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것은 영롱한 바다였다. 출렁이고 솟구치며 '새로운 생성'을 예고하는 바다였다. 태초에 생명을 잉태한 그 바다와 꼭 같은 이유로 단호히 아름다운 바다. 지난 일곱 번의 토요일, 광화문 거리에 서서 수백 만 촛불의 바다를 보았다. 사람들 각자는 수백만 포말의 하나로 파도를 만드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그 거대한 촛불의 바다에 압도당한 객체였다.

두 눈으로 직접 그 촛불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수많은 질문이 인다. 민주주의는 어디서 출발하는가? 공동체는 무엇인가? 한국인의 저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하나? 그리고 결국 오롯이 한 질문이 남는다.

'사람은 무엇인가?'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큰 선물을 받았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되찾은 것. 또 사람이 만들어내는 신성에 가까운 희망을 본 것. 그것은 일종의 기적이다. 그리하여 2016년 겨울, 촛불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사람을,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탄핵 가결 다음날인 10일에도 광화문에 80만이 모였다.
▲ 7차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들 탄핵 가결 다음날인 10일에도 광화문에 80만이 모였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2016년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정한 국가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든 것은 촛불이다. 바람 한 번 불면 훅, 하고 꺼져버리는 그 연약한 것이 약자들의 무기였다. 짱돌도 아니고 쇠파이프, 화염병도 아니어서 간절하고 애끓고 서글펐다. OECD 국가 중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가장 많고, 가장 오랜 시간을 일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기 어려워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그 나라 헬조선의 국민들은 놀랍게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그 연약한 것이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다. 정치권이 탄핵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탄핵했다. 게다가 그 촛불은 탄핵 이후로도 계속될 것을 예고하는 중이다. 사람들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그 짧은 문장 속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어쩌면 친일청산, 재벌개혁, 정치개혁, 평화통일 등 불가능해보였던 것을 이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지난 10일, 7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날임에도 광화문과 서울시청, 청운효자동과 종로 일대는 해방구였다. 차들이 다니지 못했고 빌딩들 사이, 10차선의 도로를 오직 사람이 점령했다. 80만이 모였다 했다.

빌딩 사이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칠 때 가슴이 퍼렇게 선다. 여럿이 한목소리로 같은 것을 외칠 때, 또한 그것이 명백히 정의로운 것일 때 이상한 환희가 있다. 외침이 빌딩벽을 치며 메아리로 울려 '거대하고도 무서운 사람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 직접 들어보지 않고서는 그 느낌을 설명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다. 이날 광화문은 춥지 않았다. 80만이 모이면 추울 수가 없다. 촛불의 바다 한 가운데에는 긴 칼을 들고 선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장군은 수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촛불의 바다 한 가운데 긴 칼 곁에 찬 이순신 장군은 수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 사람들에 둘러싸인 이순신 동상 촛불의 바다 한 가운데 긴 칼 곁에 찬 이순신 장군은 수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국민들의 시국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상유래가 없는 이번 촛불집회가 가능한 데는 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역할이 지대하다. 보이지 않는 수억 개의 선이 사람과 사람을 잇대고, 맺고, 연결하는 중이다. SNS가 일종의 대안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 정통언론, 제도권 미디어는 이미 독점권을 상실했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보고, 트위터로 사회적 비판의식을 공유한다. 밴드에서 지인이 올린 기사, 알려지지 않은 보도를 접하며 함께 분노하고, 단체 카톡방을 통해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 실무를 논한다. 아울러 요소요소에 유머와 위트, 생생한 날 것의 감정을 섞어 살아 숨 쉬는 소통을 한다. 국민 전부가 스마트폰을 통해 매일매일 시국회의를 하는 셈이다.

이재명 시장은 이를 '집단지성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을 옮긴다.

"국민들은 정보화 네트워크 사회에서 신경망들이 다 연결된 하나의 의식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 이전에 국민이 모래알처럼 분리된 조각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국민 전체가 1억 개의 눈, 귀를 가진 집단지성체로 진화한 것."

집단지성은 한 개체의 능력범위를 넘어선 힘을 발휘한다. 소수의 우수한 개체나 전문가의 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의 통합된 지성이 올바른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집단지성체로의 진화를 이끄는 것이 바로 SNS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대한민국 국민은 탄핵 후엔 이제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전략전술을 논할 정도로 지능화되었다. 박근혜 정권은 이 지점을 오판했다. 개, 돼지는 그렇게 진화하지 못한다.

이재명 시장은 “국민들은 정보화 네트워크 사회에서 신경망들이 다 연결된 하나의 의식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 가족단위 시위 참가자들이 많다. 이재명 시장은 “국민들은 정보화 네트워크 사회에서 신경망들이 다 연결된 하나의 의식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이번 촛불은 그냥 꺼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주권자 본래의 자격을 회복하고 있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시민들이 들고 나온 LED촛불, 차벽 스티커, 개성 있는 집회소품, 깃발 따위를 보며 확인한다. 깃발은 그 정점이다. '얼룩말연구회', '화분 안죽이기 실천시민연합', '국경없는 어항회', '무한도전 본방사수위원회' 따위의 깃발들은 국민들이 현재의 사태를 스스로 즐기며 자기주도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에 공안정권은 조직화된 일부를 상대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부정한 권력의 적은 이제 수천억 개의 망으로 연결된 온 국민이다.

세월호로 시작된 역사, 단죄는 계속되어야 한다

얼마 전 안성에서 네 아들을 키우며 사는 50대 여성을 만났다. 아프락사스, 그녀는 깨어나고 있었다. 정치적 비판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럼 그녀의 이런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그것은 2014년 4월 16일의 일이다. 그녀는 이전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모른다 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그녀의 싸움은 오직 그날 이후 시작됐다.

세월호. 세월호. 세월호. 그 아이들, 그 사람들. 우리는 실로 깊이 상처받았다. 전 국민적 트라우마란 것이 생겼다. 온 국민이 304명이 수장당하는 순간을 고스란히 다 보고야 말았다. 그것은 쉬 아물지 않을 절대적 상처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이 남긴 문자메시지, 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연하게라도 그를 접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평정심을 잃고 심장이 마구 뛴다.

세월호가 선수만 남긴 채 검은 밤바다에 잠기고, 그 위로 몇 개의 조명탄만이 터져 내리는 그 참담한 광경이라니. 그 곁에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몇 척의 배가 있었다. 그걸 잊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구조를 기다리다 죽어갔다. 믿음직한 어른들이 올 거라고 어른들을 기다리다 죽어갔다. 그건 잊을 수가 없는 일이다.   

단언컨대 이 촛불정국은 오직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 돈만 안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심장은 그때부터 뒤척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974일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알지 못한다. 시작은 그러했다. 이후 국민들은 참담한 사태의 원인을 살폈고, 그러다보니 총체적 국가시스템이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을 감지했고, 알고 보니 거기에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권력도 위임받지 않은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이 있었다. 거기에 재벌이 그 뒤를 열심히 봐주었고, 집권여당 또한 그에 방조, 혹은 부역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재벌로부터 돈을 열심히 먹은 비선실세들은 재벌의 뜻만 들어주어, 국민의 삶은 날로 어려워지고 국가경제는 더욱 피폐해졌음도 알았다. 대통령과 비선실세들, 재벌과 집권여당이 한 통속이 되어 오직 자신들의 이득만 챙긴 것이다. 이에 국민들은 나라 없는 백성처럼, 난민처럼 각자도생, 알아서 살아야 했다.

“우리는 앞으로 죽는 날까지 촛불집회의 사진을 보면서 슬쩍 가슴 한 켠이 따듯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집회에 참여하나 시민들 “우리는 앞으로 죽는 날까지 촛불집회의 사진을 보면서 슬쩍 가슴 한 켠이 따듯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그리하여 이제 할 일이 많다. 그것을 대권주자 지지율 1위의 문재인 전 대표가 잘 정리해 말하는 중이다. 그는 비리와 부패 관련된 공범자 청산, 그들이 모은 부정한 재산 몰수를 말했다. 또 사유화된 공권력을 국민에게 돌리고, 잘못된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정경유착 근절, 언론장악 책임자 조사·처벌, 세월호 참사 원인규명도 포함된다. 제발, 이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뤄야 하는 것이다.  

이날 촛불집회에서는 가수 이은미가 노래했다. 아름다운 노래 사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엔 청산이란 역사가 쓰여진 적이 없었습니다. 어제가 제대로 된 청산의 역사가 쓰여진 첫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제 고운 새 노트를 꺼내 청산의 역사를 쓰자. 우리는 오늘 '탄핵가결'이라는 겨우 네 글자를 썼을 뿐이다. 

내가 사는 안성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민중연합당은 서로 어울려 매주 사람들을 모아 광화문에 간다. 물론 시민단체도 함께다. 버스를 대절하고 사람을 모으고 간식에, 피켓, 양초를 준비하고 다시 잘 모아 내려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야당들은 촛불 앞에 잡음 없이 버스에 나란히 앉아 함께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이 이쁘다.

한 시민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감회를 남겼다.

"우리는 앞으로 죽는 날까지 촛불집회의 사진을 보면서 슬쩍 가슴 한 켠이 따듯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노벨평화상이란 것이 진정 평화를 위해 소용된다면 다음 노벨평화상은 '2016년 겨울, 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리고 생업 때문에 매여 있으나 마음만은 늘 저 거리에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수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말씀.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언컨대 이 촛불정국은 오직 그날, 세월호 참사일로부터 시작되었다.
▲ 광화문 일대를 가득 채운 사람들 단언컨대 이 촛불정국은 오직 그날, 세월호 참사일로부터 시작되었다.
ⓒ 황윤희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안성신문에 14일자로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촛불집회, #청산, #박근혜, #세월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