가족들과 결별하기 위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잘 살기 위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로를 짐으로 생각하게 하는 악법을 이제는 폐지하자. 지금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가난을 덜 두려워 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한 첫 단계다.

지난 3월 3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이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진행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기자회견에서 당사자 발언중인 조은별씨.
 지난 3월 3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이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진행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기자회견에서 당사자 발언중인 조은별씨.
ⓒ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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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은별입니다. 이제 막 3월, 첫 월급을 받고 수급자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저는 부양의무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에 첫 발 나온 나, 조은별에게 국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부양비를 뜯어간 것입니다. 한 달 월급에서 중위소득을 넘는 금액의 15퍼센트를 부양비로 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만큼 가족의 수급비에서 부양비로 책정된 금액이 삭감될 거라고요. 

지금은 사회 초년생이어서 15퍼센트만 떼어 가지만, 3년이 지나면 30퍼센트를 떼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 가족과 사는 집을 나가 새로운 집을 따로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수급에서 아예 탈락할 것입니다. 법이 그렇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의 가족들이 받게 될 수급비는 77만원. 학생인 동생과 장애가 있는 엄마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소득입니다. 하지만 나는 가족에게 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단돈 몇 십 만원이라도 가족에게 돈을 주는 걸 국가가 알면 그만큼 또 수급비를 덜 주니까요.

그간 수급자로 살면서 국가가 시키는 건 다 했습니다. 학기마다 꼬박꼬박 재학증명서를 갖다내고, 아르바이트 몰래 하다 소득신고가 되어서 수급비가 삭감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각서도 썼습니다.

내 통장 기록을 보고, 잔액을 조회하고, 끊임없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국가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니, 이제는 부양의무자라고 합니다. 나보고 가족을 책임지라고 합니다. 

엄마는 수급비가 적게 나오게 되어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수급비가 110만 원 가량에서 77만원으로 줄어드니 막막했겠죠. 3인가구로 110만원 받을 때도 돈이 너무 쥐꼬리 같아 용돈 달라고 차마 말을 못하고 소득이 안 잡히는 일만 골라했습니다. 이제 서야 이런 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건데, 나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준 국가가 너무 싫습니다.

나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습니다. 나 조은별은, 가난을 책임져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내 어깨가 무거워 죽기 전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제껏 국가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엄마와 꼭 약속했습니다. 부양의무제를 폐지시켜서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제는 내가 살고 싶은 내 인생을, 그리고 엄마의 인생을, 동생의 인생을,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태그:#빈곤, #사각지대, #부양의무자기준, #기초생활보장제도,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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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쟁을 강요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한시적 원조나 시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해지지 않을 권리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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