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면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금 보면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12일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는 제3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이 집계한 참여 시민은 100만 명, 경찰이 집계한 인원 26만 명으로 이번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향한 시민들만 무려 10만 명이라고 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한층 높아진 시민의식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함께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내가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한편이 있다. 바로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자매가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했던 2006년작 <브이 포 벤데타>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우리에겐 '비'의 헐리우드 첫 주연작 <닌자 어쌔신>을 연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비'역에 '나탈리 포트만'은 2006년 새턴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휴고 위빙은 가면을 쓴 인물 V역을 맡아 단 한 번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개봉 성적보다 DVD 판매가 돋보이는 이유

<브이 포 벤데타>의 원작은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가 공동 창작한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2034년, '하나 된 국민, 하나 된 조국'을 강조하는 셔틀러 의장(존 허트)의 강력한 통치 하에 영국은 극우 정당 '노스파이어' 정권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됐다.

BTN 방송국에 근무하는 젊은 여성 이비 해몬드(나탈리 포트만)는 통금 시간을 어겼다가 '핑거맨'이라고 불리우는 비밀 경찰들에게 강간을 당할 뻔한다. 이비는 자신을 '브이'(휴고 위빙)라고 하는 마스크를 쓴 자에 의해 구출되고, 브이에 의한 중앙 형사 재판소(올드 베일리) 폭파장면을 목격한다.

독재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깜짝쇼인냥 국민들에게 긴급 건물 철거라고 거짓 발표하지만, 다음날 브이가 BTN 방송국을 점거하고 자신의 소행임을 밝히는 방송을 내보내 거짓말인 것이 들통나고 만다. 그는 정확히 1년 뒤인 11월 5일에 자신이 영국 의사당을 파괴할 것이며, 영국 국민들은 포악한 정부에 맞서 봉기하라는 메시지를 내보낸다. 이비는 브이가 탈출하도록 돕지만, 이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브이 포 벤데타>의 두 주인공, 이비(나탈리 포트만 분)와 V(휴고 위빙 분).

<브이 포 벤데타>의 두 주인공, 이비(나탈리 포트만 분)와 V(휴고 위빙 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브이 포 벤데타>는 개봉 당시 전세계 1억3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흥행대박'과는 조금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국내 개봉 당시에도 42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는데 그쳤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요즘 같이 세상이 어두울 때면 회자돼 더욱 빛이 나는 작품이다. (그래서 인지 DVD 판매로만 제작비 5400만 달러가 넘는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괴작이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영화엔 민주주의가 말살된 독재 정부가 등장한다. 민중의 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국민들을 속이고 정치공작을 펼치는 한편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하고, 사이비 종교인과 결탁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이 조금은 과장되고 과격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건 왜일까? 심지어 약속의 날, 무기력하게만 보였던 국민들이 모두 브이의 가면을 쓰고 광장으로 모인 날은 11월 5일로 지난 2차 촛불집회일자와 똑같다.

영화 속 '브이'는 국가가 국민을 우롱하고,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하고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앉아 TV만 쳐다보는 사람들의 뇌관을 건드리고 결국 11월 5일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혁명가이자, 자신과 사회에 해악을 끼친이들에게 가차없이 복수하는 복수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오늘날의 우리와 오버랩되는 엔딩.

오늘날의 우리와 오버랩되는 엔딩.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에는 이런 브이와 영화의 메시지를 꿰뚫는 두개의 명대사가 나온다. 하나는 브이가 방송국에서 일하며 체재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비'에게 하는 말이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지."

그리고 브이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대사를 인용하여 자신의 적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를 죽이는것은 내가 아니고 너의 과거이다."

두 대사 모두 지금 우리 사회에 던져도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가?

대중들의 정치적 침묵에 경고하는 메시지와 수많은 상징들 그리고 한남자의 신념이 담긴 액션까지 선보이는 <브이 포 벤데타>는 무거운 주제를 카타르시스로 이끄는 훌륭한 엔딩을 선보인다. 수많은 '브이'가 운집한 가운데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 속에서 불꽃놀이로 승화 된 국회의사당 폭파 장면은 영화가 안겨줄 수 있는 시각적이면서 감정적인 쾌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당신이 아직까지 이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면 꼭 찾아보고, 브이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음미해보길 권한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고, 또 어머니였고, 나의형제였고, 당신이었고, 그리고 나였어요. 우리 모두였어요." - 이비(나탈리 포트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브이포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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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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