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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이 시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동시를 쓰는 아동문학인들에게 커다란 숙제와도 같다. 그래서 동시를 쓰는 모든 시인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읽는 동시를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추필숙 시인은 신작 동시집 <일기장 유령>을 통해 자신만의 해법을 내놓는다.

추필숙 동시집 '일기장 유령'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 추필숙 동시집 '일기장 유령' 표지 추필숙 동시집 '일기장 유령'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 도서출판 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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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오늘의 동시문학상'을 수상한 추필숙 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 <일기장 유령>은 기존에 발표했던 시인의 동시집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시인은 새로운 실험들을 동시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시도들은 시세계의 확장이나 시작법의 실험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시에 대한 시인 나름대로의 해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집을 읽었어요. 행을 많이 나누지 않고 길게 쓴 이야기 시가 많아서
짧은 동화를 여러 편 읽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관중앙초등학교 6학년 이지현 어린이)

이 시집 맨 뒤쪽에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시집을 미리 보여주고 받은 감상문과 소감이 수록되어 있는데, 어린이 독자들의 소감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위에 소개한 문장이다. 이 시집을 읽은 어린이는 행이 끊어진 동시가 아니라 이야기처럼 길게 산문으로 쓰인 시를 만나고는 동화 읽듯이 부담 없이 읽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 어린이 독자의 소감에서 알 수 있듯이, 추필숙 시인은 신작 동시집에 산문 형태의 동시를 많이 수록했다. 전체 53편의 작품 가운데 형태적으로 '산문시'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무려 25편이나 된다.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많은 분량을 산문시로 채운 것은 분명히 파격적인 시도임에 틀림없다. 기존에 많은 아동문학가들이 산문 형태의 동시를 발표하긴 했지만, 시집 한 권에 서너 편 수록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추필숙 시인은 이러한 흐름을 과감히 깨트리고 절반 가까운 분량을 산문시로 채운 것이다.

아이들이 시를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낯섦일 것이다. 이야기책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행을 내려서 쓰는 동시는 담겨 있는 이야기가 단절되는 느낌이 들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도 쉽게 읽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동시집을 들었다가도 한두 편 읽고는 이내 내려놓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추필숙 시인은 우선 형태적 파격을 시도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산문시에 동심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인의 산문시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화적 상상력과 함께 조금은 길게 풀어진 시 속에는 시적 함축과 함께 이야기의 단초들이 제대로 보인다.

'우리 동네에는 해뜨기 전 해마루 공원 가로질러 꽃집 모퉁이 돌아 나란히 출근하는 마법사 모자를 쓴 할아버지와 구두 신은 고양이가 있지 구두병원이라고 적인 간판인지 벽인지 문인지 스르르 열고 쑥 들어가는 절룩거리는 고양이와 대머리 할아버지가 있지 달 뜨면 문인지 벽인지 간판인지 스르르 닫고 달빛 속으로 퇴근하는 두 그림자가 있지.' - '구두 신은 고양이' 전문

구둣방 할아버지의 점포를 소재로 쓴 이 작품은 산문 형태를 띠면서 동화의 축약형 같은 느낌을 준다. 아이들은 이 짧은 시를 읽으면서도 시가 그리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산문시가 긴 것은 아니다. 길게 쓴 산문시들 사이에 조금은 역설적이지만 호흡이 짧은 산문시도 섞여있다.

'보자기 위에 늙은 호박 앉혀놓고 졸던 할머니
저물녘 겨우 한 덩이 팔고는 툭툭 털고 일어난다.
- 하늘도 해를 다 팔았구나!'
('해 떨이' 전문)

분명히 긴 줄글 형태로 쓰여 산문시로 보이지만 딱 세 줄로만 구성되어 있어 짧은 호흡으로 간결하게 마무리 된 작품이다. 이 시는 짧은 동시이지만 줄글로 되어 있어 어린이들이 읽는데 부담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세 줄 산문 속에 할머니의 하루가 이야기처럼 담겨 있어 동화적 감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길든 짧든 산문시 형태로 등장하는 동시들은 시에 담겨있는 이야기나 이미지가 운문보다는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기에 덜 부담스러워 보인다. 시인이 시도한 많은 산문시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동화의 한 장면으로 조금은 더 쉽게 다가가고 읽힐 수 있어 보인다.

필숙 시인은 산문시라는 형태적 변화로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소리'로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소리를 갖고 있는데, 시인은 숨어 있는 소리까지 꺼내 동시에 담았다. 소리는 어린이의 관심을 끄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다. 갓난아이가 딸랑이 소리에 반응하고, 노랫소리, 장난감 소리에 어린이들이 집중하는 것처럼 소리는 동심을 잡아끄는 첫 번째 도구인 셈이다.

시인은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리를 더 돋보이게 한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상황 속에서 '콕콕', '꼬꼬꼬', '꼬꼬댁' '꼬끼오' 등 닭을 연상시키는 소리들을 찾아내고(자판을 꼬꼬꼬), 감자밭에서 '쿨럭쿨럭' 할머니 기침소리를 들으며 땅 속에서 감자가 '쑥쑥' 자라는 소리도 시인은 찾아낸다(살구랑 감자). '냐아아아아아아암냐아아아아암' 하고 하품하며 고양이는 자동차 아래에서 나오고(긴 대답), 친구 생일 파티에 늦지 않으려는 바쁜 걸음에서 '뻘뻘뻘뻘' 소리를 찾아낸 시인은 이내 '헉 헉 축 하 해 헉 헉…' 과 같은 마음 급한 소리까지 들려준다(8월 1일).

일상에서 소리를 발견하는 동시를 통해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시인은 조금 더 나아가 소리를 가지지 않는 표정과 생각에서도 소리를 발견해 낸다. 오랫동안 게임을 하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에도 '꼬꼬꼬' 소리가 있고, 첫눈에도 나에게만 울리는 '알람' 소리가 숨어 있다. 지각하는 등굣길에도 '꾸르륵' 소리가 따라다니고, 언니들과 같이 외출하고 싶은 동생의 칭얼거림 속에는 '꽥꽥' 오리 소리가 숨어 있다.

추필숙 시인이 사용한 의성어는 단순히 소리의 느낌을 건네는 것을 넘어서 시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성어를 통해 시상의 전환을 꾀하기도 한다.




털,

길섶에서 놀던
풀벌레들
어서 피하라고

바퀴보다
꼭,
앞서간다.
- '경운기 소리' 전문

'털/털/털/털,'로 구성된 네 줄짜리 의성어는 어떤 풍경보다 앞서 달려오는 할아버지 경운기 소리를 잘 전달해주면서 시적 배경을 잘 환기시켜준다. 저 멀리서부터 경운기 소리 들려오는 한적한 시골길 풍경이 어떤 시적 설명보다 명확하게 네 글자 의성어로 그려진다.

(……)
그새
쉬는 시간
한꺼번에 몰려온
발 발 발 발
친구들 발소리
맨 뒤에
웅이가 서 있다.

다 나았다!
- '배 아픈 날' 중에서

'발 발 발 발' 이 네 글자 의성어에 양호실 풍경이 그대로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배 아픈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가 시적 기능이 강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추필숙 시인은 소리를 통해 어린이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그 소리에 마음과 상황을 제대로 담아내어 동시 속에서 '소리'가 차지하고 있는 역할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산문시 중심의 형태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소리'라는 도구를 통해 아이들의 주위를 환기시키려고 노력한 추필숙 시인의 의도가 아이들에게 동시를 읽힐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보다 더 친근하게 동시를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애쓴 시인의 노력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아동문학가들로부터도 칭찬받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 책 정보
  * 제목 : 일기장 유령
  * 지은이 : 추필숙
  * 출판사 : 도서출판 소야
  * 정가 : 10,000원
  * 콩콩동시 시리즈 07


일기장 유령

추필숙 지음, 황유진 그림, 소야(2016)


태그:#추필숙, #일기장유령, #동시집, #도서출판소야, #콩콩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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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문학가, 시인, 출판기획자 * 아동문학, 어린이 출판 전문 기자 * 영화 칼럼 / 여행 칼럼 / 마을 소식 *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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