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애를 가진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 처하는 문제는 크고 다양하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 처하는 문제는 크고 다양하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한 가정의 엄마가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끌어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언론 보도를 심심찮게 접한다. 많은 사람이 이를 장애인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장애인 가족' 문제다.

자폐증이든 지적 장애든 뇌성마비든 장애를 가진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 처하는 문제는 크고 다양하다. 아빠가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해 조기에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재활치료 과정에서 경제적인 부담과 정신적인 고통을 경험한다.

무엇보다 나을 기미가 없는 장애 자녀를 24시간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은 자녀가 성장할수록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부모는 장애인 자녀를 데리고 흔한 여행 한번 가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장애인가족이 경험하는 우울증 정도는 매우 심각하다. 2012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보호자 52%가 다수의 우울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들 가정의 우울증 정도는 평균 19.43(16 이상인 경우 우울증 의심)으로 일반 국민(5.03)이나 저소득층(11.92)보다 월등히 높다. 장애인가족의 우울 정도가 쪽방촌에서 거주하는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사람들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아이 상태 보지 않고 처방전 작성 거절한 병원

필자의 9살 자녀는 뇌성마비 1급, 시각장애 2급의 중증중복 장애인이다. 혼자서는 앉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하기 때문에 늘 부모와 형제들이 돌봐야 한다.

이 아이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산소 과다공급 혹은 산소 부족으로 인해 뇌 기능이 망가졌다. 흔히 나이 드신 분들이 뇌출혈이나 뇌졸중을 앓고 난 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를 얻는데 이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우리 딸은 왼손을 오른손보다 더 잘 사용하지 못한다.

돌이 되기 전부터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해 현재까지 9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기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한다. 아내는 아직 이 아이가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 같지만 필자는 마음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활치료를 계속 받는 이유는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에 더해 근육이 아예 굳어 버려서 손목을 기역(ㄱ)자로 하고 산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이는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한다. 보통 때 비장애인의 발목은 니은(ㄴ)자다. 하지만 우리 딸은 일(ㅡ)자다. 언제나 발목을 쭉 펴고 있으니 걷기는커녕 일어설 수도 없다.

발목을 니은자로 만들기 위해 착용하는 보조기는 아이가 자라면서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이 보조기를 맞추는데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데 지난 5월 보조기를 새로 맞춰야 할 시기가 오자 사달이 났다.

우리 아이는 평소 장애인복지관에서 재활치료를 받기 때문에 아내는 여러 소아재활치료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모든 병원에서 보조기 처방전을 발급해 주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동안 자기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면 병원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복지관을 이용한 것이 죄다.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처방전을 자기 병원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발급을 거부하는 비상식적인 답변을 한 병원은 서울, 경기도 부천, 인천을 가리지 않았다.

어떤 이는 아이가 보조기 처방을 받을 만큼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지만 의사는 아예 아이를 보지도 않았다. 어떤 병원은 간호사가 평소 관례인 듯 단박에 거절했으며 어떤 병원은 간호사가 의사에게 물어보겠다고 한 뒤 발급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필자는 장애인 아동의 재활보다 자기 병원의 영리를 우선시하는 병원이 수도권 전체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와 보라고 한다. 아내가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기대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처방전을 써 줄 테니 보톡스 치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얼굴 주름살을 펴 준다는 보톡스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켜 주기 때문에 치료 목적으로도 쓰인다.

하지만 비용이 고가다. 엄지손가락만한 보톡스 한 병이 약 40만 원이다. 한 병만 건강보험이 되고 추가하면 자부담을 해야 한다. 의사는 3병 이상을 맞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이미 이 병원에서 3번이나 보톡스 치료를 받았고 효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보톡스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처방전을 받지 못했다.

해당 병원 홍보팀은 어느 언론사와 한 인터뷰를 통해 "보조기 처방은 착용했을 때 기능 증진과 합병증을 염두에 둔 의료진의 판단 하에 결정된다"며 "근육이 많이 뒤틀린 상태에서는 보톡스 치료가 우선돼야 보조기 처방이 가능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치료받지 마세요" 마음의 상처를 준 한 마디

아내는 여러 소아재활치료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모든 병원에서 보조기 처방전을 발급해 주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동안 자기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는 여러 소아재활치료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모든 병원에서 보조기 처방전을 발급해 주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동안 자기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장애인과 장애인가족이 직면한 현실이다. 9살 아동의 발목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보조기의 처방전 하나 받기 힘든 곳, 장애인 재활보다 영리를 우선시하는 것 같은 병원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필자는 이 병원과 관련이 있는 복지관의 관장에게 이 내용을 하소연했고 그분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 종합병원에서 별다른 답을 듣지 못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이야기를 한 경기도의원에게 말했다. 그는 경기도의회 5분 발언에서 경기도를 상대로 질의를 했다.

"존경하는 경기도민 여러분, 9살 소녀의 장애를 완화시켜 주기 위한 노력보다 병원의 영리를 앞세우는 현실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중증중복 장애를 가진 9살 소녀의 다리 보조기를 볼모로 기백만 원의 치료를 요구하는 대학병원의 행태, 그리고 역시 자기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어린이의 다리 보조기조차 맞추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반 병원의 행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 장애인 인권의 현실이며 장애인 가족이 당하는 차별의 현실입니다."

이 5분 발언을 언론사 몇 곳에서 인용보도 했다. 며칠 뒤엔 보건복지부에서 전화가 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알지 못했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처방전 발급은 의사의 재량이지만 진단서 발급은 의무니까 보조기도 진단서 발급으로 맞출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다. 어떤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난 최근에 필자는 또 한번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가 알던 다른 뇌성마비 장애아이 엄마가 복지관 치료 기간이 만료돼서 다른 재활치료 기관을 찾다가 이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6살짜리 아이를 보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의 상태를 보니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겠습니다. 치료를 받지 마세요. 그래도 원한다면 대기 목록에는 올려드리겠지만 한참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6살 장애 아이와 함께 엄마는 울면서 진료실을 뛰쳐나왔다.

필자가 장애 자녀의 상태 호전을 포기한 것처럼 그 의사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는 꼭 엄마가 울면서 진료실을 나가도록 해야 했을까?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오는 환자에게 해가 되거나 상처가 될 일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환자의 마음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가. 더구나 치료를 포기했을 경우 아이의 몸이 아예 굳어버리면 어쩔 것인가.

환자나 환자 가족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상처를 주며 영리만 따지는 의사와 병원이 일반 환자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사는 장애인 치료를 전담하고 있다.

의료 윤리 따위는 안중에 없는 병원들, 필자는 이제 이 병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장애인부모회 회원들과 함께 이 병원을 찾아가 항의를 할까 1인 시위라도 할까 아니면 그저 없었던 일인 것처럼 묻고 넘어갈 것인가.

이제 더위는 한물갔다고 하는데 괜한 고민이 늦여름 더위를 부채질한다.


태그:#재활의학, #장애아동, #뇌성마비, #보조기 처방
댓글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