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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거리를 둘러싼 비판의 대부분은 거리와 도로 시설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다. 그것은 도시의 거리를 바라볼 때 또한 마찬가지다.
도로 주차된 모습과 시속 30km제한속도 표시 그리고 폭이 넓은 3차선 도로를 확인할 수 있다.
▲ 만남의 구역공사 전의 원래 마쎈거리의 모습 도로 주차된 모습과 시속 30km제한속도 표시 그리고 폭이 넓은 3차선 도로를 확인할 수 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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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렌도르프 플라츠(Nollendorfplatz)와 윈터펠드플라츠(Winterfeldplatz) 주변으로는 다양한 음식점, 술집, 상점 등이 있다. 이곳은 활기찬 베를린의 주요 장소 중 하나다. 베를린 여느 지역이 그렇듯 이 곳 또한 숱한 역사적 기억이 남겨진 장소이자, 동시에 근현대 베를린 역사에선 동성애자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등 성 다양성을 상징하는 장소다. 참고로 놀렌도르프 플라츠에는 나치 정권 하에 살해당한 동성애자들을 위한 기념비가 작게 마련되어 있다.

두 플라츠(광장)를 연결하는 마쎈거리(Maaßenstraße)는 기존의 역사와는 별개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20여년 전 스위스에서 발명되어 도입되기 시작한 이후, 이미 독일 주변 국가에서는 익숙한 만남의 구역(Begegnungszone)을 베를린에 만들기 위함이었다. 

만남의 구역은 차량과 자전거의 속도를 억제한 채 보행자가 우선인 곳이다. 베를린에선 마쎈거리가 2011년 시범사업으로 처음 제안됐다. 이후 베를린의 주요 장소(베르그만 거리, 체크포인트 찰리 일대 등)에 만남의 구역을 추가로 만들 예정이었다.

네덜란드의 경우, 만남의 구역에선 도로를 이용하는 보행자와 차량운전자가 동등하게 여겨지고, 스위스에서는 보행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독일 법상으로 도로에서 보행자는 우선이 되지 않기에, 도로 설계 등을 이용하여 보행자가 우선이 될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제한 속도 시속 20km와 쉽게 속도를 내 통행하기 어려운 좁은 양방통행로에서 차량과 자전거가 함께 다니고 있는 모습.
▲ 만남의 구역 공사 이후 모습 제한 속도 시속 20km와 쉽게 속도를 내 통행하기 어려운 좁은 양방통행로에서 차량과 자전거가 함께 다니고 있는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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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를 맡은 교통 및 환경계획 사무소 LK Argus(Planungsbüro LK Argus)의 기본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시속 30km미만으로 주행할 수 있는 속도 제한을 시속 20km미만으로 낮춰 보행자나 거주민에게 더 안락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마쎈 거리에선 평범한 도로 디자인으로 인해 시속 30km 제한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해서 곡선형 도로, 좁은 도로폭을 기본으로 진입로와 교차로에 다양한 색을 입히고 동시에 경사를 주어 운전자의 주의를 끄는 등 도로 디자인을 바꿔 시속 20km의 제한을 유도하도록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기존의 도로주차구역도 폐지하고, 도로 구조를 변화시키는 등 시민들의 제안을 바탕으로 공공 공간으로 꾸미기로 하였다.

전문 사무실의 기초 계획안을 바탕으로 전체 거리에 대한 거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2013년 말까지 두번의 시민 참여행사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토론을 벌였다. 이 장소를 더 활발히 이용하는 지역 내 어린이들과 학생들 또한 거리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실제로 공공 공간의 디자인은 선별된 아이디어를 토대로 실현되었다.

공사가 한창이던 2015년 6월 만남의 광장을 둘러싼 여론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공사 비용은 예상을 한참 뛰어 넘었고, 점점 드러난 디자인은 흉했고, 주민과 지역 상인 다수가 만남의 구역에 별 애정이 없다고 밝힐 정도였다. 거리 주차가 사라지며, 손님이 줄었다는 상인의 불평도 있는가 하면, 이제는 예약만 받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있다는 상인도 있었다.

개장을 앞둔 8월, 실제로 만남의 구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점차 긍정 의견도 늘었다. 또한 한 지역 문화단체는 '만남의 구역이 완공되더라도 이 장소는 완성된 것이 아닌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장소로 바라보겠다'며 이 구역을 완성시키기 위한 다양한 주민 참여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2015년 마쎈거리의 만남의 구역은 완공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운전 제한 속도를 낮춘 이 프로젝트는 독일 자동차 클럽 ADAC의 도시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단장된 지 1년이 지난 후에도 이 거리를 둘러싼 시선은 여전히 복잡하다. 독일 납세자 연합(Bun der Steuerzahler)은 매년 공개하는 부정도서(Das Schwarzbuch)에서 세금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낭비되었는지 그 명단을 공개한다. 마쎈거리는 세금이 낭비된 베를린의 한 사례로 소개되었다. 약 250m 길이의 거리를 재디자인하기 위해 계획비용만 20만 유로 그리고 공사비용이 80만 유로, 총 100만 유로의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들어간 비용에 비해 결과에 대한 평 또한 그리 좋지 않기도 하였다. 

브라운슈바이크 공대의 교수였고, 현재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로 활동 중인 발터 아커스 씨는 이 거리의 변화는 완전한 실패고, 도시설계적 관점에서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와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6세대째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기도 하다. 그는 프로젝트가 목적에 맞춰 고리타분하고 미성숙하게 결과를 내놓았다고 비판하였다.

몇몇 사람들은 차라리 이전 모습으로 돌려놓자고 불평하기도 하였다. 지역 정치인들과 전문가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는 새롭게 조성된 구역은 콘크리트로 점철된 채 아름답지 않은 이 장소를, 푸르른 장소로 만들기 위해 구역을 철거 혹은 부분 철거하여 새롭게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역 관청은 이미 100만유로가 들어간 프로젝트에 더 이상 지원을 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마쎈거리의 만남의 구역과 도로 시설의 모습
 마쎈거리의 만남의 구역과 도로 시설의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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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거리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생긴 장소를 잘 이용하고 있다. 공사 시작부터 공사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언론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이 장소를 바라보는 시선은 첨예하게 다르다. 이 장소를 둘러싼 정당간의 공방도 치열한 상황이다. 주차장이 없어서 손님이 줄었다는 불평도 있고, 날씨 좋은 날에도 아무도 만남의 구역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그 불평과 비판과는 정 반대되는 인터뷰도 있다.

이 거리를 둘러싼 비판의 대부분은 거리와 도로 시설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도시의 거리를 바라볼 때 또한 마찬가지다. 문제는 만남의 구역의 취지에 합당하게 그리고 보행자들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계획한 거리 디자인이 제대로 작동하느냐인데, 지금까지는 자전거와 차량의 공존 문제를 제외하고는 보행자 우선 구역으로서 잘 작동하고 있다.

지난 9월부터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의 베르그만 거리의 만남의 구역 조성 사업이 시작되었다. 내년 초에는 베를린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체크 포인트 찰리의 사업이 시작된다. 시범 사업으로 마쎈거리는 크고 작은 문제점을 낳았고, 앞으로 이 두 사업이 어떻게 문제점을 보완하여 진행될지 지역 주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남 PRIDE 상품에 기고된 글입니다.



태그:#독일, #베를린, #도시, #보행자, #마쎈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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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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