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걷는 종분와 영애.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눈길을 걷는 종분와 영애.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CGV아트하우스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입니다. 위안부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와 고통은 계속됩니다. 세상은 봄이 찾아왔지만, 그들의 봄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영화 <눈길>은 위안부 시절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온 종분의 삶을 그린 버디 무비입니다. 영화는 플래시 백을 통해 과거 위안부의 고통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영화는 동시에 현재에 일어나는 종분의 플롯에도 상당 시간 할애하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종분이 대화하는 상대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 우리이기도 한 거죠. 그리고 그 중심에 '친구 맺기' 플롯이 있습니다. 영화는 종분이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과정을 통해 과거 상흔을.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를 동시에 꼬집습니다.

신분도 배움도 다르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종분'과 '영애'는 친구가 됩니다. 한동네에 살지만 서로 다른 배경을 지녀 평생 다른 경로로 살아갈 것 같은 둘이, 어두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하나의 삶의 경로로 수렴된 것입니다. 위안부로 끌려가는 열차에 타게 된 그 둘은 종착지지가 어디로 될지 모른 채 그저 끌려가게 됩니다. 사람대접은커녕 전쟁 도구로서 쓰인 것이죠.

 어려운 때에 둘은 만나서 친구가 된다.

어려운 때에 둘은 만나서 친구가 된다. ⓒ CGV아트하우스


그녀들이 도착한 곳에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위안부의 삶을 그려냅니다.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게, 눈살 찌푸리지 않게 위안부의 치욕스런 생황을 묘사합니다. 영화는 그렇습니다. 주제를 던지는 방식도,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도 절대 직선적이지 않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로하는 화자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감정의 밀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문제의식 역시 날카롭습니다. 자극적인 단어나 상황이 없음에도 우리는 충분히 소녀들이 느꼈을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전달받습니다.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그녀들이 꿈많은 소녀들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됩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일제 치하에서 종분과 영애의 '친구 맺기' 과정이었다면, 현재의 플롯은 종분과 은수의 '친구 맺기' 과정입니다. 은수는 종분의 반지하 집 옆에 몰래 사는 가출 소녀입니다. 어린 은수와 늙은 종분이 친구가 된다는 사실이 현실적이지 않지만, 영화는 최대한 현실을 토대로 그들의 우정을 그려냅니다. 특히나 나이까지도 초월하는 종분의 '친구 맺기'를 통해 영화는 우리 사회의 곪고 곪은 문제를 말합니다. 위안부라는 역사적 상흔을 공유하는 공동체이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어디선가 미성년자에 대한 성매매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한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한다. ⓒ CGV아트하우스


<눈길>은 이 지점을 간접적으로 극 속에 끌어들입니다. 매일 종분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영애라는 친구와의 대화뿐 아니라, 옆집에 사는 가출 소녀 은수와의 친구 맺기를 통해 현재와도 대화입니다. 직선적 비유이지만 위안부의 아픔을 피의자 일본 탓으로만 돌리고 우리의 문제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사회가 은수를 따가운 시선으로 문제아 취급할 때, 그녀를 다잡고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종분입니다. 은수 주변에 존재했던 수많은 어른 중, 정말 어른 역할을 제대로 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같은 피해자인 종분입니다. 그 시절 어린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어른과 정부는 여전히 비슷한 상황에 있는 어린 소녀들을 내버려 두고 있는 셈입니다.

영화 <눈길>은 위안부를 다룬다는 점에서 <귀향>이, 일제 치하 젊은이들의 삶을 은유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동주>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눈길>은 두 영화보다 이전인 2015년 이미 드라마로 KBS에서 방영된 영상을 영화로 재편집한 작품입니다. 역사적 호출을 받지 못한 채 과거를 부끄럽게 살아야 했던 위안부의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은 물론 여전히 이어지는 우리의 이중잣대까지 주제를 확대한 <눈길>은 개봉 7일이 지난 지금 10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여전히 눈길을 걷고 있는 그들에게 언제쯤 봄이 찾아올까요? 마지막 꽃샘추위가 한참인 지금 그들에게도 어서 빨리 봄 햇살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눈길> 포스터.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더 많은 관객이 모이면, 이 겨울이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영화 <눈길> 포스터.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더 많은 관객이 모이면, 이 겨울이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 CGV아트하우스



눈길 김새론 김향기 이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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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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