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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청와대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청와대 향한 '박근혜 퇴진' 촛불 지난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청와대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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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스펙트럼은 다양해진다.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생각들이 굳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11월 12일 촛불의 열기는 굉장한 일이었다. 100만이 모이든 10명이 모이든 어떤 하나의 가치를 목적으로 모인다는 건 민주주의의 광장을 겪는 가장 큰 이유이자 영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집회의 열기가 끝난 후 남은 생각을 공유하고자 적은 후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서 군중이 모이는 의미를 반문하게 됐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너무나 생경한 '동지'들의 반응을 보며 한 번쯤 '우리들이 모였던 현장', 그 목적에 대해 반추해본다.

민중총궐기 때 있었던 성범죄 그리고 일본인 혐오

분명 당시 집회현장에서 성범죄가 있었다. 술에 취한 50대 남성 참가자가 20대 여성 참가자의 몸을 더듬었다는 성추행 사건이 보도됐고, 그밖에 SNS를 통해 온갖 성추행 제보가 쏟아진다. 배낭을 맨 등허리 만지기, 엉덩이 더듬고 도망가기, 허리에 손얹기 등 온갖 추태에 교복입은 여고생을 노리겠다는 예고 글마저 올라와 논란이 됐다.

허나 이런 기록에 대해 '물타기 하지 말라'는 댓글이 달렸다. 설령 그 광경을 못 봤더라도 엄연한 범죄행각에 공분하진 못할 망정 집회가 중요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게다. 대의를 위해 사소한 일은 넘어가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이고 편리한 사고 방식. 말문이 막혔다. 애초에 사소할 수 없는 성범죄인데 집회의 큰 목표를 위해선 외면해야 했던 걸까 싶다.

그렇다고 성추행범까지 포용(?)할 정도로 모두에게 열린 집회는 아니었다. 이번엔 시위에 참여한 일본인들도 문제가 됐다. 매번 철도노조를 도와줬던 일본 노동자들이나 한국 사회운동 현장을 보러온 일본 사회운동가들에게 '쪽바리는 나가라' '이런 식으로 또 넘보냐'는 힐난이 뒤따랐다. 아베 정권 퇴진운동에 공산주의 이념까지 장착한(?) 급진적인 일본인인데... 좌우지간 일본인이 어떻게 한국인이 벌이는 집회에 참가할 수 있냐는 반응이 있었다.

옳고 그름이 지켜져야 한다, 포용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왜' 모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100만 명(경찰 추산 26만 명)이 모인 자리에 어찌 나와 맞는 사람만 존재하겠는가. 오히려 이다지도 다른 인간들이 오직 민주주의의 근간을 되찾기 위해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함께 부르짖었다. 아무리 서로 먼 경계에 살더라도 부정부패가 잘못됐다는 믿음, 정치가 부조리하다는 공분, 뭔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게 아닌가.

정작 100만이라는 숫자에 연연하며, 어떤 이는 물 흐리지 않기 위해 성범죄는 덮자 했다. 그런데 일본인에게는 '꺼지라'는 셈법을 보였다.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왔고, 무엇을 위한 계산인지 묻고 싶다. 분명 지난 집회는 외신들도 놀랄 수준의 품격있는 평화시위였지만, 거기서 한 발 나아가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더 크게 세상을 끌어안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중잣대에 빠져 자성에 게을러졌을 때 우리가 모인 이유는 무색해진다.

우리가 누구를 향해, 왜 싸우고 있는지 가다듬자. 사람 수 만큼 옳고 그름을 지켜야 하며,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의 수 만큼 다양한 서로를 포용해야 한다.


태그:#광화문집회, #촛불시위, #성추행, #일본인,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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