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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실 앞이 시끌벅적합니다. 무슨 일인가 얘기를 듣고 CCTV를 돌려보니 경비 아저씨가 택배기사와 멱살을 잡은 채 서로 밀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일주일이 못가서 이번에는 방문객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사무실로 뛰쳐와 소리를 지릅니다. 그 경비 아저씨와 한판 하고 분이 안 풀린 거지요. 그분이 근무하는 동안 소란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슴에 '火'가 많으면 세상이 온통 불만투성이로 보입니다. 그걸 한자가 너무도 잘 표현했습니다. 사람의 머리 양 옆에서 화염이 솟구치고 있지요. 이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온 집안은 물론, 세상을 불사릅니다. 미국에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총기를 난사하는 일이 끊이지 않지요. 유럽은 이미 테러의 공포가 일상화된 것 같습니다. 화는 솟구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고 바람을 탄 들불처럼 번집니다. 반복되면 증오로 굳어지지요.

두 녀석이 꼬맹이였을 적, 집안을 온통 들쑤시며 뛰놉니다. 당시만 해도 1인 3역을 했던 아내는 뒤늦게 퇴근하고 와서 폭격 맞은 집을 치우느라 저녁마다 아이들을 닦달합니다.

'엄마가 몇 번을 말했어. 이렇게 어지르고 놀면 엄마 힘들다고 했어, 안했어!'

저는 하필 그날따라 밤늦게 들어갔더니만,

"일찍 와서 애들좀 보라니까, 너무하는거 아냐!"

온통 쿠사리를 뒤집어씁니다. 아침에 아내 목소리가 다시 커졌습니다.

'아니 씽크대 또 막혔어! 지난달에도 3만원 주고 뚫었는데. 아, 정말!'
'.........'


정신없이 아침을 보내고 출근하던 아내가 운전 중에 순간 잊고 있던 씽크대 막힌 게 생각났는지 전화를 했습니다.

"아, 그거 자기가 잘 뚫어봐, 좀!"

하하하. 지금 누가 계속 화를 내고 있나요. 씽크대가 막혀서? 픽 쓰러져 자고싶은데 애들이 집안을 어지럽혀서? 남편이라고는 애들이랑 좀 놀아줄 생각은 안하고 나돌아 다녀서? 멀쩡히 운전하다가 화를 내는 건 누군가요. 씽크대가 화를 내는게 아니지요. 원인을 밖으로 돌리는 순간 화는 걷잡을 수 없습니다. 내 맘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는 이 세상이 몽땅 화 덩어리로 변합니다.

결국 화를 내는 내가 문제지요.

아이들이 어지럽히고 노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요. 막힌 씽크대는 뚫으면 됩니다. 자기만 혼자 즐거운 남편은? 물론 제가 잘못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즐거우면 저는 무조건 즐겁습니다.

화를 다스리기 쉽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화를 내는 원인을 자꾸 외부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는 거지요. 주변에서 상식을 벗어나 어이없이 행동할 경우 물론 화가 나지요.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화'는 어디서 나오나요.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번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고 치면, 1년 52주, 10년이면 오백번 이상 화를 냈겠네요. 그 오백번 화, 누가 냈나요. 물론 옆에서 건드렸겠지요. 그러나 천번 만번 화를 내는 것은 내가 내는 것이고, 그 화는 내 안에서 나오지요.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화는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냥 '팍' 화를 내는 건 어떨가요. 그 순간은 시원하겠지요. 그러나 솟구치는 순간 이미 엄청나게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망치고, 나중에 반드시 곱배기로 불어난 '화'를 돌려받습니다. 게다가 다 풀리지 않은 화는 무의식으로 들어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틈이 나면 다시 솟구칩니다. 악순환이지요.

혼자 있을 때 허공에 쏟아내는건 어떤가요. 그것도 화를 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최근 화가 났던 때를 가만히 돌이켜 보십시오. 기분이 어땠나. 몸이 어땠나. 목과 어깨의 근육이 경직됩니다.

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굳어 있는 사람은 컴퓨터를 많이 해서 그런게 아니고, 오백번 화를 내는 동안 그때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이 경직되고 그것이 누적된 것이지요. 그 화가 많던 경비아저씨, 결국 건강이 안 좋아서 그만두셨습니다.

화가 많으신 분들, 무서운 호랑이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일단 화를 내면서 남탓을 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평생 화내다 끝냅니다. 자식에게, 옆 짝궁에게, 동료에게, 자기 자신에게, 심지어 지나가는 강아지에게도 끝이 없지요. 화는 내게서 나옴을 인정하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그 다음, 자신이 화를 내는 순간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무지 어렵지요. 화가 나는 순간은 폭발적이기 때문에 '훅'치고 들어오면 정신없이 당합니다. 그러나 화를 낸 다음에라도 깨달아야 하는 거지요.

그러다 훈련이 되면 화가 폭발하기 전에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때 두눈 부릅뜨고 정신 바짝 차려야 됩니다. 이미 커진 화는 잡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새끼 때 잡아야 쉽습니다. 싹이 보일 때 단칼에 잘라내야지요.

그 화에 대한 관찰자적 의식이 생기면, 처음엔 무지 고통스럽습니다. 화가 가진 파괴적인 에너지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츰 훈련이 되면, 자신이 왜 지금 화가 나는지 자각이 옵니다. 대개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화가 나지요. 그 자기 뜻이란 뭔가 욕망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뭔가 욕망한다는 것은 결핍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게 뭔가 찾아지면 정체가 드러난 '화', 호랑이 같던 이것이 어느새 고양이가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급격히 힘을 잃습니다. 그 다음엔 시간이 해결해 주지요. 이것이 반복적으로 훈련이 되면 오백번이 오십번으로 줄고 그 시간도 줄어들게 돼 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도 닦는게 말처럼 쉬우면 스님들이 평생 산에 있을 리가 없지요. 그리 애를 써도 이 호랑이가 울부짖으면 할수 없습니다. 얼른 밖으로 나가세요. 들길이라도 거닐면서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얘기해보세요.

'내 힘으로는 안되나니, 좀 도와주세요!'

내게 있는 거대한 근원을 향해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진보를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 안의 첫번째 호랑이, '火'.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다스려야 됩니다.
자신은 물론 주변이 편안해지니까요.

화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사람 자신이 가장 큰 해를 입습니다. 기의 흐름이 막히면서 몸이 망가지지요. 화는 백해무익을 넘어 큰 병입니다.
▲ 화 화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사람 자신이 가장 큰 해를 입습니다. 기의 흐름이 막히면서 몸이 망가지지요. 화는 백해무익을 넘어 큰 병입니다.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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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화, #요원의 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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