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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로 130여 명이 사망하고 350여 명이 부상했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그날 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경을 폐쇄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날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는 성명서에서 이번 테러는 "모든 인류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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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음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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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그로부터 10일 후, 프랑스의 한 시립극장에서 세미나를 개최한다. 지난 13일에 벌어진 비극적 참극의 원인을 전체적으로 조명해보려 한다고 바디우는 말한다.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는 2015년 11월 23일, 알랭 바디우가 발표한 특별 세미나 전문을 싣고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바디우는 먼저, '서구적 정체성'에 우려를 표한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오바마의 성명에서 바디우는 식민 제국주의 유산을 본다. 이라크,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콩고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에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오바마가 파리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에는 성명을 발표한 사실.

오바마가 이번 사건을 "인류에 반하는 범죄"라고 못 박은 사실. 이 두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건 오바마가 말하는 인류란, "선한 유럽과 동일시할 수 있"는 '프랑스나 미국에서 사는 사람'을 칭하고 있다는 게 바디우의 생각이다. 바디우는 말한다.

"서구인 한 명의 사망자는 끔찍하고,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더 나아가 러시아에서의 수천 명의 죽음은 끝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습관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 본문 중에서 

2012년 1월에서 2013년 2월 사이에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서 이뤄진 미국의 드론 공격은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그중 목표했던 타깃은 35명. 나머지 사망자들은 동네에서 놀던 꼬마들이거나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드론 공격을 지시한 오바마는 파리 테러리스트들을 두고 "무고한 시민을 위협하는 무도한 시도로서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며 "테러리스트에 정의의 철퇴를 내릴 것"이라 말했다(책에 나와 있는 통계에 따르면, 드론으로 공격할 시 한 명을 죽이면 아홉 명의 부수적 피해자가 나온다고 한다).

바디우는 정의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정의의 가장 기본적 임무의 하나는... 정체성의 축소에 항거하고, 또한 불행의 공간이란 결국 우리가 전체 인류 차원에서 직면해야 할 공간이지 결코 정체성에 국한되는 발언에 가두어서는 안 되는 공간임을 기억하고, 또한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병'

이 책은 총 7부로 나뉘어 있다. 파리 사건을 '결과'로 본다면, 이 책은 역추적을 통해 '원인'을 밝혀낸다. 바디우가 찾은 원인은 1부인 '현대 세계의 구조'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1980년대부터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늘 세계시장을 말한다. '세계화'라는 용어는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다.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고, 국가는 점점 작아진다. 탈국유화, 사유화가 당연하단 듯이 진행된다. 바디우는 이 '사유화'라는 단어는 "놀랍도록 공격적인 단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사유화를 '민영화'라는 용어로 대체해 사용한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사유화는 가속도 운동을 이어가고 종국에는 국가를 뛰어넘는 초국가 기업이 탄생한다. 이렇게 소수가 세계의 부를 독차지한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세계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유례없는 불평등 성장.' 문명이 발생한 이래 인류는 늘 불평등했지만, 지금처럼 불평등한 적은 없었다.

세계 인구의 1퍼센트가 부의 46퍼센트를, 세계 인구의 10퍼센트가 부의 86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그 아래 중산층이라 일컬어지는 세계 인구의 40 퍼센트가 부의 14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중산층 아래 세계 인구의 50퍼센트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바디우는 지금의 이 흐름이 유지된다면 중산층의 부는 14퍼센트에서 12퍼센트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바디우는 이는 마치 과거 과두정(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실제로 부의 86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는 인구 10퍼센트는 당시 귀족 수에 준한다고.

그리고 이 세계에는 50퍼센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20억 인구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노동자와 소비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런데 이 20억 인구는 노동하지도, 소비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이 사회에서 '무'로 산정된다.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의 상황은 '무정부적', '무장 세력', '난민 캠프'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바디우가 보기에 이렇듯 불평등한 글로벌 자본주의는 하나의 '병'이 되어 세계 곳곳을 파괴하고, 인간 또한 파괴한다. 그런데 이 세계에는 병을 고칠 백신도, 병을 고치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듯하다. '대안 없는' 세계인 셈이다. "가능한 다른 길에 대한 사유"가 "완벽히 차단" 되었기에, 우리는 막다른 길목에 멈춰 선 채 병에 의한 증상만 호소하며 불안감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파리 테러는 하나의 증상이었을 뿐

책에서 가장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것은 바디우가 주목한 세 가지 주체성이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중산층과 난민층에게 아래와 같은 주체성을 내재화했다. 하나는, '서구의 주체성'. 이는 40퍼센트 중산층이 지니고 있는 주체성이며, 이들은 자기 만족을 느끼면서도, 항구적 공포에 시달린다. 자칫 잘못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50퍼센트의 삶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이다.

그런데 중산층의 이러한 긴장은, 긴장을 초래한 과두정이 아닌 50퍼센트로 향하고 만다. 본인들의 삶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이유가 마치 50퍼센트의 존재 때문이라는 듯이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러한 중산층에게 과두정은 "위기는 존재하며, 당신의 공포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공포는 정부의 현명한 조치와 사업의 민주적 관리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과두정을 유지한다.

둘은, '서구적 욕망의 주체성'. 과두정과 중산층의 삶은 대중매체에 의해 빈곤층에게 전달되고, 빈곤층은 "어딘가 있을 문명과 현대성"을 상상하고 욕망한다. 하지만 그에 도달할 그 어떤 실질적 방도는 없으므로 실망하고, 질투하고, 반항한다.

셋은, '허무주의적 주체성'. 이는 '서구적 욕망'은 품었으나 이를 현실화할 수 없는 빈곤층이 갖는 복수와 파괴의 욕망이다. 서구로 떠나고 싶고, 서구를 모방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기에 허무주의를 학습한 이들은 '죽음 충동'을 느낀다.

이로써, IS와 같은 현대적 파시스트가 탄생한다고 바디유는 말한다.

"서구적 욕망에 실망한 자는 스스로 파시스트가 되어 서구의 적이 됩니다. 이 파시즘은 서구적 욕망의 내면적이고 부정적인 억압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공격적, 허무주의적, 파괴적 충동을 조직합니다. 그것은 넓게는 억압된 서구적 욕망이며, 대신 그 자리에 허무주의적, 살인적 반동이 자리한 뒤, 정확히 자신의 욕망의 대상이었던 것을 표적으로 삼습니다." - 본문 중에서 

2015년 11월의 살인자들은 대부분 이주노동자 가정 출신의 프랑스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이 왜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는 프랑스의 지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1950년대부터 30년간 프랑스는 공장 생산 라인에서 일할 제 3세계 노동자들을 불러들인다. 노동자들은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 정착했고, 가정도 꾸렸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와 같은 기술직 노동자의 삶을 자연스레 꿈꿨다. 그러나 공장이 문을 닫고 외국으로 나가면서, 젊은이들의 미래 또한 닫혔다. 프랑스는 더는 그들이 필요없고, 그들이 떠났으면 싶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바디우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아무 보장 없이 그들을 수입했고, 이제 그들을 수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호소한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인적 설비'를 이런 식으로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에선 "전망도 없고, 변변한 자리 하나 얻을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 2세대, 3세대들을 유혹한 건 IS였다. 젊은이들 내면에 자리 잡은 '서구적 욕망'과 '허무주의'를 간파한 IS는 이들에게 상당한 보수와 다양한 재밋거리를 제공한다. 젊은이들은 IS 수하에서 서구적 충족감을 맛본 후, '자살 충동'에 따라 거리낌 없이 삶을 끝낸다. 그들의 표적과 함께.

사유를 통해 다음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들의 테러는 분명 용서할 수 없고, 이는 그 어떤 폭력도 용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들의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폭력 앞에서 이들을 적으로 돌려 복수의 칼날만을 간다면, 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 바디우는 말한다. 나타난 증상에 총과 칼을 꽂는다고 병은 치료되지 않는다. 대신, 병에서도, 증상에서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사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순, 파시스트들의 죽음의 허무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파괴적이고 공허한 전개 사이의 모순 사이에서 이들 각각의 대리인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이 세계가 병들어 있음을, 파리 테러는 병든 세계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증상 중 하나였음을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 이 책에서 철학자는 본질과 현상을 넘나들며 자본주의의 무능과 허점을 큰 틀에서 보여준다. 반면, 더는 우리의 행복과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그다음 세계의 모습을 제안하는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대신, 당부한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에 내재한 협소한 정체성과 병든 주체성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일원으로서, '서구적 욕망'을 거부하고, 허무주의에 안주하지 않으며,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를 넘어서려 용기를 내야 한다고. 이런 우리들이 본질을 찾아 방황하며 활동하고, 깊은 사유와 함께 서로 동맹한다면,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알랭 바디유는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알래 바디우//자음과모음/2016년 11월 04일/1만2천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 11월 13일 참극에 대한 고찰

알랭 바디우 지음, 이승재 옮김, 자음과모음(2016)


태그:#알랭 바디우, #파리 테러, #IS, #자본주의, #글로벌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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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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