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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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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하게 두 발로만 걸어다닌 런던은 거대한 놀이공원 같았다. ⓒ 한성은
서울살이는 조금은 힘들어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앞에 앉은 사람
쳐다보다가도 저 사람의 오늘의 땀
내 것보다도 짠맛일지 몰라

광화문 계단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면
사람들 수만큼의 우주가
떠다니고 있네 이 작은 도시에

- 오지은, '서울살이는' 노랫말 중에서

런던살이는 어떨까? 런던은 높은 물가와 살인적인 집값으로 유명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도시도 손꼽히기도 한다. 또,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지난 5월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인 사디크 칸(Sadiq Aman Khan)을 런던 시장으로 선출하는 역량을 보여준 도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브렉시트(Brexit)의 광풍 속에서 스코틀런던(EU 잔류를 희망하는 스코틀랜드와 런던을 통칭하는 말)을 외치며 분노를 터뜨리던 도시가 바로 런던이다. 나는 이렇게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 히스로 공항(Heathrow Airport)에 내려 숙소가 있는 사우스 켄싱턴(South Kensington)으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로 향했다. 앞뒤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에 동양인 아가씨 두 명이 커다란 캐리어를 밀고 들어와 같이 탔다. 한 명이 내가 메고 있는 75리터 배낭을 한참 보더니 옆에 있는 일행에게 말을 했다. 반가운 한국말이었다.

"저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저런 배낭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떡해."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오랜만에 듣는 한국어로 욕을 먹으니 기분이 나빴다. 차라리 한국말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한국 사람인 줄 몰랐나보다. 당신 캐리어 보다 작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싫은 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지만, 같은 수준의 싫은 소리를 뱉는 것은 더 싫었다. 배낭을 메고 엘리베이터에서 춤을 춘 것도 아니고 가만히 앞만 보고 서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어가 비난이라니. 복도 참 없었다. 그나저나 큰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타면 실례인 건가?

오랜만에 듣는 한국어가 욕이라니, 복도 없지...
런던 지하철 피카딜리 라인은 정말 작고 비쌌다. ⓒ 한성은
난처한 상황은 또 있었다. 영국의 지하철은 정말 작았다. 내 키는 보통 성인의 평균 정도 된다. 우리반 아이들은 내가 결혼을 못 한 이유가 작은 키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수치상 평균이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수없이 많다.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이런 내가 머리를 숙이고 지하철에 타야 할 정도로 높이가 낮았다.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라고 하던데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키가 작았었나 싶었다.

타려니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한국 사람들에게도 욕을 먹었는데 이들은 이방인인 나에게 얼마나 눈치를 줄까 싶어서 괜히 긴장됐다. 그런데 이 사람들 내 배낭을 보더니 그 좁은 공간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며 배낭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공간이 더 있었다면 고맙다고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싶었다. 살림살이로 가득 찬 배낭을 분노와 함께 지하철 밖으로 던져버리지 않고 숙소까지 온전히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그들의 친절 때문이었다. 갑자기 런던이 좋아졌다.

고풍스러운 건물에 종업원 모두가 마치 여행객처럼 신나게 일하던 멋진 숙소 'Astor Hyde Park Hostel'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하루 3만 걸음 이상 걷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 여행자들은 대부분 오이스터 카드(Oyster card)라고 하는 런던 교통카드를 사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나에겐 튼튼한 다리가 있었기에 공항을 오갈 때를 제외하면 여행 내내 걸어 다녔다. 런던 지하철 1회권 요금은 4.9파운드(7500원)다. 중간에 조금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뿌듯하다. 어쨌든 아꼈으니까.

숙소에서 머물렀던 2박 내내 호스텔 조식을 사 먹었다.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런던이니까 가능했다. 호스텔의 조식은 가난한 여행자들의 사정에 맞게 저렴한 가격에 뷔페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토스트와 씨리얼로 숨 쉴 공간 없이 위를 가득 채우고, 토스트 몇 개는 비닐봉지에 따로 챙겼다. 문을 열고 나서니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던전(Dungeon)을 향해 나가는 용사가 된 기분이었다. 얼라이언스를 위하여!
런던 중심가에 오아시스처럼 있어 주었던 Astor Hyde Park Hostel ⓒ 한성은
켄싱턴 공원(Kensington Gardens)과 하이드 파크(Hyde Park)를 따라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으로 향했다. 런던 시민들이 푸른 숲을 배경으로 벤치에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상쾌한 공기가 폐 속으로 가득 들어왔다. 런던 스모그 사건 때문인지 런던은 공기가 아주 안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공원 산책로를 걸으니 깨끗한 공기 덕분에 그저 좋았다.

호수에는 수십 마리의 백조가 깃털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 있었다. 테니스의 본고장답게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테니스 코트에서 공을 쫓고 있었고 공원을 가로질러 우아하게 승마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숲과 호수를 배경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무척 멋있었다. 다만 말이 지나간 자리에 모래바람이 일어서 주변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잔디밭 위에 선베드를 놓고 장사를 하는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런던 도심 한가운데 펼쳐져 있었다.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지만, 잔디밭 위에 놓여 있는 선베드를 보니 이들이 얼마나 햇볕을 갈망하는지 이해가 됐다. 마침 내가 머물렀던 주말 내내 화창한 날씨가 계속 되어서 햇볕을 즐기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많이 봤다. 그들은 듣던 대로 볕이 들면 나이와 성별, 장소를 가리지 않고 훌렁훌렁 벗고 일광욕을 했다. 그리고 도심 곳곳에 그만큼 크고 작은 공원이 아주 많았다. 공원을 즐기며 사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이른 아침 켄싱턴 공원에서 만난 그림 같던 순간 ⓒ 한성은
켄싱턴 공원에서 런던 시민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원을 즐기고 있었다. ⓒ 한성은
런던 왕실 근위병들의 모습은 멋지지만 위압적이었다. ⓒ 한성은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붉은 제복을 입은 왕실 근위병들이 오고 있었다. 말이 워낙 커서 그 위에 앉은 사람이 아주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지금껏 제대로 된 기마병을 본 적이 없었는데 바로 앞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니 과거에 기마병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을지 상상이 됐다. 일본 강점기 일본 헌병들도 이렇게 커다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힘없는 우리 민족을 억압했을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죽하면 우는 아이들도 "순사 온다"는 말을 들으면 울음을 그쳤을까. 시대는 변했고, 기마병은 관광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위압적인 기마병의 모습은 여전히 무서웠다.

공원을 빠져나오면 웰링턴 아치(Wellington Arch)가 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단다. 웰링턴 아치 뒤편으로는 더 메모리얼 게이트(The Memorial Gate)가 있다. 이 기념물은 1, 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국가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고 쓰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까.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승자와 패자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영국이 근대에 와서 저지른 일들을 생각해보면 좋게 보이지만도 않았다.

근위병 교대식 목 빼고 기다렸건만... '오늘은 없음'
웰링턴 아치와 더 메모리얼 게이트의 모습 ⓒ 한성은
더 메모리얼 게이트를 지나 큰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버킹엄 궁전이다. 근위병 교대식이 11시 30분이라 시간에 맞춰서 궁전에 도착했는데, 궁전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버킹엄 궁전을 실제로 본다는 감회도 컸지만, 궁전을 둘러싼 엄청난 인파의 관광객들이 더 놀라웠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인파에 추가되었다.

어찌 보면 그저 다른 나라 할머니가 사는 가정집일 뿐인데, 철망에 매달려 남의 집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런 곳에서 사는 엘리자베스 여왕도 참 피곤하겠다 싶었다. 우리 집 앞에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정말 싫을 것 같다.

남의 이야기처럼 하곤 있지만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는 없었다. 그 유명한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교대식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파를 헤집고 정문 앞으로 가보니 오늘은 교대식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다들 그것도 모르고 목이 빠져라 내다보며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문 앞에 작은 선간판 하나가 전부인 데다 사람이 많아서 그나마도 잘 보이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근위병 교대식은 버킹엄 궁전뿐만 아니라 윈저 궁이나 런던 타워 등에서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여왕이 살고 있는 집 앞에서 하는 교대식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교대식은 어쩔 수 없이 내일로 미뤄야 했다.
버킹엄 궁전 앞에 모인 수많은 관광객들 ⓒ 한성은
영국 여왕이 살고 있는 남의 집을 구경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 ⓒ 한성은
빨간 2층 버스와 함께 런던의 상징인 까만 택시 블랙 캡 ⓒ 한성은
두 발로 걸으면서 느낀 런던은 거대한 놀이공원 같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던 건물과 조형물이 있었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이층 버스는 볼 때마다 괜히 반가웠고, 귀여운 택시 블랙 캡(Black Cab)은 퍼레이드를 하듯 도심을 누볐다. 다만 요금은 귀엽기는커녕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한 블록 지날 때마다 공원이 있고, 광장이 있었다.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 사이로 높은 탑들이 놀이공원처럼 곳곳에 솟아 있었다. 그리고 어디든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버킹엄 궁전을 나와 직선으로 쭉 뻗은 큰길인 더 몰(The Mall)을 따라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으로 갔다. 중간에 병풍처럼 서 있는 애드미럴티 아치(Admiralty Arch)를 통과해야 했는데, 세 개의 문 중에서 가운데 문은 오직 여왕만 통과할 수 있는 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로 가운데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나가는 문 하나라도 차이를 두려는 왕실의 권위주의에 실소가 터졌다. 영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나라가 아니었다. 영국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려면 여왕은 사람이 아니어야 했다.
애드미럴티 아치의 굳게 닫힌 가운데 문은 오직 영국 여왕만 통과할 수 있는 문이라고 했다. ⓒ 한성은
아치를 통과하니 트라팔가 해전의 영웅이라는 넬슨 제독이 높이 50m의 탑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리에는 나폴레옹의 승전탑이 곳곳에 있고, 런던에는 나폴레옹의 패전탑이 곳곳에 있는 걸 보니 나폴레옹이 참 대단했거나 지독했던 건 분명했던 것 같다.

세계 3대 해전이라 불리는 트라팔가 해전을 기리는 광장답게 그 위용이 대단했다. 특히 탑을 둘러싸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상은 정말 늠름해 보였다. 비록 네 마리 사자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사진을 찍느라 힘들어 보였지만 말이다.

광장 북쪽에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회화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가 있었다. 런던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내셔널 갤러리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미술관 앞 광장에는 미술관 못지않은 볼거리들이 많았다. 이들의 거리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멋진 힙합 댄스팀, 바닥에 분필로 멋진 그림을 그리는 사람, Maroon 5만큼 연주를 잘하던 밴드들이 있었다. 특히, 마네킹 분장을 하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거리의 예술가는 처음 봤을 때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신기했다.
트라팔가 광장의 주인공 넬슨 제독이 50m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 한성은
관광객들은 멀리 있는 넬슨 제독보다 가까이 있는 사자를 더 좋아했다. ⓒ 한성은
내셔널 갤리러 앞에서는 언제나 거리 공연이 계속 된다. ⓒ 한성은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내셔널 갤러리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걸으면 소호(Soho)지역이었다. 내가 읽었던 영미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주말이면 소호로 갔다. 그곳이 뉴욕의 소호인지, 런던의 소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 들었던 지명이었다.

그리고 소호는 음식 천국이라고도 했다. 런던에서 가장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면 소호에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가라는 말도 들었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쉬지 않고 걷기만 했더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텅 빈 위를 붙잡고 무작정 소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런던의 물가를 모르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호기였던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배낭여행자가 믿을 것은 튼튼한 다리뿐이다. 사흘 동안 런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 한성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타박타박, #아홉걸음, #배낭여행, #세계일주,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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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저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성실한 여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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