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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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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이 주변 환경을 탓하며 절망에 빠질 때가 많다. 질병, 실직, 이별 등 본인의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절망은 더 깊어진다. 시련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시인이자 수녀인 이해인씨는 종교적 활동과 문학 활동을 병행하다 2008년 갑작스럽게 대장암 진단을 받는다.

다른 이라면 세상을 원망하고,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텐데 그는 '고통이 주는 축복의 수혜자가 됐다'며 감사했다. 그리고 올해 초, 그녀 생애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 40주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의 맑고 밝고 깨끗한 마음은 세상의 깊은 시련과 어둠도 물러가게 하는 힘을 가졌다. 아래는 이해인 수녀와 지난 6일 메일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 40주년을 맞이했다.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 40주년을 맞이했다.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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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장암 진단... "내 몸에 미안하다고 사과해"

- 선생님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 40주년을 맞아 올해 초 개정판을 냈어요. 책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펴낸 수십 권의 저작물이 있으나 서툴긴 해도 가장 순수하고 풋풋한 열정이 살아있는 이 첫 시집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34편의 시들 중에 '민들레의 영토', '해바라기 연가', '별을 보면'이라는 시를 독자들이 특별히 좋아하던데 저도 그렇습니다.

- 일흔이 넘으셨는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삶이란 무엇인 것 같으세요?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생각 뿐입니다. 마음엔 아직도 소녀가 살고 있는데 벌써 고희를 지났다니 실감나지 않지만 현실입니다.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길 위의 인간으로 오늘도 행복하네요. 살아서 움직이고 길을 가는 그것이 인생이겠지요. 움직임을 멈추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태를 우리는 죽음이라 부르고요."

- 2008년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차례의 힘든 치료와 투병 기간을 거치셨습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내게 왜 이런 시련이!'라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나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원망이나 불평의 마음 같은 걸 지니지 않았습니다. 아픔은 분명 힘든 거지만 고통이 주는 축복의 수혜자가 된 것을 감사하기도 하면서 암이란 친구와도 잘 동행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투병하면서 제가 새로 얻은 별칭이 '여장부'랍니다. 명랑 투병하는 환자답게 관리를 잘 못해서 병이 난 것 같아 내 몸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하였지요. 하하."

- 선생님은 어렸을 땐 어떤 아이였나요?
"전후 세대라 그런지 왠지 좀 침울하기도 하고, 매우 새침한 모습을 지녔던 것 같아요. 늘상 책을 끼고 살면서 미래의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 창경초등학교 6학년 때 제일 많이 이야길 나눈 단짝친구가 안현숙이에요.(캐나다에 거주하는 이 친구는 강주은의 엄마로, 현재 배우 최민수의 장모가 되었음) 지금도 '사랑하는 꼬마친구야!'라고 편지를 보내오곤 한답니다."

- 수녀가 되기로 한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을 것 같습니다.
"그 누구보다 깊은 믿음의 소유자인 어머니와 언니(13년 연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먼저 수도자의 길을 간 언니를 따라 수녀가 되기로 차차 마음을 굳혔지요. 인간적으로 가장 차갑고 슬펐던 기억은 어머니의 별세입니다. 지금도 자주 꿈에 어머니를 뵙는데 제 존재의 뿌리이기도 한 엄마와의 사별이 저에겐 참으로 크나큰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자리까지 채우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으나 늘 품위 있고 강인한 성품으로 신앙인의 본을 보인 어머니가 제겐 가장 훌륭한 멘토셨거든요."

-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무엇이었나요?
"여고를 졸업하고 갓 스무 살에 수녀원에 입회한 것이 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라 볼 수 있고요. 1976년 종신서원을 하면서 펴낸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은 시인으로 가는 길의 전환점이 되었지요. 그리고 2008년 7월 암 수술 이후의 투병생활 또한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서 암 발병 이후의 삶을 저는 이렇게 표현해 봅니다. '삶에 대한 감사는 더 깊어지고, 인간에 대한 사랑은 더 애틋해지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은 더 순수해지고, 모든 이를 위한 기도는 더 간절해졌다'고요."

탈옥범 신창원,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좋다기에 그리 부르라 해

- 탈옥범 신창원씨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직접 쓴 시 5편이 채워지면 수녀님께 보내겠다고 했는데 시를 받으셨나요?
"시는 좀 더 뜸들여서 보내겠다고 해서 아직은 못 받았고요. 한동안은 시 암송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했어요. 많은 이들이 안 믿는 눈치인데 그의 편지는 맞춤법도 정확하고, 내용도 매우 문학적이라 되풀이해서 읽게 되는 매력이 있어요. 그가 따르던 어떤 집사님을 통해서 소개를 받고 제가 그에게 책을 보낸 것이 만남의 계기가 되었지요. 청송으로, 전주로 몇 번 면회를 가고 전화 통화도 몇 번 하였어요.

2008년 제가 암에 걸린 사실이 신문기사로 났을 때 그는 한동안 소식 뜸했던 제게 <샘터> 편집실 기자를 통해 쾌유기원의 글을 보냈는데 이것이 기사화되기도 하였어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분이기도 하지만, 그가 계속 선한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정신적인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수녀님보다는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좋다기에 그리 부르라고 했어요."

-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국군장병들이 애독하는 잡지입니다. 부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병들에게 어떤 시를 들려주면 좋을까요? 
"<답게> 운동 추진하는 단체에 제가 드린 축시의 일부로 제 답변을 대신하고 싶네요.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으로 빚어지는 비극과 불행이 많은 시대를 사는 것 같습니다. 나부터 지금부터 여기부터 다시 시작하는 노력이 우선되지 않고는 악순환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큰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만 더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키워가야 하고 그 노력해야할 사람이 바로 나 자신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답게(이해인)

작지만 아름다운 우리나라
동서남북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웃음소리 들려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답게> 살아야지요
이기심을 버리고
더 순하고 겸손하게
다른 이를 함부로 판단하는
편협하고 차가운 눈길을 거두고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답게> 살아야지요
선한 마음 갈고 닦고
밝은 웃음 꽃피우며
고운 말씨로 격려하면서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함께 길을 가요, 우리
함께 힘차게 나아가요, 우리


-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비결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시련과 역경을 역이용해서 축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도 키우려면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지혜의 덕목이 필요합니다. 지혜를 키우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이라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투병하면서 부정적으로 한탄할 수 있는 그 시간에 저는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듣고, 자연과도 교감하면서 선한 마음을 길들이려 노력했습니다. 나도 아프지만 이 세상의 몸, 마음이 아픈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든 만남으로든 작은 위로자가 되자고 결심했습니다."

- 오늘도 수고가 많은 이 나라의 군인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언젠가 부산일보에 쓴 '군인을 위한 기도'라는 에세이의 마지막 구절을 소개하고 싶고요. 국군장병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겁니다.

'주님, 이 땅의 모든 군인들이 몸 마음 건강하게 성실하게 인내롭게 맡겨진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자신을 넘어서는 넓은 마음과 동료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으로 나날이 새롭게 무장하는 투철한 투사이게 하소서. 그들의 가족인 우리 또한 변함없는 초록의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보고 싶고 걱정되는 애틋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각자의 자리에서 씩씩하고 용기 있고 절제 있고 참을성 많은 '군인정신'으로 우리 또한 일상의 싸움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늘 함께하여 주소서. 아멘'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m.post.naver.com/my.nhn?memberNo=4832522)>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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