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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음료수 병이 폭발하는 일이 많았다. 음료수를 담은 병을 마개로 딸 때, 입구를 얼굴 가까이 대고 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안구 부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타임 캡슐은 과거의 것을 보관한 채 묻혔다가 미래에 발굴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구다. 과거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물건이나, 타임캡슐의 매장자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을 타임 캡슐에 함께 넣고 봉한다. 그리고 땅에다 묻은 다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미래에서 꺼낸다. 타임캡슐은 과거와 현재의 시차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과거에 꺼낸 물건을 살펴보면 그 시대가 생각보다 먼 시대였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임캡슐은 종종 대중 매체에도 등장하는데, 오랜 세월 후에 추억을 꺼낸다는 낭만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물건을 튼튼한 금속 상자에 보관해서 땅에다 묻는다고 치자. 안에는 편지나 장난감, 자잘한 액세서리 등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 후손들이 타임캡슐을 꺼내면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올까? 다름 아닌 녹이다. 아마 후손들은 오랜 세월동안 쌓인 상자의 녹을 보고 과거의 조상들은 산소와 투쟁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녹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 번도 인류를 떠난 적이 없는 불청객이다. 인류가 석기가 아닌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 곁에는 항상 금속을 활용한 도구가 있어 왔다. 작게는 음료수 깡통부터 크게는 다리나 항공 모함까지 금속이 쓰이지 않는 곳은 없다. 금속이 함께한 역사를 따라 녹도 항상 인류 문명을 따라왔다. 이 책의 부제처럼, 녹은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붉은 재앙이었다.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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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 월드먼,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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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월드먼의 <녹>은 인류의 역사를 함께한 골칫덩이인 녹에 관한 책이다. 녹은 호감이 가거나 대중적인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조나단 월드먼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경제, 미술, 국방,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녹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음료수 캔을 만드는 과정을 알아내기 위해 캔 회사에 접근하기도 하고, 알래스카를 횡단하는 송유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 책은 녹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하나의 전사(戰史)다.

녹은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인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녹에 관해 최초로 기록을 남긴 사람은 로마시대의 장군인데, 그는 투석기의 고리가 부식되어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탄했다. 성경의 마태복음 6장 19절에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이미 고대에도 녹으로 인한 피해가 널리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녹은 그야말로 소리 없이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붉은 재앙이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인데, 미국에서 한 해 동안 녹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액은 4370억 달러로, GDP의 3%를 차지하며, 이는 스웨덴의 GDP보다도 높다.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녹과의 전쟁의 결과물은 바로 음료수다. 과거에는 음료수 병이 폭발하는 일이 많았다. 음료수를 담은 병을 마개로 딸 때, 입구를 얼굴 가까이 대고 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안구 부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병은 주차장, 창고, 자동차 내부, 부엌 등 다양한 곳에서 폭발했다. 호텔 종업원이 룸서비스로 투숙객에게 소다수를 줬는데 병을 집자마자 폭발하는 007영화같은 사건도 있었다.

유리병보다는 캔이 비교적 충격에 강하다. 그러면 음료수를 캔에 담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안전한 음료수 캔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맥주를 캔에 담은 캔 맥주를 개발하는데 무려 12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주석으로 코팅 된 양철 캔에 맥주를 담으면 맛이 변하게 된다. 철 성분이 아주 조금이라도 맥주와 섞이면, 물분자가 분해되면서 산소가 생기는데, 이 산소가 맥주의 맛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많은 연구원과 화학자들이 안전한 코팅법을 찾는데 몰두했다. 오랜 노력 끝에 1935년, 에나멜 코팅을 통한 캔 맥주 개발이 성공했다.

음료수 캔의 핵심은 바로 코팅이다. 코팅이 잘못된 캔은 폭발하거나 유출되곤 하는데, 하나의 캔에서 내용물이 유출되면 옆에 있는 캔에도 영항을 준다. 그러면 2차 유출이 발생하고, 며칠이 지나면 연쇄작용으로 음료수 캔은 재난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트럭 운전사가 캔을 배달하다가 폭죽터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때문에 코팅을 더 정확하고 완전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책에서 언급되는 볼 사의 부식 연구소는 바로 캔을 위한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코팅제와 음료의 상호작용을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직접 맛을 보기도 하면서 감미료 분석 연구실까지 운영한다. 볼 사의 연구원들은 아주 극단적으로 적은 원소 함유량까지도 후각으로 감지하도록 훈련받는다. 이 모든 것이 녹을 막고 음료수를 제대로 보관하기 위해서이다. 덕분에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캔 콜라와 캔 맥주를 제 맛에 마실 수 있다.

요즘 웬만한 캔 음료 공장에서는 1분당 2000개의 캔을 생산하며 캔의 안쪽을 내구성이 강한 플라스틱 수지로 코팅해 부식성이 엄청나게 강한 음료도 담을 수 있다. 그동안 수조 개의 캔을 만들면서 충분한 경험을 축적해온 볼 사는 현재 200만 분의 1밀리미터 오차범위 안에서 거의 완벽한 규격의 캔을 생산한다. 볼 사에서 아직 만들지 못한 유일한 제품은 음료 제조업자들이 내용물을 보면서 주입할 수 있는 '투명한 캔'뿐이다. -147P

국방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녹 전문가도 있다. 미국의 연방 공무원 댄 던마이어는 국방부 부식관리국 국장이다. 그는 녹에 대한 모든 것을 홍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군대는 다른 어떤 곳만큼이나 금속을 많이 사용하는 곳이다. 부식 때문에 발생한 미군의 지출은 9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다.

댄 던마이어는 녹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녹 홍보용 비디오를 만들어서 <스타트렉>의 출연 배우인 레버 버튼을 내레이션으로 삼았다. 그는 부식 방지 훈련을 실시하고 어떻게든 녹을 줄이기 위해 홍보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군인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헬리콥터에 적용한 그의 부식 방지법은 투자 비용의 11~12배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미국 회계 감사원에 따르면 그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의 평균 투자 회수율은 50:1이라고 한다.

녹이 스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속이 녹스는 일은 예부터 지금까지 항상 있는 일이었다. 또한 녹은 한 번에 큰 피해를 주기 보다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조금씩 진행한다. 하지만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녹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과학 지식을 총동원했다. 금속에 새로운 코팅을 입혀 보고, 사람들에게 녹이 가지는 피해에 대해 알리는 영상을 만들며 녹과의 전면전을 펼쳤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가 하면, 녹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수없이 맛을 보기도 했다.

녹과의 사투는 화려하거나 멋있는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묵묵히 부식을 막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전문가로서의 자신을 잊지 않고 과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 땀흘려온 이들에게는 찬사를 보낼 만하다.



녹 - 소리 없이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붉은 재앙

조나단 월드먼 지음, 박병철 옮김, 반니(2016)


태그:#녹, #금속, #캔, #코팅, #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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