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현대제철 김성규씨
 현대제철 김성규씨
ⓒ 이영민

관련사진보기


"어렸을 땐 공원과 지하철역에서 노숙생활을 한 적도 있어요. 회사가 부도나기도 했고... 돌이켜 생각하니 힘들었던 기억이 많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좌절할 때마다 어느 곳에서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죠."

현대제철에서 벨트컨베이어 정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규씨는 충남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형편으로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학교를 중퇴한 뒤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의 한 염색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었지만 16살 어린 소년에게는 사회는 너무 혹독했다.

16살에 시작한 사회생활

방황의 연속이었다. 공장을 그만둔 그는 차갑고 낯선 서울에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 공원과 지하철역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열등감은 그를 더욱 위축시켰다.

김씨는 당시 "더 나은 직장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홀로 다짐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며 철없는 나날을 보낼 나이에 김씨에게 일자리는 절실했다. 그 시기에 만난 지인을 통해 기계를 다루는 한 회사에 입사해 청소부터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업무의 종류는 중요치 않았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2년 동안 같은 생활이 반복됐다. 공장 사람들은 남에게 기술을 잘 알려주지 않아 좀처럼 기술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회사가 경영난을 겪었고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기술이 있던 직원들은 대부분 이직했지만 김씨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월급을 받지 못해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며 "결국 사람들이 퇴사하면서 회사가 문을 닫기 전까지 5년 동안 선반·밀링·열처리 등 중급수준의 기술을 습득했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회사에서 10여 년 동안 기술과 경력을 쌓아갔다.

한보 부도 그리고 현대제철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채용소식을 듣게 된 그는 18년간의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 당진으로 내려와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미끄러졌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계속 문을 두드렸고, 세 번째에 드디어 한보철강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설비관리팀에 배치돼 1년 만에 주임으로 승진하는 등 업무적으로 인정받으며 회사에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입사 2년만인 1997년 한보철강이 부도나면서 다시 힘든 나날이 시작됐다. 당시 많은 지역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적금과 보험까지 해약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인 타격이 컸다.

또다시 찾아온 절망의 상황에서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 다시금 희망의 빛이 보였다. 일자리를 되찾은 그는 경제적으로 안정됐을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갖게 됐다.

김씨는 "좌절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결과였다"며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버텼고, 결국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삶의 원동력을 '어머니'로 꼽았다.

노력의 결과, 국가품질명장

한보철강이 현대제철로 인수되기 전까지 긴 공백의 시간 동안 그는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재기를 꿈꿨다. 그는 현재 ▲ 용접기능장 ▲ 선반기능사 ▲ 보일러 산업기사 ▲ 밀링기능사 ▲ 연삭기능사 ▲ 지게차운전기능사 등 6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김씨는 당시 취득한 자격증을 밑거름 삼아 현재 현대제철 당진공장 내 753개 100km에 달하는 벨트컨베이어를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근 국가품질명장과 기능한국인에 선정됐다. 김씨는 "국가품질명장을 표창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와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늘 배움에 목말라 있던 김씨는 올해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지금은 신성대 자동차학과(야간)에 재학 중이다. 기회가 된다면 4년제 대학에도 진학해 배움을 이어가고 싶다는 그는 "요즘은 옛날처럼 기술인(장인)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며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인정신이 없으면 절대로 명장의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수많은 좌절의 시기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들은 저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부족하고 배움에 목말라 있기에 오늘도 묵묵히 저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 기능한국인 : 전문계고, 폴리텍대학, 직업훈련원 등을 졸업하고 10년 이상 기능분야, 산업체 근무경력이 있는 중소기업 CEO, 산업현장 종사자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숙련기술인을 매달 한 명씩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하고 있다. 선정자에게는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 및 기념패 등이 수여되며, 산업현장교수, 학교직업진로교육 등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한다.

* 국가품질명장 : 10년 이상 현장에서 근무한 자로서 장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선발해 대통령이 직접 지정패를 수여하는 제도다. 국가품질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근무태도와 능력, 인간관계와 관련된 18개 항목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대가 추진 중인 영상사업인 <영상으로 만나는 당진의 장인> 편과 함께 취재했습니다. 영상은 당진시대 홈페이지 및 충남방송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