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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미터 높이의 커다란 쓰레기통 속으로 사람들은 자진해서 들어갔다. 쓰레기통 안에는 한국에서 보던 혐오스러운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포장된 채 버려진 멀쩡한 상품들이 있었다.
쓰레기통 안에 가득한 포장 음식들
▲ 덤스터 다이빙 쓰레기통 안에 가득한 포장 음식들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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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4명의 현지 사람들과 호주 멜버른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 쓰레기통을 뒤졌다. 주차장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조명도 없었다. 범죄집단에 연루된 건 아니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내내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깔깔대고,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으로 덤스터 다이빙(Dumpster Diving)을 경험한 날이었다.

2년 전, 한국에서 카우치 서핑(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한 무료 숙박 웹사이트)을 통해 사회 활동가 헤이워드를 만났다. 그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의 숲에서 자급자족으로 산다. 여름에는 농사짓고, 열매 채집하며 살겠지만, 겨울에는 음식을 어디서 구하나 궁금했다.

"겨울엔 마트 쓰레기통을 뒤지면 돼. 덤스터 다이빙을 하지."

덤스터 다이빙?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말이었다. 쓰레기통을 뒤진다니. 거지나 노숙자도 안 먹을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는 걸까. 상상할 수도 없는 이상한 일이었다. 

유튜브에 당장 덤스터 다이빙을 검색했다. 관련 동영상이 수없이 많았다. 대형 마트 주차장 구석에 있는 2~3 미터 높이의 커다란 쓰레기통 속으로 사람들은 자진해서 들어갔다. 쓰레기통 안에는 한국에서 보던 혐오스러운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포장된 채 버려진 멀쩡한 상품들이 있었다.

마트에서 버린 물건들이었다. 가격표가 달린 모자, 오물 한점 묻어 있지 않은 시리얼 박스, 10개 중 딱 1개가 깨져 버려진 계란 한 상자 등이 가득했다. 저런 정도의 음식과 상품이면 먹고, 쓸 만해 보였다. 동영상 속 사람들은 마치 아이들이 보물찾기하는 마냥 웃으며 그 순간을 즐겼다.

마트에서 멀쩡한 상품을 버리는 이유

마트에서 꽤 멀쩡한 상품을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는 상품을 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가까워진 상품을 사지 않는다. 먹을 수는 있어도 못생기고 살짝 흠집이 난 야채 역시 상품 가치가 없다. 운송과정 중에 6개들이 맥주 캔 중 하나가 깨지면 그 맥주 팩 전체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공산품도 꽤 많이 버려진다. 공장에서 계속 신제품이 나온다. 소비와 유통의 순환을 위해 물건 상태 여부에 관계없이 오래 팔리지 않는 물건을 버려야만 한다. 경제는 생산과 소비 없이는 돌아가지 않으니, 쓰레기가 생기는 건 중요치 않다.

농부와 노동자가 하루 10시간 이상씩 초과 노동해가며 만든 물건이 돈으로 환원되지 않기에 쓰레기가 된다. 덤스터 다이빙은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제도를 조롱한다. 수동적 소비자가 되어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도, 능동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다양한 방법의 하나다. 유통시스템은 살짝 흠이 난 토마토를 쓰레기라고 규정지어도, 덤스터 다이버(덤스터 다이빙을 하는 사람)는 그 토마토를 맛난 토마토 샐러드로 바꾼다.

덤스터 다이빙은 명확히 따지자면 불법이기 때문에, 보통 가게가 문을 닫은 뒤에 한다. 사람들이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데, 소비하지 않고 물건을 얻으니 대형 마트들은 덤스터 다이빙을 마냥 곱게 보지 않는다. 호주에서는 덤스터 다이빙을 하다 발각된다고 해서 경찰서에 가지는 않지만, 미국에서는 종종 덤스터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한다.

"덤스터 다이빙은 음식 해방 운동"

▲ 덤스트다이빙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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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스터 타이빙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무척 해보고 싶었다. 여행 중에 경비도 줄이고, 친구도 사귀며, 즐거운 경험까지 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기회였다. 구글과 페이스북에 덤스터 다이빙과 가게 될 도시 이름을 혼합해 검색했다.

멜버른 덤스터 다이빙 페이스북 그룹이 한눈에 들어왔다. 멜버른이라면 이미 내가 여행 첫 번째 도시로 계획한 곳이었다. 게시판에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덤스터 다이빙을 해보고 싶다고 글을 남겼다. 총 6명의 사람이 연락을 했다. 관광객이 덤스터 다이빙을 하겠다니. 현지인들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연락 온 사람 중 오즈 알리마와 함께 일을 벌이기로 했다. 37살의 오즈는 요가강사, 커피 사업가, 조경 관리사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다. 3년 전부터 덤스터 다이빙을 했다. 그는 4명의 친구와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의 100평 넓이의 집에서 살며 SUV 차를 몰았다. 돈이 없어 덤스터 다이빙을 하는 게 아니었다. 분명 다른 이유에서였다.

"나는 덤스터 다이빙을 음식 해방 운동이라고 불러. 쓰레기가 될 뻔한 음식을 해방하는 거야. 게다가 엄청 재미있거든. 한 번 할 때마다 엄청 많이 음식을 가져와. 금광 캐는 기분이야. 음식을 많이 찾은 날에는 지역 교회에 기부도 해."

그날의 작전은 밤 9시 30분부터 시작됐다. 오즈의 친구 랍, 마일드, 케리까지 동참했다. 랍은 덤스터 다이빙 7년 차였다. 동네 슈퍼마켓의 쓰레기통 현황을 꽤 뚫고 있었다. 심지어 몇 시에 경비원들이 퇴근하고, 쓰레기통 자물쇠 상태, CCTV 위치 등에 관해 정리한 문서까지 있었다.

랍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알디'라는 대형 마트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머리에는 헤드 랜턴을 달았다. 친구들과 어른들 몰래 보여 의심스러우면서도 유쾌한 장난을 치는 기분이었다.

주차장에 2개의 쓰레기통이 있었다. 첫 번째 쓰레기통 안에는 커다란 비닐봉지들이 빼곡했다.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포장 채 버려진 식빵, 장식용 허브 가루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바게트가 가득했다. 빵을 '구출'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먹었다. 내가 아는 보통의 빵 맛이었다. 친구들과 빵을 나누며 빵 구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황금 채굴' 중이라며 깔깔거렸다.

"우리 오늘 금광 캤어, 이 토마토들 좀 봐"

덤스터 다이빙으로 해방시킨 음식들을 식탁에 모두 올려놨다
▲ 그날 우리가 해방시킨 음식 덤스터 다이빙으로 해방시킨 음식들을 식탁에 모두 올려놨다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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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쓰레기통에서는 유기농 호박, 블루베리 맛 식초, 유기농 방목 계란이 등이 있었다, 10개들이 계란 팩에는 4개의 계란이 깨져 있었고, 나머지 6개는 멀쩡했다. 우리는 소비와 유통에 구조에 의해 쓰레기 처분을 받은 6개의 계란을 구출해 맛있는 삶은 계란으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는 2시간 동안 4개의 마트를 방문해, 6개의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날 주운 음식의 양은 엄청 많았다. 주운 물품의 목록만 대충 헤아려 봐도 20개가 넘었다. 오즈의 SUV 트렁크에 음식을 꾹꾹 눌러 담아도 넘쳐서 지역교회에 음식 일부를 기부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환호성을 치며 어린아이들처럼 웃었다.

"우리 오늘 금광 캤어. 이 토마토들 좀 봐. 뭐가 문제야. 이렇게 싱싱하고 맛있는데. 집에 돌아가서 토마토 주스 파티하자!"

다른 관광객들이 멜버른에서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판에 박힌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그날 100원도 들이지 않고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어떤 이는 쓰레기통에 뛰어들어 음식을 주워 먹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마트의 거대한 쓰레기통 안에는 이따금 깨진 유리병도 있고, 상해서 버려진 생선 조각이 불쾌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그 옆에는 가격표까지 그대로 달린 싱싱한 토마토가 있다. 싱싱한 토마토를 썩어가는 생선으로부터 구출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덤스터 다이빙은 어깨에 힘주고 심각한 얼굴로 해야 하는 사회운동도 아니고, 배낭 여행자로서 돈을 아끼기 위해 하는 궁여지책도 아니었다. 돈이 없는 사람이 굶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기업의 이익을 최고 우선시하는 경제구조를 친구들과 같이 유쾌하게 흔드는 '놀이'였다.


태그:#세계일주, #멜버른, #음식물쓰레기, #덤스터다이빙, #음식해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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