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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만큼 빈부 격차가 크다는 뜻인데, 기사가 제공한 통계를 살펴 보면 97년 말의 'IMF 위기' 이후 빈부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재편된 우리나라 사회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대규모 실직 사태와 비정규직이 증가했고, 기회를 상실한 많은 젊은이들을 치열한 경쟁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점점 자신의 실력보다 재력이나 인맥이 중요한 사회가 돼 버렸지요. '헬조선'이란 말은 최근 들어 유행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나라는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쭉 그런 상태였는지도 모릅니다.

40대 이상의 기성 세대들은 젊어서 고생은 자기들도 다 해 봤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젊은이들을 다그치기 일쑤지만, 지금은 그들이 대학생이던 시절과 완전히 다릅니다. 더이상 대학만 나오면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거든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려고 아등바등 살아도, 대다수가 패배자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거죠.

<너무 한낮의 연애> 표지
 <너무 한낮의 연애>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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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너의 도큐먼트>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초래된 불안한 가정의 초상과 청춘의 고민을, 여러 서브 플롯의 중첩을 통해 오롯이 잘 담아낸 작품이었지요. 아마도 IMF 직후 대학을 다닌 작가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경험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 <너무 한낮의 연애>는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입니다. 2014년과 2015년에 쓴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지요. 그 중에서도 2016년 '젊은 작가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와 2015년 '젊은 작가상' 명단에 들었던 <조중균의 세계>는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만한 수작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게, 이 두 작품은 사회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상태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과거를 되짚어 나갑니다.

한직으로 밀려나 사실상 퇴직을 권유 받은 주인공 필용이 대학 후배 양희와의 기이한 인연을 되짚어 보거나(<너무 한낮의 연애>), 곱게 자라 출판사 인턴이 된 영주가 출판사 명물인 조중균의 얽힌 사연을 하나 둘씩 알게 되는 식으로요(<조중균의 세계>).

이 작품들이 돋보이는 이유는 분명한 주제 의식 아래 잘 조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잊고 지냈던 과거가 어떤 식으로 오늘의 위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중균의 세계>에서는 현실과 쉽게 타협하는 바람에 사라져 버린 신념들에 대해 집중력 있게 서술해 나갑니다. 상투적이지 않은 결말 처리를 통해 값진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도 장점이지요.

사실 김금희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때만 하더라도 소소한 플롯의 중첩이 산만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 주제의식도 모호했으며, 작가 자신이 판단을 유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때의 미숙함에 비한다면 이 두 작품은 정말 일취월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수록된 작품들 사이의 편차가 크다는 것입니다. 후일담 문학의 재치있는 변용이라고 할 만한 <세실리아>나, 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우울한 현실을 서스펜스 있게 담아 낸 <고기>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솔직히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전개와 불분명한 이야기의 목표, 무의미한 말 장난 같은 것들 때문에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김금희 작가의 소설들이 우리 마음을 끄는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서서히 왜곡되어 가는 인간성과 가족의 해체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이 나라의 현실이니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더욱더 자기 이야기처럼 느끼겠지요.

지난 두 해 동안 아홉 편의 단편을 써 온 것처럼 김금희 작가는 성실하게 작품 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미 빼어난 수작들을 내놓은 바 있으니, 작업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정진한다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작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다음 번 단편집이나 장편 소설로 만날 때에도 이번처럼 괄목상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펴냄 (2016. 5. 31.)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린 글입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문학동네(2016)


태그:#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단편집,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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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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