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엔 어둠만 왜 나를 그댄 모르죠/ 아직 아직 나 여기에 있어요/ 매일 매일 그댈 보러 왔어요/ 잠들 수 없어서 늘 같은 꿈에 취한 채/ 다시 밤이 또 두려워지겠죠/ … /아니 아니 날 떠나지 말아요/ 아직 아직 더 내 곁에 남아줘/ 언젠가 우리 닿을 수 있을 테니"

밴드 '단식광대'의 노래 '새벽달'의 가사 일부다.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세월호 참사를 다룬 노래다. 세월호 안에 있는 누군가가 배 안에 있는 창문으로 깜깜한 바닷 속을 보며 두려워하고 있는 게 연상된다.

지난달 24일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대강당에서 2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본선이 열렸다. '단식광대'는 이 가요제 최고의 상인 대상을 탔다. '단식광대'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조반(37ㆍ가명)씨를 지난 3일 부평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현재 경기도 용인에 사는 조씨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인천 남구 석암초교를 다녔다.

2008년 결성한 팀, 잦은 멤버 교체로 불안정    

 2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본선에서 노래하는 밴드 ‘단식광대’.

2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본선에서 노래하는 밴드 ‘단식광대’. ⓒ 김영숙


단식광대의 멤버는 현재 조씨와 보컬인 구자랑, 두 명이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때 함께 한 키보디스트는 현재 그만둔 상태다. 앞서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본선까지만 함께하기로 했다.

"보컬인 자랑이가 서울에 사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다른 지역에 가서 인터뷰에 혼자 왔습니다. 밴드를 2008년에 만들었는데 멤버 교체가 잦았어요. 우리 밴드를 거쳐 간 사람이 20여명 됩니다. 결혼이나 직장 사정 등으로 탈퇴하기도 하고, 음악적 갈등으로 헤어지기도 하죠. 자랑이하고는 2년 6개월 정도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밴드 세계에서는 멤버 교체가 흔한 일이란다. 조반씨가 소개한 '뮬(http://www.mule.co.kr)'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구인구직란이 있다. 그곳에는 멤버를 찾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2008년에 베이시스트와 둘이 팀을 결성하고 멤버를 구했는데, 공연은 2013년부터 했어요. 드러머를 구하는 데 1년, 보컬 구하는 데 6개월, 그러다 또 멤버가 나가고 들어오고를 반복하다가 2013년부터 밴드가 안정됐죠. 얼마 전까지 홍대에서 공연했던 팀들 중에 지금은 없어진 팀이 많아요. 새로운 팀이 생기기도 하지만 해체되거나 활동을 중단하는 팀도 많습니다. '크라잉넛'처럼 20여년 가까이 멤버 교체 없이 활동하는 팀은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2013년에 5인조 풀(full) 밴드로 겨우 결성했지만 또 다시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팀을 나갔고, 키보디스트와 보컬, 조씨 셋이 남았다. 멤버를 충원할까도 생각했지만 일단 그냥 가보자는 생각으로 2014년 7월부터 이번 평화창작가요제에 참가했던 3명으로 팀을 구성해 2년간 활동했다. 모던 록과 포크 계열의 노래를 주로 부르는 단식광대는 이펙터(특수한 효과를 사용해 효과음을 낼 수 있는 기기)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요. 곡에 사회적인 문제도 담으려고 하고요."

직장생활 하다가... '이렇게 살아야하나?'

조씨는 고등학교 때 메탈 록밴드에서 기타를 쳤다.

"중학교 3학년 때 기타를 처음 배웠어요. 삼촌 집에 가니까 망가진 통기타가 있었는데 저한테 주더라고요. 집 근처에 있던 YMCA에서 30일 코스 통기타 강좌를 열어서 거기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 중학교 2학년 때 어떤 선생님이 밴드 '포이즌'이나 '메탈리카'의 음반 테이프를 줘 들었는데, 좋아서 배우고 싶었죠. 처음에는 서점에 가서 혼자 책 보면서 기타를 쳐보기도 했고요."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한 선배가 일렉기타를 주면서 오디션을 보라고 해 밴드에 합류한 후 3년간 기타를 많이 배웠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자연스레 밴드를 찾았지만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고교생활 3년간 기타를 쳤는데 왜 떨어졌냐고 물으니, 본인도 모르겠단다.

조씨는 초등학교 때 TV 드라마에서 대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농활)을 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그 기억이 대학에 입학해서도 남아 있어 14박 15일의 여름농활을 따라갔다. 학생회에서 준비한 농활이었는데, 이른바 '운동권'에는 관심이 없던 조씨는 농활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동기가 부른 '민들레처럼'이라는 노래에 반했다.

"민중가요였는데 술이 취해서 그랬는지 진짜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노래 부르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어서 찾아간 곳이 민중가요 노래패였습니다."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음악활동을 한 조씨는 대학 졸업 후엔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하고 싶은 일을 취미로라도 하자'라고 결심하고 홍대에서 카피 밴드를 시작했다. 카피 밴드란 기존의 곡을 따라 하는 밴드를 말한다.

"카피 밴드를 하다가 기타 레슨을 받고 작곡 공부를 하면서 내 곡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카피 밴드에서는 창작곡을 연주하고 싶어 하지 않아 새롭게 팀을 꾸린 게 지금의 '단식광대'입니다."

밴드 이름, 카프카의 소설 <단식광대>에서 따와
  
 밴드 ‘단식광대’ 보컬인 구자랑씨가 디자인한 작품. 디자인을 전공한 구씨는 재능기부로 포스터를 만들어주고 있다.

밴드 ‘단식광대’ 보컬인 구자랑씨가 디자인한 작품. 디자인을 전공한 구씨는 재능기부로 포스터를 만들어주고 있다. ⓒ 구자랑, 김영숙


2008년 밴드를 처음 결성할 때 함께한 베이시스트가 지은 밴드 이름이 '단식광대'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단식광대'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베이시스트가 재즈를 좋아했는데 우리나라의 어떤 재즈기타리스트가 연주한 '단식광대'라는 곡을 좋아해 카프카 소설까지 읽었대요. 저도 소설을 읽고 연주곡도 들어봤는데 좋더라고요."

원래 조씨는 '웃기고 싼 티 나는' 이름을 지으려 했지만, 음악을 진중하게 할 거면 이름도 제대로 짓자는 베이시스트의 제안에 동의해 '단식광대'로 결정했다.

2008년 팀을 결성할 즈음 우리나라에 '광우병 파동'이 있었다. 당시 팀원들은 주말마다 합주를 위해 모였지만, 개인 악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악기는 합주실에서 빌리고, 연습이 끝난 후 광화문으로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있던 이들은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그 초심은 지금도 '단식광대'를 지탱하고 있다.

소설 '단식광대'의 주인공인 단식광대의 행동과 흡사하기도 하다. 단식광대는 마을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고 존경까지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서커스단이 들어오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더 재미있고 신나는 걸 접한 마을 사람들에게 단식광대는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나중엔 서커스단 동물우리에 갇혀 동물 취급을 받으면서도 예술행위를 계속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결국 죽고 만다. 조씨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예술도 '많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랑이도 저처럼 음악 전공자는 아니에요. 디자인을 전공했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어요. 귀국해 관련 직장에 다니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음악학원에 다니면서 노래와 작곡을 배웠습니다."

조씨는 2년 6개월간 호흡을 맞춘 자랑씨 '자랑'을 한참 이어갔다.

"자랑이는 처음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면 잘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요. 얼마 전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페미니즘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스스로 공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실력도 뛰어나요. 홍대에 '빵'이라는 음악클럽이 있는데, 저희가 2년간 매달 공연하고 있거든요. 클럽 사장이 자랑이가 디자인 전공한 걸 알고는 포스터를 만들어달라고 해,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몽환적이지만 메시지 담은 노래를

'단식광대'는 1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도 참가해 30개 팀을 뽑는 1차 예선을 통과했다. 홍대 클럽 '빵'에 붙어있는 2회 인천평화창작가요제 포스터를 보고 '이번까지만 해보자'고 용기를 냈다.

"곡 자체가 침울해 잘하면 예술상 정도로 생각했지 대상은 생각도 못했어요. 본선에 오른 팀 모두 개성이 있고, 곡도 좋았거든요."

대상곡인 '새벽달'은 조씨의 곡에 백인경씨가 가사를 붙여 탄생했다. 문학을 전공한 백씨는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아이돌 노래를 작사하기도 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백씨에게 조씨가 세월호 추모곡으로 준비한 곡을 들려주자, 백씨가 가사를 붙였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많이 울었어요. 2014년 7월에 만든 노래인데, 곡을 만들고 나서 계속 부르고 다녔어요. 세월호 광장에서 섭외가 와 부르기도 했고요. 올해 5월께에도 세월호 광장 분향소 앞에서 공연했는데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죠."

'단식광대'는 1년에 70여 차례 공연한다. 5일에 한 번 꼴이다. 조씨는 용인에 있는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2시간 걸려 서울까지 공연하러 온다. 집에 가면 새벽 1시가 넘는다. 회사에 출근하고 정신없이 공연하고 지내는 것을 고민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때에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 참가했다.

"우리를 모르는 시민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반응을 보여줬어요. 우리가 해온 것들이 의미가 없지 않았구나, 힘을 얻었습니다. 몽환적인 소리를 내면서 빤하지 않은 노래를 만들려고 해요. 그러면서도 감성과 메시지가 있는 곡을 만들고 싶습니다. 내년 초에는 앨범을 낼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단식광대 새벽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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