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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8일,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합의를 발표한 지 1년째 되던 날,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와 설치 장소를 두고 갈등을 겪었던 부산 동구청은 소녀상이 불법 적치물이라며 강제로 철거했다.

동구청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동구청은 12월 30일 의사를 번복하고 소녀상 설치를 허용했다. 12월 31일 제막식을 치른 후 시민단체 '부산겨레하나'의 회원들이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소녀상 지키고 소녀상 앞을 지나가는 부산 시민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과 음식이 가득하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과 음식이 가득하다.
ⓒ 민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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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시간 소녀상을 지키는 청년

지난 1일 현장을 찾았다. 일본 방송국 <TV 도쿄>가 소녀상 문제를 취재 중이었다. 일본에서도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TV 도쿄>와 인터뷰하던 이는 대학생 김성갑(24·부산대 기계공학)씨다. 소녀상 설립 직전 '겨레하나' 일을 시작한 김씨는 소녀상 설치 과정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지킴이로 활동하게 됐다.

김씨는 "일본이 사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녀상을 세운 것"이라며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경제적 타격보다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앞서야 한다"고 전했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시민들을 보면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모습에 울컥한다"며 지킴이 활동 소감을 밝혔다. '겨레하나'의 회원들은 평일과 주말 오후 2∼3시간씩 순번을 정해 소녀상을 보호하며 주변 청소와 정리를 도맡는다. 소녀상의 의미와 건립 과정도 자세히 설명해 준다.

김성갑 씨가 소녀상을 찾아온 시민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순간과 일본 매체의 인터뷰에 응하며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모습.
 김성갑 씨가 소녀상을 찾아온 시민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순간과 일본 매체의 인터뷰에 응하며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모습.
ⓒ 민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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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어서 나온 거죠"

지킴이 활동은 특정 단체 활동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반 시민도 한몫 거든다. 대연동에 거주하는 주민 김상금(68)씨가 그렇다.

김씨는 오전 10시에 나와 오후 3~4시경까지 소녀상과 시간을 보낸다. 이후 '겨레하나' 지킴이 학생들에게 바통을 넘긴다. 아버지로부터 일제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는 김씨. 시민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려주고 또,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어 활동을 시작했다고 들려준다.

김상금 씨는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 소녀상 앞에 나와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김상금 씨는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 소녀상 앞에 나와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 민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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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을 용서한다"는 철거주장 시민도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한 남성이 소녀상 옆 승강기 벽면에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부착물을 며칠째 붙인다. '반일감정 선동 그만', '대한민국은 일본을 용서한다', '일본을 사랑하라' 등의 내용이다. 경찰이 제지하자 "왜 이거(소녀상을 응원하는 메모)는 놔두고 내 것만 떼어내냐"며 불만을 표현한다. '겨레하나' 측은 이 남성의 행동에 대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남성이 소녀상 옆 승강기 벽면에 소녀상을 반대하는 게시물을 붙이고 있다.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남성이 소녀상 옆 승강기 벽면에 소녀상을 반대하는 게시물을 붙이고 있다.
ⓒ 민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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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찾는 시민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녀상을 마음속에 품는다. 태블릿 PC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글자를 띄워 기념사진을 찍은 한 청년은 일본 총영사관을 향해 "아베 보고 있나?"를 외치며 자리를 떴다. 소녀상 앞에서 신도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는 수녀님도 눈에 띈다.

여러 시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녀상을 마주하고 있다. ⓒ 민수아
 여러 시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녀상을 마주하고 있다. ⓒ 민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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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도 이곳에 들린다. 1인 피켓 시위를 벌이던 키무라 리에(46)씨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부를 용서할 수 없다'는 메시지의 피켓을 들고 소녀상 곁에 섰다.

키무라 리에 씨가 지나가던 일본인 관광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키무라 리에 씨가 지나가던 일본인 관광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민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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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 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센다이에 거주하다가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 산다. 그녀는 발리에서 축제를 할 때 일본의 만행을 사과하는 내용의 피켓을 한국어나 영어로 만들어 1인 시위를 벌인다. 부산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 리에 씨는 소녀상을 보고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이곳을 방문,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마침 일본인 관광객들이 소녀상을 지나가자 리에 씨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식을 가다듬기도 했다.

리에 씨의 피켓에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리에 씨의 피켓에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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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함이 가장 큰 선물

올해 졸업을 앞둔 대학생 임정균(30)씨. '겨레하나'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됐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에게까지 소녀상의 의미를 전하는 임씨는 "소녀상은 한일문제를 넘어서 민족의 문제"라며 "잔인한 역사의 한 장면을 널리 알리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임정균 씨가 소녀상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소녀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임정균 씨가 소녀상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소녀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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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가 떠난 후 3시부터 5시까지는 김성갑씨와 만덕고등학교 학생 전지환(19)군이 지킴이 활동을 함께 했다. 전군은 동구청으로부터 소녀상을 빼앗겼을 때와 되찾았을 때를 모두 경험한 학생이다. "비록 청소년이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지킴이 활동이 스스로 발전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 와서 지킴이로 활동하니 많은 시민들이 관심이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지환 군이 소녀상을 방문한 시민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전지환 군이 소녀상을 방문한 시민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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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1일에 이어 소녀상을 반대하는 남성이 또다시 찾아와 새로운 게시물을 붙였다. 이 남성의 부착물에는 '불법 설치물 동구청은 철거하라', '동구경찰서는 공평 수사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취재를 나온 방송사에서 이 모습을 카메라로 찍기도 했다. 이 남성은 소녀상 지킴이 활동가가 자신의 정체를 묻자 타고 온 자전거를 다급하게 몰며 자리를 떠났다.

지난 1일 소녀상을 반대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붙인 남성이 3일 다시 찾아와 새로운 게시물을 승강기 벽면에 붙이고 있다.
 지난 1일 소녀상을 반대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붙인 남성이 3일 다시 찾아와 새로운 게시물을 승강기 벽면에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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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가 바라보는 정치인의 소녀상 방문

정치인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 1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3일 오후 이재명 성남 시장이 소녀상을 찾았다. 이 시장은 "소녀상 철거 요구는 명백한 일본의 내정간섭"이라며 "지금처럼 끌려다니는 굴욕적 외교를 해서는 안 된다"며 날을 세웠다.

이재명 성남 시장이 소녀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재명 성남 시장이 소녀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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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하나'의 김성갑씨는 "모든 대선 후보들이 소녀상을 그저 한번 들러보기보다 입장 정확히 밝혔으면 좋겠다"며 "정치인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소녀상의 안식처는 시민이 선택한 장소

소녀상 지킴이들의 하루 활동은 시민들이 소녀상에 두고 간 물건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사관 근처에 한 사무실을 빌려준 시민 덕분에 지킴이들은 물건 정리에 큰 도움을 얻는다. 김성갑 씨는 "지킴이 활동을 소녀상 설치 후 첫 한 달 동안만 할 생각이었지만 여러 시민이 찾아오는 지금 상황을 봤을 때 3월까지 계속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몇 가지 조건에 맞는 단체와 함께 매월 1회 수요집회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겨레하나’ 소녀상 지킴이들이 소녀상 주변을 정리하며 활동을 마무리하고 있다.
 ‘겨레하나’ 소녀상 지킴이들이 소녀상 주변을 정리하며 활동을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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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세운 소녀상의 눈앞에는 영사관의 일장기가 펄럭인다. 시민의 힘으로 세우고 시민이 선택한 이곳이 소녀상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에 함께했던 시민단체들은 주장한다. 1.7톤의 소녀상에는 평화와 인권을 지키려는 부산 시민들의 응원의 무게가 포함되어 있다. 소녀상 지킴이를 자처한 부산 시민들의 열정 덕분에 소녀상은 당분간 영사관 앞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소녀상의 시선에서 바로 보이는 영사관의 일장기.
 소녀상의 시선에서 바로 보이는 영사관의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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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부산, #소녀상, #위안부,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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