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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는 분 중에 버섯 농사를 짓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아이들을 다 키웠으니 가업인셈이지요. 버섯 비닐하우스가 여섯동이나 돼서 손이 많이 가는지라 외국인 근로자 몇분과 함께 일했는데 지난 봄이 오기 전 어느 날 새벽 그만 불이 났습니다. 모두 태우고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 새벽 허허 들판에 서서 십여대의 불자동차가 내는 굉음 속에 미래가 불타는 광경을 보는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우연히 건너서 듣고, 한달 즈음 지나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어찌 위로를 해야 할까 싶었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어냐는 듯 고요했습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그 모습에 제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한 성격에 농사 지으며 소일거리로 책을 보는 분입니다. 그런데 저런 큰일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고요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종교인들 가운데 소위 말하는 '영성'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영성이란 말이 주로 기독교인들만 사용해서 일반인들과 거리가 느껴지지만, 사람은 누구나 영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이 '몸'이 아니고 '영(spirit)'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회 목사님이나 깊은 산에 거하는 스님들이라고 특별한 영성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와 명상으로 정진하는 것이 도움이 되나 방향이 잘못되면 전혀 별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커다란 시련에 직면했을 때 그 사람의 '영성'이 가진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어떻게 그 상황에 대처하는지 그 자세를 보면 알수 있지요. '영'의 힘이 발휘되고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삶과 괴리된 영성이란 어불성설이지요.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시면서 경비 아저씨에게 험한 말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영이 가진 본래의 특성이 가리워져 평생을 자신이 내키는 대로 살아온 인생일 수 있습니다.

종교계의 유명한 분들이 끊임없이 불미스러운 일로 소란스럽습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요. 그 환멸과 혐오를 어느 생에 다 닦을 것이며, 그 일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어쩌면 좋은가요. 종교계가 도덕적 지탄에서 평균치라도 회복하려면 산 위에서나 아래서나 뼈를 깎는 자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1950년대 초, 일본의 야마기시란 분이 시작한 무소유 공동체가 있습니다. 양계로 시작한 곳인데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현재 유일하게 종교와 무관한 생활공동체로서 성공한 모델입니다. 그 마을이 사무실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산안마을'이라고, 지금은 널리 알려져 세계 각지에서 배움을 얻고자 찾아옵니다.

언젠가 마을을 방문하여 그분들과 한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같이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그 '영성'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분들이었습니다. 내것을 내것이라 여기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그것을 일상에서 구현함에 있어 저 영성이 살아있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온 우주가 하나라는 사상을 그들도 가지고 있고, 그 사상이 머리에서 맴돌지 않고, 닭 모이를 주는 단순한 행동 하나에도 배어나옵니다. 겉으로 보면 여느 일반인들과 별 다를 것이 없어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온 길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치열한 내적 투쟁으로 일군 값진 세월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자본주의 황금만능으로 미쳐가는 동안, 조용한 시골에서 40여년을 뚫고온 힘을 여실히 보고 왔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살아가는 동안 큰일을 당하기에 앞서 준비하는 기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위기에 부딪쳤을 때 준비된 사람은 그 '영'이 가진 휘황한 빛을 드러냅니다. 경우에 따라서 인생의 위기는 우리가 큰 걸음을 내딛게 하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반면, 그 위기 앞에 인생이 송두리째 잿더미가 되어 바람 앞의 겨와 같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불현듯 닥쳐오는 그 위기가 기회인지,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벼랑인지는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말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 하는지 일상의 순간순간이 축적되어 드러나는 것이겠지요.

스쳐가는 우리의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칼날 위에 서 있어야 하는 때를 대비하는 것이라면 그리 간단치 않은 하루하루입니다.
 1960년대부터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리잡은 ‘산안마을’입니다. 무소유라기보다는, 소유하되 집착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삶이 아름다와보입니다. 그들의 일상에 배인 영성이 40여년간 저 길을 가게 한 힘이지요. 사진은 산안마을에서 열린 2007 국제워크 캠프입니다.
▲ 산안마을 1960년대부터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리잡은 ‘산안마을’입니다. 무소유라기보다는, 소유하되 집착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삶이 아름다와보입니다. 그들의 일상에 배인 영성이 40여년간 저 길을 가게 한 힘이지요. 사진은 산안마을에서 열린 2007 국제워크 캠프입니다.
ⓒ 산안마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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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성, #산안마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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