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이 개봉 12일 만에 관객 600만 명을 동원했다. 추석극장가를 공략한 영화 가운데 두 번째로 빠른 속도다. 역대최고의 추석흥행작 <광해, 왕이 된 남자>(아래 <광해>)를 제치고 <관상>의 바로 뒷자리를 차지했다. <관상>(2013)이 900만 관객을 동원했고, <광해>가 천만 영화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밀정> 역시 큰 흥행이 예상된다.

흥행의 배경으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스크린독과점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밀정>은 개봉 첫 주 토요일인 지난 9월 10일 1444개의 스크린을 독식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당시 스크린점유율은 25.2%다. 네 개의 스크린 중 하나 꼴로 <밀정>이 상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장의 특정영화 황금시간대 몰아주기나 바꿔치기 상영 등을 고려하면 실제 스크린점유율은 이 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개봉 14일 차인 20일 현재까지도 <밀정>은 1100여 개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다.

독과점의 원인

<밀정>이 점유한 스크린 수는 600만 관객을 돌파한 역대 개봉 영화 53편 가운데 9번째로 많다. 10년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647개 스크린을 점유했을 때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불거졌는데 그때 보다 약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통계 분석으로 본 천만 영화>에 따르면 천만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개봉 첫 주에 승부를 걸어야하며 늦어도 3주 안에 500만 명을 돌파해야 한다. 역대 천만 영화는 모두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전종혁, 윤하 연구원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개봉 첫 주에 극장가를 장악하지 못하면 훗날 흥행하더라도 천만 영화는 꿈이 될 뿐"이라며 "적어도 개봉 첫 주말에 최소 500개 이상의 스크린은 확보해야 하고, 3주차에 500만 명을 동원해"야 천만 영화 조건을 갖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 이후 개봉한 천만 영화 12편이 개봉 첫 주말에 평균 1266개 스크린을 점유한 것을 감안하면 근래의 흥행공식은 "천만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천 개의 스크린을 점유해야 한다"로 수정돼야 옳다.

스크린독과점의 원인 중 하나로 부쩍 높아진 영화 제작비를 꼽을 수 있다. 양질의 영화엔 많은 제작비가 드는 게 사실이다. 최근 관객들 경향이 규모가 크면서 작품성까지 갖춘 영화에 몰리고, 스타 배우와 감독에 환호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바로 이 스타 배우 기용이 제작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내부자들>과 <사도>를 보자. <통계 분석으로 본 천만 영화>를 통해 김도수 쇼박스 한국영화본부장은 "'배우 이병헌 씨가 없었다면 <내부자들>은 40억 원대 초반으로, 송강호 유아인 씨가 없었다면 <사도>도 30억 원대 중반으로 촬영할 수 있는 영화였다"며 "좋은 배우가 붙으면 제작비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내부자들>의 순제작비는 57억 원, <사도>의 순제작비는 60억 원으로 알려졌는데 스타배우 개런티가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도 비슷한 사례다. 같은 보고서에서 이정세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투자배급팀장은 "일반 시대극처럼 <동주>를 제작했다면 100억 원의 총제작비가 소요됐을 것"이라며 "강하늘 등의 배우가 출연료를 거의 받지 않고 이준익 감독이 흑백으로 촬영한 덕에 11억 5000만원으로 <동주>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영화홍보사 호호호비치 이채현 실장은 "스타배우가 많이 출연한다는 사실이 영화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져 흥행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독과점을 막는다면?

일종의 흥행 딜레마다. 높은 제작비를 빨리 회수하기 위해 스크린독과점이 일어나는 셈이고 이는 국내영화산업에서 필요악처럼 여겨지고 있다. 올 여름 휴가철에 개봉한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등이 모두 100억 원 이상의 총 제작비가 소요됐다. <밀정>과 맞붙은 <고산자, 대동여지도> 역시 12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개봉 첫 주가 지나고 다음 주에 접어들면 관객 폭이 20~30%가량 줄어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배급사는 개봉 첫 주에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점유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스크린독과점을 해서라도 대박을 치지 못하면 손익분기점조차 넘기기 힘든 것이다.

미국은 시장자유주의를 신봉하지만 스크린독과점을 하지 않는다.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20% 이상 점유할 수 없다. 1948년 만들어진 파라마운트법 때문이다. 파라마운트법은 하나의 모회사가 영화제작사와 배급사, 극장을 한꺼번에 소유할 수 없도록 막는 법이다. 한국에 적용한다면 모기업 CJ가 투자배급사인 CJ E&M과 극장 체인 CGV를 동시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 모회사가 배급한 영화를 계열사인 극장에 몰아줄 수 없도록 막는다.

만일 관계당국이 "한 영화당 스크린점유율 20%"로 법을 개정한다면 한 영화당 차지할 수 있는 스크린은 500여 개가 된다. "천만 영화가 되기 위해 천 개의 스크린을 점유해야 한다"는 흥행공식이 깨진다. 외화와 국내 영화의 개봉 편수가 늘고 있고 영화의 흥행성패가 1주일 안에 갈리는 경향을 고려하면 천만 영화는 더욱 나오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에 따라 저예산 혹은 중예산 규모의 영화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이들 영화의 스크린 수가 상대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저예산 영화가 수혜를 입을 수는 없다. 최현용 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스크린독과점이 규제된다면 독립영화, 수입예술영화가 혜택을 보겠지만 1억 미만으로 수입하는 예술영화와 몇 억대의 제작비로 만든 국산영화가 맞붙어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최 소장은 "스크린 독과점을 제어하고 작은 영화를 지원하는 '한방'은 없다"고 덧붙였다.

'스크린독과점 방지법'을 만든다면 대규모예산이 투입된 영화 제작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할리우드 대작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 관객의 영화 선택폭은 다양해지지만 한국의 대형영화는 물론 저예산영화도 외화에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영화산업에서 스크린독과점은 양날의 검일 수밖에 없다.

밀정 600만 관객 스크린독과점 김지운 감독 워너브라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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