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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신호등은 사람들에게 건널 타이밍과 멈춰 설 타이밍을 알려준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그저 길을 건널 뿐 신호등 속 보행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아왔다.

분명 실루엣이 남성 화장실 앞에 붙어있는 그것과 동일한 형체이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또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의문을 던진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각) BBC 뉴스에 따르면 호주에서 성평등 캠페인의 일환으로 치마를 입은 보행자가 등장했다. 여성의 날을 앞두고 멜버른 시내에 '여성 신호등' 10개가 시범 설치가 된 것이다.

이 캠페인을 주최한 시민단체 측은 이 시범 프로그램을 "무의식적 편향 줄이기" 차원에서 계획했다는 입장이다. 멜버른시의 신호등이 궁극적으로는 남녀 동수로 묘사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이 시민단체의 책임자 마틴 렛츠는 "무의식적인 편향은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일상에서의 결정과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현지 반응은 어떨까?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멜버른의 신호등 시범 설치를 보도하는 BBC.
 멜버른의 신호등 시범 설치를 보도하는 BBC.

BBC에 따르면 멜버른 시장 로버트 도일은 "저는 우리가 성평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만, 불행하게도 이런 식의 비용이 드는 방식은 비웃음을 살 것도 같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SNS에서는 "'치마를 입지 않은 사람'이 왜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누가 저걸 작은 초록색 남자라고 말한 적 있나? 바지를 입은 작은 여성일지도 모르는데" 등 부정적인 반응이 존재한다.

반면에 호주 여성부 장관인 피오나 리차드슨은,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배제되는 방법에는 작지만 상징적으로 중요한 방식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이것(여성 신호등)은 공공장소가 여성을 보다 포용하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캠페인 주최 측도 비용 문제 역시 새로운 여성 신호등 도입을 오래된 신호등 교체 주기와 맞춰서 운용하면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NS 한편에서도 "사랑하는 멜버른! 여성 신호등은 무의식적인 편향을 줄일 수 있을 거야" "제스처 정치라고? 그게 뭐 어때서? 멜버른으로 가자! 유쾌한 페미니스트들이여" 등 옹호적인 반응이 있다.

세상에는 의외로 여성이 인류의 절반임에도 남성을 인간의 기본값처럼 인식하는 경향들이 부지불식간에 많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대중 매체는 긍정적인 사건이든 부정적인 사건이든 모종의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중 똑같이 남녀가 있더라도, 남성은 '○○남'이라 분별하는 경우가 드물고 여성만을 부각시켜 '○○녀'라 부르는 경우가 더 잦다.

이것은 분명 나쁜 버릇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여성 신호등 도입처럼 일상으로 확대되는 무의식적 편향 줄이기 운동은 과연, 여성을 당연하게 '한 인간'으로 인식하는 사회를 앞당길 수 있을까. 판단은 언제나 그렇듯 독자들께 맡긴다.


태그:#여성의 날, #신호등, #페미니즘, #호주,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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