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끼'고 사는 '여'자입니다. 따끈따끈한 신곡을 알려드립니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백이 생깁니다. 이 글들이 당신에게 짧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친분이 두터운 자이언티와 크러쉬는 지난해 2월 콜라보레이션 곡 '그냥'을 발표했다.

친분이 두터운 자이언티와 크러쉬는 지난해 2월 콜라보레이션 곡 '그냥'을 발표했다. ⓒ 아메바컬쳐


가요계가 획일화 돼가는 추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종종 들린다. 1980~1990년대만 해도 김광석, 이문세, 김현식, 유재하,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등 각기 다른 색깔의 가수들이 각기 다른 음악을 선보였고, 그만큼 가요계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아니, 리듬 앤 블루스부터 힙합까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이 선보여지기에 더욱 다채로워진 듯하다. 하지만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댄스 음악'이 양적으로 많아지고 그 인기를 확장하며 이쪽 장르에 관심과 소비가 편중된 현실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이랬던 가요계가 요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모양새다. 그 중심엔 크러쉬와 자이언티 두 사람이 있다. 이들은 기획사에 소속되어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라는 기회를 따낸 여느 '젊은 가수'들과 분명 다른 노선을 걷는 듯 보인다. 하나의 목표로 음악을 한다기 보단,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음악을 해왔고 여전히 자신만의 음악을 해나가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도 소속사는 있다. 크러쉬는 다이나믹듀오가 설립한 아메바컬쳐, 자이언티는 YG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더블랙레이블에 소속돼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소속사를 의식하며 들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단지 크러쉬의 색깔, 자이언티의 색깔을 지닌다. 즉 이들의 음악은 개별성 혹은 독자성을 띤다.

[크러쉬] 아득하고 담담한 '크러쉬 감성'

 크러쉬는 '우아해', '잊어버리지 마', '가끔', '오아시스' 등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크러쉬는 '우아해', '잊어버리지 마', '가끔', '오아시스' 등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 아메바컬쳐


개인적으로 크러쉬란 가수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멍 때리기 대회'였다. 많은 참가자들과 경쟁해 크러쉬가 멍 때리기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가수의 담담한 음악은 '진짜'일 거란 믿음이 피어났다. 심박수까지 체크해 획득한 우승이라니, 이 사람에겐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할까.

싱어송라이터인 크러쉬는 그리움의 정서에 특화된 가수처럼 보인다. 지난 14일 발표한 신곡 '어떻게 지내'는 이별 후에 느끼는 헛헛한 마음을 차분하게 표현한다. '멍 때리기 대회 우승자'의 아우라가 여과 없이 느껴지는 곡이다. 그루브한 가운데 마음을 착 가라앉히는 지극히 담담한 분위기가 곡 전체를 감싼다. 고독하고 우울한 동시에 포근하고 따뜻한 '크러쉬 감성'을 대표하는 곡이다. 그의 앞선 곡 '잊어버리지 마'도 슬픈데 평온한 느낌을 주는 비슷한 감성의 노래다.

크러쉬의 음악들은 기본 베이스가 힙합인 듯하지만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켜 그 장르를 분명히 규정하기 여렵게 한다. 리듬 앤 블루스, 네오 소울, 뉴 잭 스윙 등 주로 흑인 음악을 추구하는데 그런 장르적 구분을 던져버리고 단지 '크러쉬 감성'이라고 표현해도 될 법한 개성을 지닌다. 꿈 속처럼 멍하고, 진공상태 처럼 몽실몽실(?)한 음악이다.  

[자이언티] 순수한 마음 느껴져 '짠한' 음악


자이언티는 여러모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가수다. 그를 알린 '양화대교'의 자전적 이야기, 그 깊이에 감탄한 음악팬들이 많을 것이다. 분명 착한 가사의 노래인데도 가장 먼저 세련됐다는 생각부터 드는 게 자이언티 음악이 갖는 특징이다. 장르로 따지자면 크러쉬처럼 힙합, 리듬 앤 블루스, 어반, 재즈, 레게, 네오 소울 등을 아우르는 흑인 음악 쪽이다. 좀 더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힙합에 네오소울을 더한 음악을 자이언티는 추구한다.

하지만 자이언티 역시 장르라는 울타리로 묶어둘 수 없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 중인 독자적 뮤지션이다. 가령 많은 사랑을 받은 그의 곡 '꺼내 먹어요'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만 놓고 봤을 땐 완전한 '힐링송'이다. 하지만 자신의 노래를 초콜릿 같은 음식에 빗댄 표현법들이 '착함'이 주는 심심함을 상쇄시키고 보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감성을 부여한다.

자이언티는 스토리와 메시지가 확실한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노 메이크업', 세상이 나를 찾고 치켜세워도 꾸준하게 내 음악을 할 뿐이라는 '쿵', 특히 <쇼미더머니5>에서 선보인 노래 '쿵'은 자이언티의 어릴 적 이야기로 시작하는 지극히 자전적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다.

예측할 수 없는 음의 흐름이 인상적인 자이언티의 노래들은 언뜻 들으면 반항기 넘치지만 지극히 순수한 감성으로 충만하다. "너무 순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늘 선글라스를 낀다"는 자이언티는 자신의 본 얼굴처럼 '착함'을 베이스로 하는 음악을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의 곡을 들을 때 마음 한쪽이 저릿해지는 '짠함'을 느끼곤 한다. '양화대교'에서 부모님에게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외치는 속 깊은 아들의 모습이 자이언티 음악의 맨얼굴이 아닐까. 참, 그의 개성 있는 보컬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색깔이다.



크러쉬와 자이언티. 두 싱어송라이터의 공통점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우아함'이다. 그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담담하고 진솔하고 내면적인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아한 인상을 풍긴다.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이들의 음악 스타일과 그 음악에 깃든 자신만의 진한 감성이 대중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

유행하는 말로 '음원 깡패'로 부상한 이들의 위상은 주목할 만한 가요계의 흐름이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발라드도 아니고, 중독성 있는 후크송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힙합도 아닌 두 사람의 '정의 불가' 음악이 가진 우아한 매력. 이 매력은 '듣는 귀'가 높아진 대중을 만족시키며, 획일화된 가요계를 걱정하는 이들의 한숨 또한 거두어준다.

크러쉬 자이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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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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