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 설리, 간지나는 미소 31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패션왕>시사회에서 곽은진 역의 배우 설리가 미소를 짓고 있다. <패션왕>은 2011년 연재를 시작한 뒤 각종 패러디 열풍과 신조어를 탄생시킨 기안84 작가의 동명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간지에 눈뜬 후 가장 멋진 남자가 되기로 결심한 주인공 우기명의 인생을 건 도전을 담은 영화다. 11월 6일 개봉.

지난 2014년 영화 <패션왕>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설리. ⓒ 이정민


걸그룹 출신의 배우 설리가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한숨 섞인 소리가 들린다. 한숨이 섞이는 건 그의 행보가 혁명을 운운할 만큼 전복적이지 않아서다. 그의 행동이 그처럼 돌출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 한국 사회가 여성 연예인의 성을 도착적으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설리는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휘핑크림을 짜먹는 사진을 한 장 올린다. '최강 남자'의 준말이든 '최강 *지'의 준말이든 '최자'라는 이름의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구설수에 올랐던 터라, 그 정도 사진도 즉각 성적인 의미로 해석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예명을 가진 14살 연상의 남자와 대놓고 연애하는 걸그룹 멤버라니. 무대 위에서는 '나'를 위한 교태를 연기하되 현실 세계에서는 '순수한 소녀'로 남아야 하는 아이돌이 판타지의 회로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순간, 그가 이미지에 입는 타격은 크다. 그런데 애초에 설리는 다른 걸그룹 아이돌과는 조금 달랐다.

소녀 판타지에서 벗어난 설리의 행동

 설리가 개인 sns에 올린 사진들. 설리는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사진들을 통해 '수줍고 예쁜 소녀'라는 틀을 넘는다. 이 사회가 보려하지 않았던 자신의 본 모습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설리가 개인 sns에 올린 사진들. 설리는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사진들을 통해 '수줍고 예쁜 소녀'라는 틀을 넘는다. 이 사회가 보려하지 않았던 자신의 본 모습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 @jelly_jilli


한국 사회에서 '소녀'는 전형적으로 '비행 청소녀'와 '(예컨대) 김연아'로 양분되어 멸시와 숭배 사이를 진동하는 존재이면서, 그런 진동의 어느 즈음에서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존재다. 이런 복잡한 소녀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상품화하는 것이 걸그룹이다.

<프로듀스 101>이 선보였던 것은 우리 시대의 소녀상을 재생산하는 소녀들 무리였다. 꿈을 위해 경쟁을 뚫고 달리는, 성실하고 순수한, 그러면서도 재능과 욕망을 가진 소녀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이런 이미지와 서사는 '삼촌들'을 위한 "건전한 야동"으로 의도되었을 뿐이다. 애초에 판타지였다는 말이다.

설리는 몇 년 전부터 이 소녀 이미지로부터 계속 미끄러지고 있었다. 중국어 욕설을 내뱉은 것이 공중파를 타거나, 무대 위에서 안무를 대충한다는 논란이 일었었고, 인터뷰 자리에서 불성실하게 굴었던 일 등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최자와의 열애설이 터졌고, 설리는 최자와 키스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대중은 당연히 도발당했다. '소녀'의 성은 상품화되었을 때만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걸그룹 f(x)를 탈퇴하여 연기자로서의 독자노선을 선언한 것은 일견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연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설리는 더이상 걸그룹 시장이 원하는 '우리의 건강한 소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휘핑크림 사진 역시 다분히 의도적이다. 설리에게 '불온한 섹슈얼리티'는 이미 일종의 전략이 되었다. SNS에 사진을 올릴 때,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 그렇게 '보는 시선'을 되돌려주면서 이 사회가 보려하지 않았던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렇게 질문한다. "설리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사람들인가, 설리 자신인가?" 그러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성적 대상화인가, 성적 주체화인가?" 설리는 자기에게 던져지는 시선을 잡아, 자기 주체화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

상식을 운동으로 관철시켜야 하는 사회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어느새 설리는 "Free the Nipple(젖꼭지를 해방하라)”라는 페미니스트 구호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어느새 설리는 "Free the Nipple(젖꼭지를 해방하라)”라는 페미니스트 구호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 참여사회


이어서 편안하게 찍은 셀카에서 젖꼭지가 보이네 마네로 설왕설래했던 대중은 또 한 장의 사진으로 움찔한다. 바로 '시골길 노브라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설리는 쾌활한 몸짓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데, 트레이닝복 밑으로 젖꼭지가 도드라진다.

관련 기사 댓글에는 "공인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옷차림"이라는 평가까지 달라붙었다. 당연하게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잘못인가라는 두둔에서부터 브래지어가 여성의 몸에 끼치는 해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온라인상에서 오고 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설리는 "Free the Nipple, 젖꼭지를 해방하라"라는 페미니스트 구호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Free the Nipple' 캠페인은 남성의 상의 탈의는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여성의 상의 탈의는 검열 및 단속의 대상이 되는 법적, 제도적 불평등을 문제 삼는다. 이런 불평등은 여성의 몸을 성(性) 그 자체로 인식하면서 남성의 몸에 대한 타자이자 남성의 소유물로 이해하는 오래된 사고방식에 근거한다. 따라서 젖꼭지를 둘러싼 금기를 깨는 것은 지나치게 성애화되어 있는 여성의 몸을 해방시키려는 움직임이자, 여성도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상식을 강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브라 캠페인'도 이와 함께한다. 그러므로 노브라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운동이 된다. 50년 전에도 여자들이 하던 이야기다.

운동과 아이콘이 서있는 자리는 그 사회가 멈춰있는 자리를 드러낸다. 속옷의 탈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여전히(!)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나 설리가 혁명의 아이콘인 것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설리는 애초에 셀카에서 노브라가 문제가 되었을 때, 이 '한심한 사람들'이 무엇을 보는지 확인했을 터다. 그 한심함이 설리에게는 주목을 끄는 전략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그 한심함이 여전히(!) 설리의 행보 정도를 흥미롭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손희정 시민기자는 문화평론가입니다. <여/성이론>, <문화/과학> 편집위원입니다.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고,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0월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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