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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101조는 8.15 이전 악질적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주로 해 가지고 만들어 논 법이올시다... 일제시대에도 반민족 행위를 하고 군정시대에도 역시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 이 사람들은 고만 새 나라의 영도권에서 제외시키고 이 새 나라 건국에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논는 것만이 우리의 가장 현명한 생각이라고 생각한 까닭에 여러 가지 고려해서 지금 배부해드린 32조에 망라돼 있습니다." - p.18

1948년 8월 17일 오전, 제헌국회에서 김웅진 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발의한다.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불렸던 일제 부역자의 처벌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것인데, 이는 친일 청산을 위해 대한민국에 주어졌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본 법안이 발의된 이후 국회에선 다양한 의견들을 진지하게 나누면서 법안의 승인에 대해 치열한 논의를 계속하였다. 그러다 스무날을 보낸 1948년 9월 7일, 재석의원 141명 중 찬성 103명, 반대 6명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된다. 일제의 36년 압제를 가까스로 벗어난 대한민국은 '친일 부역자'의 처벌을 시도하게 된다.

작년 말, 온 나라가 갑작스런 '근현대사 전쟁'에 빠져들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국민과 사학계의 격렬한 반대를 뚫고 신속하게 집필진을 꾸렸고 이제 이번달 28일이 되면 새로운 교과서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친일과 망각>
 <친일과 망각>
ⓒ 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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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걱정을 가득 안고, 책장에 꽂혀있던 <친일과 망각>을 꺼내들었다. 이 책은 탐사언론 전문 기관인 '뉴스타파'가 주도한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의 산출물로, 친일파 후손들의 현재를 추적하여 그들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부질없는 상상을 해 본다.

친일 부역자에 대한 색출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말이다. 새로 시작된 대한민국은 전체 국민의 합의를 통해, 일제로부터 제대로 단절되지 못했던 역사를 제자리로 돌리는 것에 동의하고 부역자들의 리스트를 정리한다.

독립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운동가들은 자유 대한민국에 돌아와서 부역자들을 처단하며, 불안했던 치안을 안정화 시킨다. 신속하게 안정을 찾은 새 나라는, 일제에 지배되었던 치욕의 역사를 정리하며 독립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반으로 상해 임시정부의 지도부를 통해 효과적으로 체계를 갖춰간다.

다양한 정치적인 노선의 갈등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친일 부역 세력들을 처단하는 것도 극심한 저항을 이겨내야 했으나, 일제 치하에서의 핍박과 치욕을 기억하는 '현명한' 민중은 정부 정책들에 가장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친미나 친중·친소 세력이 집요하게 세력의 균형을 위해 남과 북의 대리전을 종용하나, 독립된 나라를 기원했던 대한민국 정부는 그간의 염원을 모두 쏟아내듯 절묘한 '힘의 균형' 위에서 안정된 통합을 이뤄간다.

친일 세력은 정리되었고 '독립된' 통일 대한민국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반민족 행위 처벌법'은 여전히 제헌국회의 중요한 발의 법안으로 역사의 숙제로 남아 '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르는' 잔당들을 꾸준히 찾아내어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 끈질긴 노력과 강대국 사이에서의 주도성을 잃지 않았던 외교의 역량을 자랑스럽게 가르치면서, 친일 부역자에 대한 처단을 통해 반복될 수 없는 '역사의 비가역성'을 확보한다.

우리는 평화에 기반한 확고한 역사적인 사명을 통해, 미래의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사회 전체가 공유함으로써 풍요로운 내일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국민은 평등하게 존중받고, 국민 개개인이 추구하는 삶은 '무엇이 되기를' 강요받지 않은 채, 자유롭고 창의적인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하나, 둘, 셋!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레드선!'


괜한 상상이다. 행복감으로 자칫 감정이 '포슬포슬'한 따스함에 녹아버릴 뻔 했다. 가정에서 시작한 세 개의 짧은 문단일 뿐이지만, 저렇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던 짧은 시간마저 아득하다. 너무도 행복한 상상이나, '깨달아버린' 현실은 너무도 암울하다 못해 끔찍하다.

힘겹게 '식민지의 노예'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반민족 행위자' 처단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써 치러야만 했던 수많은 상처와 희생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게다가 단절하지 못한 역사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오염되어, 국가의 신경체계 말단까지 '끔찍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2013년이었나보다. 반강제로 참여했어야 하는 교육이 있었는데, 강연자로 초대된 이가 지금 KBS 이사장인 이인호씨였다. 가뜩이나 원하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불만으로 간신히 버티는 시간이었는데, 터무니없던 그녀의 발언들로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발언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후에도 다른 곳에서 계속 반복했던 주장이기도 하니 강연 내용 중 일부만 옮겨본다.

'지금 이 나라의 역사교육은 좌파들에 의해 매우 편향되어 있다. 전교조가 장악한 역사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사상을 주입함으로써,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불행하게 가르치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있는 건국절을 우리는 왜 만들지 않는가?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세워진 날이니, 건국절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그렇게 애를 썼는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광주사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강연을 듣는 내내 손이 떨리고 다리가 달그락 거릴만큼 분노가 느껴졌는데, 더 놀라웠던 것은 강연 이후 끝없이 이어진 '역사 전쟁'의 갈등이었다. 국가는 갑작스럽게 '올바른 역사관'을 주장하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고 나왔고, '국정교과서'를 주장하는 이들이 내뱉는 논리는 '친일파' 조상을 비호하던 이인호 이사장의 발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심어주겠다며 '변절자의 삶'을 성공으로 치장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것이고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정부수립으로, 북한은 국가수립으로 서술돼 있고 대한민국에 분단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돼 있다. 또 북한의 전후 도발은 축소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반노동자적으로 묘사하고 기업의 부정적 면만을 묘사해서 반기업 정서를 유발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돼 있다. (국정화 반대 세력은)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현재 7종 교과서에 가장 문제가 있는 근현대사 집필진이 대부분 전교조를 비롯해 특정 이념에 경도돼 있다. 정부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가 담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박근혜 대통령 (2015.11.10 국무회의 발언 발췌)

끊임없이 '식민사관'을 종용하며, 주인에게 복종하는 삶을 가르치는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국민이 있는가? 그런 삶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떳떳할 수 있는 부모나 스승이 있겠는가?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가르칠 수 없는 '국정교과서'가 가져올 미래가 끔찍하고 두렵다.

다가오는 11월 28일이면 집필 절차, 집필진, 포함된 내용 등 모든 면에서 '비밀리'에 만들어진 '국정 역사교과서'가 세상에 나온다. 그날이 오지 않기를 50퍼센트가 넘는 국민과 90퍼센트의 역사학자들이 간절히 주장했으나, 꾸역꾸역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서였다. 두려움으로 책꽂이의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친일과 망각>을 꺼내들고 '반민특위'가 성공한 '부질없는' 역사를 상상하게 된 이유가 말이다.

불쾌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1948년 설치된 반민특위는 특위 위원에 대한 암살기도, 김구 선생 암살,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대한 개정 등의 다양한 방해 공작 끝에, 1949년 7월 해체된다.

그후로 대한민국은 이념의 격전장이 되었고, 불안의 끝에서 미·중 강대국의 대리전으로써 한국전쟁을 치른다. 2016년 현재, 친일파의 후손들은 식민 치하에서 축적된 재산과 인맥에 기반하여 사회적으로도 매우 영향력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며 '기득권'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친일파'는 현대 대한민국의 '금수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학력과 직업 등을 확인한 친일파 후손 1177명 가운데 286명이 서울대 출신으로 나타났다. 비율로 따지면 22.8%다. 일반인들의 45배가 넘는 비율이다. 연세대학교 68명, 고려대학교 51명을 합치면 이른바 SKY 대학 출신이 3분의 1에 달한다. 친일파들의 후손은 특별히 머리가 좋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것일까?' - p.100

금수저인 그들은 높은 경제 및 교육 수준을 기반으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요직에 두루 포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혼맥을 이용하여 그들 간의 결속을 이룸으로써 사회적인 영향력을 더욱 더 강화해 왔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장악된 '자본의 힘'은 그들의 권세를 더욱 더 강고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들의 '세력'을 견제하지도 빼앗지도 못하게 되었다. 우리 헌법은 특수계급을 허용하지 않는다 했으나,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우리의 업보가 되어 그들을 '특수계급'으로 떠받들고 있는 처지이다. 오호 통재라!

비참함은 친일파의 삶을 독립유공자 자손들의 삶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더 두드러진다. 친일파에 의해 '기득권'이 장악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나게 하는 '독립운동가'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은 '독립운동가'를 대우하는데 인색할 뿐 아니라, 차라리 숨기려 애를 쓴 것만 같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쳤던 그들의 삶은 곤궁하다 못해 '비참하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어떤 부모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가르칠 것인가? 그렇다면, '식민의 치욕을 견디고, 지배자에게 굴복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역사는 과연 자랑스러울 수 있겠는가?

얼마 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유명해진 문화 콘텐츠 기업이 있다. 그 회사의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면,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대형 태극기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 하라'는 강요가 지나간다. 15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상당히 불편하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강요'한다고 자랑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칠 수 있어야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광고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는 만천하에 드러났으나, 그런 역사를 아이들에게까지 가르치게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 곧, '국정 역사교과서'라는 괴물이 세상에 나온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정보: <친일과 망각>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지음 (다람)


친일과 망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다람(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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